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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숀 받아내기’+‘자유배낭여행’, 나는 한달 일정으로 영국으 배낭여행을 떠났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8. 21. 16:41

/‘코미숀 받아내기’+‘자유배낭여행’, 나는 한달 일정으로 영국으 배낭여행을 떠났다.

((1년간 입찰정지를 당하고, 한국정부의 참깨입찰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고, 또 그 이후(입찰참가정지 1년이 지나고나서 또), 미국이 지금 북한에게 하는 것처럼, 그때 수단에 경제제재를 하여, 수단참깨는 더 이상 한국정부입찰에 참가할 수 없게 되었다.(수출신용장을 수취할 수 없으니, 낙찰이 돼도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참깨입찰에 참가할 수 없고 또 미국의 수단제재는, 대평원농상(주)는 향후입찰비즈니스가 당분간 없다는 것인데, 그보다 더 당장 해결해야할 일이 있었으니, ‘코미숀’을 받아내는 것이었다.

보통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계약이 되고 선적이 이루어지고 물품이 부산항에 도착하여 정부의 품질검사에 합격되면 물품대의 100% 때로는 90%가 지급되면, 바로 ‘코미숀’을 정산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번의 경우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일부는 농유공에 인도되었고, 또 일부는 ‘반송’되었고, 또 일부는 ‘선적중지’되었으므로, 코미숀을 어디까지 지급해야하는지, 의견이 분분하였다.

(사람마다 코미숀의 지급에 대하여 이론이 많았다. 누구는 계약하는 것으로 코미숀지급이 성립되었다고도 하고, 또 누구는 물품인도가 완료되었을 때 코미숀지급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코미숀이란 것이 거래당사자 사이의 서비스 제공에 대한 댓가이므로, 어느시점까지 또는 어느 시점에서 서비스가 제공되었는지에 대하여 그 수고비를 지급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결국은 당사자 사이의 이해와 그 정도에 따라, 해당 코미숀이 지급되면 될 것이었다.)

 

대평원농상(주)와 Huyton 사이의 계약이 이미 존재하였고, 그 일부는 ‘이행완료’ 또 그 일부는 ‘반송’ 또 일부는 ‘선적중지’되었으므로, 총계약물량에 대해서, 전량이 계약이행 완료된 것은 아니었으므로, 코미숀을 어디까지 정산해야하는지, 다툼이 있을 수 있는 것.

나는, 미리, 나의 계산에 따라, 총계약물량에 해당하는 코미숀을 청구하되, ‘선적중지’된 물량에 대해서는, ‘삭감’해주었고, ‘반송’된 물량에 대해서는 50대50(기억이 확실하지는 않다.)으로 청구하였다.

(나는 해태상사시절부터, 해외거래선들과의 모든계약에 대해서, 여직원에게 기장정리(수기)를 하게 하고, 코미숀수급여부를 확인시켜왔다...혹시나 누군가 몰래 빼돌리거나 빠뜨릴 수도 있는 문제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조치였다. 실제로 누구누구는 계약을 했어도 코미숀을 회사에 입금시키지않고 제3의 계좌로 빼돌리는 사례도 있었다...따라서, 그 장부에 따라, 해외공급자에게 코미숀을 청구할때는, Debit Note를 정식으로 발행하여 해외거래선 또한 코미숀지급이 내부적으로 공식화되게 하였다...)

 

나는, Huyton과의 계약에 따라, 계약이행완료한 물량=100%+반송물량=50대50 그리고 선적중지된 물량=0%의 나나름의 계산근거에 따라, Huyton에게 Debit note를 발행하여 청구하였는데, Huyton측으로부터는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을 듣지못하고 있었다.

평소 비즈니스때와는 다른, 평소비즈니스때는 일방이 무엇을 물으면 타방은 바로 그날로 늦어도 다음날까지는 그 입장을 알리는 것이 우리사이의 비즈니스의 당연한 절차인데, 상대방에 대한 예우인데, 이번의 코미숀문제에 대해서는 Huyton측의 응답은 묵묵부답...답답하기 이를데 없었다. 물론, 나는 수백만불의 P-bond를 몰수당한 공급자의 입장이 있을 수있기 때문에 재촉하지않고 참을 만큼 참아주었지만, 해를 넘기고 또 해를 넘겨도 해결되지않고 있으니, 이제는 끝장을 봐야겠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하는데까지 해보았으니, 이메일로 또 국제전화로, 몇 번을 다그쳐도 가타부타 응답이 없으니, 마지막으로는, 내가 직접 런던으로 날아가서 Huyton의 사무실로 Mr.Philip를 만나 담판을 짓는 수가 남아있을 뿐이었다.(도중에 그동안 한국참깨수출을 담당했던, 비서겸 수출이사 Ms.Anna Maria는 퇴사하고 말았다. 농유공 출장자들이 모두들 이쁘다고 하던 그 비서가 퇴사하고 만 것이다.)

나는 그래서, 미수코미숀을 받아낼 겸, 겸사겸사해서, 영국으로 ‘자유배낭여행’을 기획하게 되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