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농상(주)에서(창업1996-현재)

J 이야기 4....어느사이, 그는 나의 분신이 되어있었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8. 1. 15:29

J 이야기 4....어느사이, 그는 나의 분신이 되어있었다.

 

/J 이야기 4

 

내가 우여곡절 끝에, 농산팀(옛 조직으로는, ‘농산부’, 나중에 다시 조직개편으로 ‘농산부’ 명칭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에 오자마자 하게 된 일은, 옛 농산부의 명성을 되찾는 일이었다.

내가 농산부에 돌아왔을때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나마 조금 있었던 것도, 사료사업도, 기존팀장과 담당직원이 몰래 가지고 퇴사해버렸으므로, 정말로 농산부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서둘러 해야할 일이, 정부입찰에 과거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려면, 참여하려면, 해외공급자를 확보해야 하였다.

그 첫걸음으로, 무엇보다도, 한국정부의 농산물입찰에 최대공급자인 중국의 유력한 공급업자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저그러한 해외공급자와 입찰참여계약을 해봤자 별 의미가 없었다. 내 표현을 빌리자면, 프로야구로 말하자면, 1년에 몇승정도하는 투수를 아무리 몇 명 보유한다해도, 입찰브즈니스에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 선동열급 최강속구투수 1명을 확보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홍콩지사의 장과장의 큰도움을 받아서, 중국양유공사의 큰손과 연결되게 되었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중국양유공사의 실력자를 해태상사의 조력자로 확보하는데, 나는 최우선을 두었고, 마침내 쌍용이나 효성, 엘지.대우등 타종합상사의 견제를 뚫고, 식품전문그룹인 해태그룹의 강점을 부각시켜, 한국정부 농산물입찰의 한국파트너로 확정시켰다...

처음에는, 쌍용이 갖고있는 시멘트공장의 석탄수입권 때문에, 농산물입찰에서는 ‘페이퍼회사’를 사용하는 편법으로 시작하였지만, 결국에는 해태상사의 전문성이 증명되어, 완전한 한국대리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당시로서는, 중국양유공사의 한국정부입찰참여 한국대리인을 맡는다는 것은, 입찰비즈니스의 성공과 직결되는 큰일이었다.)

 

중국산농산물의 유력공급자를 확보하게 되자, 나는 또 다른시장 다른품목의 유력공급자를 찾아나서게 되었다.

인도산 대두박 공급자와 태국산타피오카를 대체할 인도네시아 타피오카공급자를 찾는 것이 또 급하고 중요한 일이 되었다.

(중국산 참깨 공급자를 찾아낸 과정처럼, 인도산 대두박.채종박 공급자와 인도네시아타피오카 공급자를 찾는 것도 마찬가지.

내가 우선 현지출장하여, 여러 경로를 통하여 유력공급자를 만나고 한국시장에 진출해줄 것을 약속받으면, 그 후 한국시장의 공급계약을 체결하게 되고, 첫 선적 점검차 내가 현지에 출장가서 시장전반적인 점검이 끝나면, 그 이후의 모든 일은 그에게 넘겨졌다...나는 현지출장을 하지않고 그가 내대신에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하게 하였다...

또 새로운 시장, 또 새로운 품목이 나오면, 또 똑같은 과정과 절차를 밟아서, 첫 계약후 일들은 그의 차지가 되었다.)

 

수단시장의 개발, 수단 참깨의 개발이 또한 그리하였다.

(수단참깨는 우연하게 나와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인도산 대두박 사업을 시작하려고, 영국의 사료곡물 수입업자를 소개받아서, ((홍콩의 Mr.Wong으로부터 소개받았다...Mr.Wong은 나에게 한국정부입찰참여을 위해 중국의 양유공사를 소개해준 홍콩의 무역업자..)), 영국의 Huyton을 소개받았는데, Mr.Philip이 우리 사무실을 방문하였을 때, 내 책상위의 참깨샘플을 보고서는, 대두박 상담에는 큰흥미가 없고 오히려 한국참깨시장에 대해서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시작되었다고, 앞서서 이야기한 바 있다...)

수단참깨 개발을 위하여, 1994년 최초 수단출장갔을 때 그리고 농유공과 첫 수의계약을 했을 때, 수단에 출장가고 런던의 Huyton을 찾았을 때, 수단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또 그 공급자가 있는 런던의 사무실을 방문해보고는, 나는 나름, 수단참깨상황에 대하여, 알아야할 것들을 내눈으로 확인하였으니, 그 다음 일들, 실제 계약이 이루어지고, 현지선적확인을 하는 절차적 일들은 모두 그의 몫이 되었다...중국산참깨 비즈니스에서 답습하였던 것과 마찬가지...나는 본사 지휘부를 지키고 그는 내대신 해외현장을 누비면서 입찰브즈니스를, 한국정부의 입찰비즈니스의 왕좌를 지켜내었다...

타피오카비즈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맨처음 인도네시아 타피오카의 큰손인 Dharmala group을 내가 단독출장하여, 해태의 유력공급자로 확보하고...그는 나중에 실제 계약이 이루어지면 현지선적확인등 사후관리 업무를 수행하게 되었고...

인도네시아타피오카가 다시 베트남 타피오카로 넘어가자...똑같은 과정과 절차를 따라, 그는 나의 대신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정부 입찰비즈니스업무를 해오던 중, 몇 년이 지났을까? 내가 동양글로벌로 옮기기까지 아니 동양글로벌로 옮겨서 계속 그 업무를 하고, 또다시 대평원농상(주)를 창업하여 똑같은 비즈니스르 하였는데, 그는 내가 입찰비즈니스업무릉 하는 내내, 그의 역할은 똑같았다. 내가 개발하고,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나면, 나머지 일들, 절차적이고 부수적인 일들은 그의 차지가 되었고...나는 또 다른, 또는 더 중요한 일들을 찾아, 바삐 뛰어나니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와 나는 실과 바늘처럼, 떼려야 뗄수없게 되었다.

그는 어느사이에 나의 분신이나 마찬가지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