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미리 준비하는 자의 것, 나는 Huyton에게 색채선별기와 PP bag 원단을 도입할 것을 주문하였다.
/시장은 미리 준비하는 자의 것, 나는 Huyton에게 색채선별기와 PP bag 원단을 도입할 것을 주문하였다.
((창업후 IMF를 거치면서 승승장구하던 수단참깨가 5년여가 지나고부터는, 인도참깨에 밀리기 시작하였고, 몇년동안 특별한 계약실적이 없이 보내게 되었다. 가끔 에티오피아참깨를 새로이 개발하여 참여하거나 또 가끔 인도참깨를 직접 소싱하여 참가하는 데 그치고 있었다.))
대평원농상(주)를 창업하자마자, IMF의 대변혁의 물결속에서, 한국의 참깨입찰시장은 수년간 대평원농상(주)가 공급하는 수단참깨의 독무대가 되었다.
몇 년간 독무대였을까? 5년여?
그러나, 계속 왕좌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게 하지않았다. 인도참깨가 수단참깨가 차지하고있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인도참깨는 그동안 BHC라는 농약이 검출된다하여, 한국시장에 들어오지못하였는데, 일본시장은 아직도 인도참깨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인도정부의 목화밭 농약사용금지조치후, 참깨밭에 더 이상 농약잔류현상이 없어졌는지, 어느때부터, 한국시장에 인도참깨가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그 이후 수단참깨는 한국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게되었다.(수단참깨가 인도참깨에 가격경쟁에서 밀리자, 대평원농상(주)와 Huyton은 에티오피아참깨를 개발하여, 한국시장에 인도참깨와 경쟁하게 되었다...수단참깨가 여의치않으니, 인도참깨를 직접 한국시장에 판매하기도 하였다.)
대평원농상(주) 창업하던 1996년과 2005년?, 그 이후, 몇 년동안 대평원농상(주)는 에티오피아참깨를 개발하거나 인도참깨를 직접 소싱하여 인도공급자들과 경쟁하고 있었으나, 좀처럼 IMF 즈음과 같은 거래실적은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말하자면, 표현이 거칠지만, ‘중세의 암흑기’?...몇년동안, 큰실적없이, 그저그렇게 한국참깨입찰시장에 명목상 공급자로 남아있던 때였다.
((내가 대평원농상(주)을 창업했던 때가
해태상사와 동양글로벌을 박차고 나와서, 월급쟁이노릇을 그만하겠다고 모두가 ‘무모한 짓’이라고 했었는데, 1997년 IMF가 터지고 또 생각지않은 수단산참깨입찰에서 계속 낙찰되더니, 정말 생각지않았던 ‘돈’이 밀려들어왔다.
대평원농상(주)의 향후사업전개방향을, 현상유지로 할 것이냐 아니면 시장확대.확장으로 갈 것이냐로, 직원들과 난상토론을 거듭한 끝에, ‘현상유지쪽’으로 방향을 잡은 후,
타피오카사업이 직원들중 창업공신인 J에게 넘겨주고나서(2007? 2008?),
대평원농상(주)의 사업은 현상유지로 결론내었지만, 타피오카사업이 떨어져나간 다음에는 오히려, ‘축소’되는 듯한 형국이 되었다.))
((아마도 그때는 아직 미국의 수단제재가 현실화되기 전이었다.(미국의 수단제재 시작은 2015?부터...그 사업이후, 농산물유통공사와 법정분쟁까지 가려고 했던 그 이후, 미국이 수단경제제재를 가했다.)
수단의 참깨작황이 좋지않아서였든지, 아니면 수단의 농산물수출정책의 변화때문이었든지, 어찌되었든 수단산참깨가 한국입찰시장에서 인도산참깨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Huyton과 대평원농상(주)는 에치오피아참깨를 개발하여, 한국정부의 입찰시장에 참여하였고, 몇 번의 계약을 하기도 하였다.(본 블로그 ‘에티오피아 여행기’ 참조)
또한, 가끔은 인도산참깨를 가지고, 인도공급자들과 경쟁하여 한구정부 입찰에 낙찰받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에티오피아 참깨와 인도산참깨를 가지고 한국정부입찰에 참여하였지만, 막상 수단산참깨비즈니스가 시원치않으니, 대평원농상(주)는 개점휴업아닌 ‘휴업상태’나 다름없이 크게 하는 일이 별로 없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날, 2011?
나의 안테나에 참깨시장의 변화움직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신호가 잡혀들어왔다.
인도산참깨의 작황이 여느해와 같이 풍작이 되지않을 것이라는 것과, 한국정부의 참깨구매규격(한국소비시장의 고품격규격강화)과 포장방법(마대포장에서 피피백포장)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영국의 Huyton에게, 이런 변화조짐을 알려주고 이에 대한 대비를 할 것을 주문하였다.
Huyton은 처음에는 나의 주문에 반신반의 하더니, 계속되는 나의 요구에 따라 그들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년후 늦어도 2년후를 내다보고, 나는 2가지를 요구하였다.
첫째는, 수단에 색채선별기를 도입할 것.(인도는 이미 색채선별기에 의해 참깨선별을 하고 있어서 참깨품질관리에 앞서 있었다. 수단은 아직 색채선별기를 사용해서 품질관리를 해야할 정도로 시장의 수요가 고급화되지 않았다. 기계도입비용이 만만치않았다. 아무나 설치할 수 없었다.)
둘째는, P.P bag 원료를 미리 수입하여, 한국정부의 입찰조건 변경에 미리 대비할 것.(한국정부 1회 입찰물량에 해당하는 P.P bag 원료를 미리 수입해서 확보할 것을 주문하였다.)
(색채선별기를 도입한다는 것은 최소 1년여가 걸리는 일이었고, PP bag을 준비한다는 것은, PP bag 원단을 수입해서 가공해야하므로, 이것도 최소 6개월은 소요되는 일...한국정부의 입찰공고가 발표되고나서, 도입/수입하게 되면, 해당 입찰의 납기를 맞출 수 없으니, 최소 입찰공고 1년전에는 2가지 문제를 해결해놓아야 한다는 나의 주문이었다.)
위 2가지를 Huyton측에 요구한 것은, 수단의 어느 누구도 색채선별기와 P.Pbag에 의한 수단참깨를 공급하지못한다는 것은, 참깨공급자들 특히 인도공급자들은 잘 알고 있었다....수단참깨선별시장에서는 굳이 색채선별기 사용을 하지않아도, 일반품질의 참깨를 공급할 수 있으니, 굳이 비싼금액을 들여서 영국이나 독일, 일본에서, 몇 달이 걸려야 반입.설치가 되는 색채선별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또 참깨의 포장은 마대백 사용이 일반화되어서, 또 굳이 해외에서 PPbag 원단을 몇 달전에 들여와서 PP bag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일반론이었지만 나는 이 일반론을 뒤집는, 특별론을 Huyton에게 주문한 것...국제경쟁입찰에서는 경쟁상대의 허를 찌르는, 특별한 공격이 때로는 크게 효과를 볼 수있고 나는 이를 노렸던 것.)
아니나다를까, 내가 Huyton에게 2가지 특별주문을 하고, 얼마지났을까, 2가지 문제가 Huyton의 수단공급자가 해결되었을 때, 한국정부의 참깨입찰공고가 나왔다. 고품격참깨와 포장조건이 변경된 새로운 조건의 입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