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글쓰기(모음)

사랑하는 아들을 또다시 군대에 보내면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7. 30. 16:48

사는이야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9학기를 다니고도 졸업을 끝내 하지 않은 녀석이 이제 군대를 갔다.
지난 가을 해군을 갔다가 일주일만에 돌아온 녀석이 다시 군대를 갔다.
틈만 나면 잠의 꿈속으로 들어가 깨어나질 않던 녀석이 드디어 군대를 갔다.

이제 우리집이 조용할 것인가.
학기만 끝나 가면 성적표가 왜 아니 오느냐
등록은 언제까지 하는 건데 했느냐
왜 너는 무슨 일을 맺고 끊지 않느냐
왜 너는 잠만 자느냐
오늘 강의는 없느냐
여자친구를 왜 바람 맞추느냐

한동안 우리집은 조용할 것이다.
한동안 우리집은 썰렁할 것이다.
한동안 우리집은 허전할 것이다.
2년 1주일까지 그럴까.

우리집 잠의 왕자, 돼지 발톱처럼 어긋나는 둘째가 드디어 군대를 가는데,
애비도 에미도 마지막 떠나는 그를 보지 않는 것이 좋다고 했는지
형에게 군대로 가는 동생의 마지막을 보게 했다.
잠실 전철역까지만, 출근길 사무실 가는 도중에 형제를 떨어뜨렸다.
녀석들이 형제애를 조금은 맛볼까

동서울 터미널, 춘천행 버스, 1시간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8시 30분에 친구들과 함께 간다고 했다.
오후 1시까지 102보충대에 입소하면, 학교생활 끝 군대생활 시작.

학교생활이 주었던 무한의 자율이 이제 군대생활 속으로 들어가면 무한의 타율로 바뀐다.
바뀌는 접점에서 잠시 반동이 있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적응의 동물, 그 반동은 새로운 적응을 위한 간단한 몸부림, 통과의례 같은 것.
지나가면 몸과 마음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보약으로 돌아올 것이지만,
자잘한 생각들이 산을 이룬다.

다만, 폐쇄적 공간, 획일적 단순이 자유분방하기만 하고 속셈이 없이 천방지축인 녀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지 않았으면,
무슨 틀이 잡히지 않고 도통 어떤 질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초자연의 세계 속에 살던 그에게, 오히려 군대생활을 통하여 알맞은 틀과 단단한 질서가 우리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함을 자연스럽게 터득하고 나왔으면,
몸 크게 다치지 않고, 마음 크게 단단해져 나왔으면,
특별한 사람으로 보다 평균적인, 몸과 마음이 너무나 평균적으로 건강한 청년으로 나왔으면,

어제 저녁식사하면서
나는 그에게 던졌다.
돈이란 무엇이냐
시간이란 무엇이냐
무궁무진한 두 보물이 네 앞에 놓여 있다.
그것들은 주인이 없다.
쓰는 사람이 주인이다.
게으른 자, 욕심많은 자를 그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비교만 하는 자 또한 그들은 싫어한다.

우선 시간이 무엇인지 그 단초를 군대에서 만나보았으면,
그가 알든 모르든 선문답을 나는 그에게 했었다.
2년 1주일의 시간이라도 잘 쓰면서 우리 삶의 시작을 잘 만나고 왔으면,

내가 3년을 보냈던 군대를
그 형이 2년 6개월을 보냈던 그 곳에
이제 우리집 둘째가 마지막으로 갔으면…

오늘 아침 서울 하늘은 흐리고
그 하늘을 보는 내 마음도 여느 날 같지 않다.



지난해 11월, 동창회 홈페이지에 '곧 군대갈 아들에게' 담담한 편지를 올린 적이 있었지요.

이제 오십줄을 넘어서서 아들들을 군대에 보내야 할 나이들이 되었고, 우리들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군대 가는 녀석의 마음이나 부모들 마음이나 '싱숭생숭'할 것이어서, 혹 같은 위치에 있는 아니면 곧 있을 동년배의 친구들에게 그 일단의 감정을 함께 하고 싶어서, 올렸던 글이었습니다.

오늘 그 편지 속의 주인공이 다시, 이제 정말로 군대에 갔습니다.

오늘 자잘한 생각들이 금방 산을 이루었지만 왠지 그냥 너무 외롭고 초라해서, 지난해 11월, 심려했던 이야기들을 되돌려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군대는 무엇인가요?
우리의 아들들에게 군대는 또 무엇인가요?

사랑하는 둘째에게, 곧 군대 가야할 아들에게

왕 늦게 도착했지만 네 답글을 보니, 아빠는 우선 기쁘다.

네가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고 열심히 뭔가 고민하며 또 뭔가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람들이란 게 어려운 일에 쳐져있고 힘든 일들에 둘러싸이다 보면, 핑계거리를 찾아 그곳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래도 너는 낑낑대며 잡히지는 않지만 뭔가 씩씩대며 찾고 있는 거 같아 안심이 조금 된다.

절대 쉽게 찾아지지는 않을 것이다만 어느날 갑자기 네 앞의 짙은 안개가 사라져 있고 다시 새로운 세계가 나타날 날이 곧 올 것이다.

네가 군대를 갈 때까지도 답답하고 찜찜한 상태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아마도 훈련을 끝내고 나서 답답한 응어리가 풀리기 시작할까, 조금 늦으면 첫 휴가 나올 때쯤 모든 것이, 지난날 학창시절 갖고있던 모든 답답함과 찜찜함에서 홀가분해질 수 있을까…

이때는 이제 모든 세상일이 쉬워 보이고 무슨 일을 당해도 무서움 없이 자신있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러다가 제대를 하게되고 복학을 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다시 또다른 답답함과 찜찜함에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렇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한 단면이고 과정이 아니겠느냐?

고민하며 풀어가고 매듭짓고, 다시 고민할 일이 생기고 풀고 매듭하고… 끊임없이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일어난다.

조금씩 고민의 내용과 형식과 그 움직이는 궤도가 달라질 뿐, 소위 이상적인 '꿈의 세계'는 이 속세에는 없다.

바로 이런 과정을 이해하고 따라가면서 즐길줄 알아야, 우리 삶은 살아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재미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인생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가 나날은 괴로움이요 왕짜증일 것이야. 불교에서 말하는 인생은 苦海(고해)가 되는 거겠지.

똑같은 사안을 놓고 이렇게 상반되게 볼 수 있는 것,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나타나는 것이다.

'해골바가지 물먹은 원효대사 이야기'있지 않느냐. 알고 보면 너무나 단순하고 쉬운 것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특히 한참 젊은 시절은 이 쉬운 걸 지나친다.

알고서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

짱, 다시 학교일에 붙잡혔다니 아빠는 조금 실망스럽고 아쉽다.

군대 가기전 2 달이면 황금같은 시간들인데 학교선거관리 일을 하고 있다니, 아직도 후배들을 미더워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거 같아서이다.

훌훌 털어버리고 네 앞일을 정리했으면 했는데… 이왕 맡았으니 중립적으로 진지하게 마무리해 주고, 남는 시간 틈틈이 네 학창시절을 되돌아보고 이제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마감해 보았으면 싶다.

그리고 2년여 군대라는 특별한 사회에서 특별한 세계를 경험해 보아라.

이것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장교생활 보다는 쫄병생활을 선택한 네 결정을 아빠는 존중하였고, 너의 그 선택이 훌륭하였다는 이야기를 네가 제대한 어느날 네 입으로 들었으면 좋겠다.

올해는 유난히 겨울이 성큼, 빨리, 우리 앞에 와 있다.

우리의 마음까지 겨울바람에 내몰리지 않도록,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따뜻하게 해보자.

때로는 너무 진지함에서 무식하게 뛰어나와,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때가 있다.

너에게 지금이 그러할 때가 아닌가 한다.

군대 가기전까지 허전할 네 마음을 '단순함'으로 채워보기 바란다.

항상 생각이 많은 아빠가, 지금 몹시 혼란스러울 둘째에게.

추신;
1년여 전 아빠를 생각해 보아라. 어디 컴맹이 따로 있었느냐. 아빠가 바로 그 컴맹의 대표 아니었느냐. 무섭고 어렵기만 했는데… 걱정만 많았었는데 용기를 내어 엉금엉금 문자판을 쳐대었더니, 그런데 지금, 어느 사이, 곧잘 컴 문자판을 보지 않고 다섯 손가락으로 쳐댄다.

아무리 무섭고 어려운 일이라도 용기를 내어 마음을 먹으면, 그 결과는 이렇듯 너무나 쉽고 편안하지 않으냐. 쉽게 문자판을 두드리며 너에게 아빠생각을 알리고 또 네 답글을 , 매우 늦게 오지만.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이 되었느냐. 세상은 재미있다. 자신의 마음을 '포지티브'쪽으로 옮기기만 하면.

네게 이렇게 이메일을 보낼 수 있고, 네 답글을 보고 또 한마디 할 수 있다니, 아빠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 마음먹기에 따라 '행복'은 우리 곁에서 가까이서 미소짓고 있는 것이다.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