카테고리(무소속)

인연의 끈은 어디에서 오는가, 운명있는가? (둘째가 태어난 날 12.29에..)

햄릿.데미안.조르바 2023. 12. 29. 13:58

2023.12.29.. 인연이란 무엇일까 운명이란 있는 것인가? 골푸쉬는 날, 우리 둘째아들이 태어났던 날 12.29.

지난 1979.12.29.(?) 내가 금호실업에 다닐 때, 사회 초년병 시절, 명동에서 부서 송년회식을 하고 있었다. 그때 회사분위기는 어수선.우중충 하엿다. 유가폭등으로 국내경기가 최악이엇고, 모기업인 금호그룹은 경영분쟁으로 혼란스러웠다. 국가가 지정한 종합상사를 반납하느냐 마느냐, 박인천명예회장의 큰집인 삼양타이어와의 그룹경영주도권다툼의 와중이었다.

나는 3년차, 신입사원의 티를 막벗어나는 참이었고 건방지게도 더 이상 금호실업에서 배울 것이 더 있지않다는 섣부른 평가를 내리고는, 말하자면 바람이 들어있는때였다.

회사를 그만두느냐 어찌해야 하느냐로 고민고민하던 때, 연말 부서 회식날(부서 회식도 회사분위기를 반영하여 조촐하고 초라하게 간단히 하였다.). 회식을 우물쭈물 마치고, 명동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침 눈이 내렸다.

역촌동 집 가까이에서는 어느덧 함박눈으로 바뀌어 눈발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되살아오는 그날의 풍경이다.

그날 나의 둘째아들 형보는, 그날 하늘의 함박눈 따라서 태어났다.

큰아이를 얻고 한해걸러 또 아들을 보앗다. 연년생. 사회가 무엇인지 사회가 어찌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는 사회초년병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날이었다.

그때 나는 전세;집구하느나 6개월마다?, 전전긍긍하면서 살았는데, 그때도 화곡동인가로 전세들어갔다가 방바닥이 갈라져있어서 연탄가스 중독을 걱정하여 이사간 바로 다음날부터, 새 전세집을 구하다가 이곳 역촌동 단칸방으로 긴급히 대체 전세방을 구하였던 차였다.

아이들의 외가인 영광에서는 외할머니와 고종사촌인 시형이가, 딸의 출산에 맞추어 올라와 있었다. 우리둘째는, 역촌동 집가까이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큰아이는 금호실업 가까운, 의료보험이 되는 명동의 백병원에서 태어났지만, 둘째는 집에서 가까운 제일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의료보험이 확대되어 동네 병원에서도 가능하였을 것이다.)

코구멍만한 단칸방에서, 우리네식구와 외할머니와 고종사촌이 며칠 함께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냈다. 외풍이 어찌나 심한지 단칸방을 추웠다. 부엌문만 열면 연탄까스 냄새가 무자비하게 쳐들어왔다.

둘째는 시도때도 없이 울어댔고, 잠이 부족한 회사초년병 나는 잠이 부족하여 많이 힘들었다. 그래도 어찌된 노릇인지 너무나 꿋꿋하였고 당당하였고 하나의 움츠림.그늘없이 늠름하게 회사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무엇인가 불만 가득하였고 무엇인가 돌파구를 찾아야하였다. 소위 나의 아홉수가 들어와있었다. 내나이 열아홉, 스물아홉에 들어서내 인생의 어느 변곡점에 들어와있어서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풀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둘째가 태어나고 새해가 밝아왔고 그리고 나는 금호실업에 사표를 내고(담담이사는 나의 서투른 사직서에 끝까지 결재를 해주지 않다가, 바람이 잔뜩 든 내가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싶다는 거짓설명에 마지못해 이해하고 알았다는 듯, 사직서 결재를 해주셨다바람난 철부지가 저지른 웃픈 추억 하나다.)

바람이 난 나는 그때 세운상가에서 잘나가는 나이트클럽 아마존의 물주가 설립한 무역회사에 초빙되어, 뭐가 뭔지도 모른채 새로운 세계에서 새 사회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는 평가는 내리는데 채 1달이 걸리지않았다.

뭐가 뭔지도 모른채 바람이 나서 새직장에서 새생활을 시작하였지만, 2의 대우실업이나 율산실업을 만들어보자는 아마존 창업주의 뜻과는 전혀 아니다는 판단을 나는 내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회초년병이, 김발말리는 대나무깔판을 수출하는 보조역할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싶었다.

운명을 그렇게 다가왔다. 대나무깔판 수출인증을 받고 은행에서 회사로 돌아오는 택시안에는 철지난 일간지가 있었다. 택시안에서 특별히 할일이 없던 나는 그 신문의 광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해태그룹의 종합상사 신설, 종합상사 근무 경력사원을 모집하는 광고였다.’

그러나 내가 신문을 보고있던 날이, 마감일이었다. 어느 누군가는 어 벌써 마감일이 다 되었구나 하면서 지나쳐버리는 것이 당연하였을 것이나. 그러나 나는 그때 다른 생각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쉽게 말해서 운명이었다?

나는 그대로 해태그룹의 해태상사 사무실이 있다는 무교동으로 택시를 돌렸다. 그리고 나의 입사지원서를 접수시키고 말았다.(마감일이니지만,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등은 곧 보완하겠노라 하면서 이력서만 문방구 양식으로 채워 제출하고 나는 접수담단 직원을 열심히 설득하였다책임자인듯한 뒤의 과장이 나와서는, 나의 이력서만 있는 지원서류를 받아주었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구태의연한 진부한 문귀로만 설명하기애는 많이 부족하다. 그것은 운명의 여신이 배시시 웃으면서 나를 안내하는 것이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부터 나의 답답한 삻이 하나하나 풀려나고 있었다. 해태상사와의 운명적 만남의 시작이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나의 블로그 자연.자유.자존참조)

오늘 골프 쉬는 날, 둘째 생일을 맞이하면서 옛날 추억을 다시 되새겨보는 것은, 어제 그린밸리 콘도에 옛 해태상사의 옆부서 근무하던 김관성.최선아부부가 뜻밖에 찾아와서 인사를 받고였다.

나의 기억으로는 가물가물하였는데 그 부부는 나와의 인연을 못잊어하였고 특별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맨처럼 다른 해태상사 옛동료부부, 지난해 란나골프장앞 음식점에서, 그들이 나를 알아보고 누구누구이다 하여, 가까스로 옛 기억을 되살렸는데, 그들이 그린밸리 콘도에 다시 찾아왔고 또 그들이 김관성부부를 초대하였다는 것이고김관성부부는 내가 콘도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당초일정과는 달리, 1주일을 더 연장하여 찾아왔다는 것이다. 인연이 무엇일까 운명이 있는 것인가?)

지난 12.27 김관성부부가 그린밸리 콘도에 왔고 그들은 어제 굳이 나에게 신고인사를 하겠다는데 뭐 이렇게 꼬박꼬박 인사차리면서까지 할 필요가 없다 싶었는데 그들은 그렇지 아니하였다. 사회생활하면서 나이들고 옛 회사의 동료이지만 이미 나이는 들만큼 들었으니, 그냥 옛동료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 그냥 모르는 채 할 수는 없고 간단히 수인사하면 될 것이다멀리까지 골프하러 왔으니 그들 일정대로 소화하면 될 것이다, 바쁜 빠듯한 일정에 뭐 나와 골프까지 할 필요는 없다, 대신 내가 간단하게 환영인사겸으로 식사 한번 함께하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해놓았던 터였다.

그런데 그들이 굳이 깍듯하게 도착인사를 한다하니 뭐 매정 박절하게 할수도 없고, 불편하게 마지못하여 그리할 수밖에 없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옛기억들이 새록새록 들어오고 그들은 나완ㄴ 또는 다른 특별한 추억을 알려주는 것 아닌가.

내가 사표를 쓰고 해ㅌ태상사를 떠난다는 그를 불러서 나무라고 사표를 걷워들이라 강압하였다는 것이고, 어찌되었든 그는 사표를 내지않고 회사일을 잘 배웠고 오늘의 그가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그런일이 과연 있었나 하여소 어렴풋이나 내가 그리하였다 싶기도 하였지만..뚜렷한 기억은 없고, 다만, 참 못말리는 박동희였구나 해서 또 웃픈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게 하ㅕㅇㅆ다. 나는 그때, 그시절 1994?, 못말리는 잘 나가는 해태상사의 스타였다. 내 부서일이 아니어도 다른 부서의 일이어도 뭔가 잘못되거나 뭔가 다시 생각해야하는 일이면 발벗고 나서서 떠들어대었다. 그중의 하나가 그의 사표 소동이었던 모양내가 해봐서 아는데, 내가 사회초년병 시절 그리고 때때로 회사에 사표를 써대었는데결론은 어찌어찌하였고 사표를 내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떠들어댔을 것이다. 그는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는 나의 만류에 사표를 그만두고 새로이 회사생활ㄹ을 열심히 하였고, 회사에서 그의 아내를 만났으며 방콕지사를 거쳘 이란지사까지 경험을 넓혔고 오늘의 그가 되었다는 것이라니….재미있지않는가? 그를 이곳 치앙마이에서 다시 해후하고, 나도 모르는 옛이야기를 듣고 하는 것이, 무슨 운명의 한토막인가 이것이 무슨 인연의 끈이 아니면 무엇인가, 무엇으로 30여년 전의 일들을 오늘 소환해내는가?

나는 어제 그들 부부를 만나고 옛 추억을 되살림ㄴ서  나는 또 흥분하고 말았다. 그때 그시절, 나의 화려했던 그날들이 주마등처럼 돌아서 오고, 그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다보니 말을 많이 하게 되었고..그들이 저녁식사전이라는 것꺄지 모르고 떠들어대었다가까스로 더 이상 마이크는 잡지않고 홀연히 줄단하였다. 다행이었다.(그들은 뭐 이것저것ㄱ 많은 선물을 가져와서서는, 할 수 없이 우리집사람에게 인사를 시켜야했다그들이 생각하는 나는 보통이 넘었다. 내가 그리 살아왔구나 싶어서, 다른 후배사원들에게 귀감이 되었구나 싶어서 한편으로는 속으로는 뿌듯하였다.. 그러나 흥분하여 너무 말을 많이 하였다자제해야 할 것이다.)

나는 말을 많이 하면 잠자는 것이 불편한 수면불량품. 어젯밤 나는 잠을 설쳤다. 늦게까지 잘을 이루지못하고, 책을 봐도 인터넷을 해도 잠이 오지않았다. 베란다에 늦게까지 등을 켜고 잠올때까지 기다렸다. 샤벽녘애야 잠이 찾아왔고 나는 그런대로 충분한 잠을 잘수 있었다. 아침애 일어나니 몸과 마음이 가뿐하였다. 잠이 오지않을 수도 있지만, 때로는 하고싶은 말 믾이 떠들고 옛추억을 되돌려보는 것도 ㄴ=결코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닌가? 맞는가?

둘째아이의 태어날 날, 오늘과 어제 옛 해태상사 동료직원부부를 만나면서 드는 소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