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데미안.조르바 2003. 9. 24. 15:32

2003.9.24. 수. 800a, 622호,

아침 6시, 잠을 제대로 잤다. 가뿐하다. 서울시각으로는 8시니까 빠른 시각은 아니지만 이곳시각으로는 조금 이르다.

퀴논에서의 하루가 무겁게 처리되었던 모양이다. 서울식당에서의 저녁식사가 피곤한 몸과 마음을 잘 만져주었던 모양이다.

 

호텔의 아침식당은 조금 이른 시각. 지난번처럼 붐비지 않으나 한가한 곳에 전망이 좋은 곳, 거리가 보이고, 멀리 사이공 강가가 보이는 곳으로 까다롭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리의 아침 풍경이 주마등처럼 왔다갔다 들어갔다 나갔다 하면서 호치민의 아침 거리가 지나간다. 꼭 영화관에 앉아서 자막이 연속하여 바뀌는 듯 느껴진다.

 

꽃상여 장례행렬이 내 앞을 지나간다. 아침일찍 처음보는 꽃상여이며 더구나 호치민 시내 한 복판에서 상여를 본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호텔 바로 옆으로 사이공 강이 흐르는데 마침 여객선이 선착장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규칙적으로 여객들이 쏟아진다. 곧이어 오토바이들이 밀물이 들이치듯 사람들 사이를 뚫고 터져 나온다. 보통 메뚜기 떼들처럼 거리를 누비는데 오늘 여객선에서 나오는 것을 보니, 여객선에서 뱉어내는 밀물같이 나온다.

 

호치민의 아침도로는 오토바이가 점령한다. 출근시간이라 더 장관이다. 마치 메뚜기떼같이 달리고 날아다딘다. 아침이라 복면한 여인들은 보이지 않지만 긴 팔소매에 마스크를 한 여인들은 가끔 보인다. 오토바이의 물결 옆으로 자전거가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오토바이에게 도로의 주도권을 빼앗겨버려 힘이 없어 보인다.

몇 년 전만 해도 자전거는 거리의 왕자였는데 베트남의 발전속도가 왕자를 바꾼 것이다.

자동차는 가끔 한 두 대 보이지만 그들은 도로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오토바이에 밀려서 속도를 내지 못하니 불쌍하게 보이는 이방인이다.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눈치를 보면서 달려야 한다. 어찌 불쌍하지 않은가.

앞으로 호치민의 도로 주도권을 누가 잡을까. 자동차가 오토바이를 밀어낼 수 있을까.

오토바이를 스스로 소유하고 거리를 달린다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확인이며 독립이고 자유이다는 것.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경제적으로 만만치 않은 부담이므로 거리의 왕자는 한동안 오토바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90년대 마이카족들이 떠오른다. 우리의 변화과정이 되돌려진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인생은 재미있고 어쩜 우리의 세상은 함께 변화하고 또 다르게 변화하는지 모른다. 누구는 먼저 변화하고 누구는 좀 나중에, 누구는 빠르게 누구는 좀 느리게 변화하는지 모른다.

누구는 언제는 빠르게 언제는 느리게 변하는지 모른다. 누구는 알맞게 섞여서 변하고, 누구는 거꾸로 반대로 또는 엉망진창인채로 변하여 가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정교하게 짜여진 각본대로 변화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우리는 변한다.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다. 재미있다.

 

아침식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순서대로 하엿다. 커피는 나중에, 오늘은 수박쥬스, 쌀국수, 쌀죽, 막대기 보리빵, 달걀후라이, 볶음밥, 한웅큼 과일, 커피.

창밖에는 어제의 ‘배 한척 장수’가 또 와서 손짓을 하고, 오늘은 안경장수까지 왓다. 어린소녀는 화보집을 들고 애걸하듯 눈짓을 해댄다.

그들에게 삶은 무엇인가. 돈을 벌어야 하는가.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그들에게 철학이 있고 도덕이 있으며, 종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아침이 되면 아침식사를 하는 외국인들에게 호텔 창 밖에서 자신의 물건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 그들의 삶 전부 아닌가. 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