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출장여행기

베트남에서(1)

햄릿.데미안.조르바 2003. 9. 27. 12:33
2003.9.27.토. 베트남에서(1)
새벽 2시. 기억나지 않은 꿈결에 잠을 깼다.
어제는 그런 대로 잠을 자서 시차를 빨리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중간에 잠을 깨버렸으니 시차가 완전히 극복되지 않은 모양이다.
베트남과 서울의 시차 2 시간에 5일간의 출장은 그렇게 힘든 일정이 아니었는데, 이제 오래 써서 낡은 기계가 되었으니 쉽게 원위치 되지 않는 것이리라.
지난해 시차 10 시간 여의 미국 출장 10일의 시차극복에 거의 보름이 걸린 적도 있었지 않은가. 이번에는 며칠이 걸릴까.

그동안 출장 중 메모했던 것을 기러기 사랑방 게시판에 하나하나 올리다 보면 시차가 더 빨리 극복될지 모르겠다. 손님을 만나기 위하여 움직이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임자 없는’ 조각난 시간들이 많이 생긴다.
큰 회사 다닐 때에는 현지 주재원들이 반강제적으로 안내해주는 여기저기 물 좋은 곳들을 따라다니다 보면 사사로운 시간 갖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내 사업을 하다보니 반대로 자유로운 시간이 너무 많다. 상업적으로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곳들을 놓치는 대신, 나만의 눈으로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더 좋은 면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손님을 만나기 전후 내 눈으로 만났던 것들에 대한 메모습관이 생겼는데, 출장 후 정리하면서 읽어보면 또 다른 맛이 나와 새로운 즐거움이 된다. 옛날 찍어놓은 사진을 다시 보는 기분이랄까.

며칠 전 내 눈으로 찍은 사진 하나를 현상해 본다.

호텔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집들과 건물들의 지붕은 전쟁이 끝난 지 거의30여 년이 지났는데도 베트남의 전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낡아빠지고 허름하고 지저분하게 탈색되어 덕지덕지 '가난함'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보이면서 부끄럽지 않다고 하는 듯 하다.

내려다보이는 거리에는 장난감 같은 자동차가 천천히 달리고 거리는 수많은 오토바이가 점령해 버렸다. 우리 서울과는 반대로 보면 될 것이다.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숫자를.
그래, 마치 메뚜기 떼처럼 오토바이가 거리를 달린다. 온통 메뚜기 떼가 거리를 휘젓고 있는 것이야. 장관이다.

거기에 모자를 눌러쓰고, 복면을 하고, 또 길게 팔싸개를 한 여인들이 오토바이를 모는 것을 보노라면 처음에는 썸뜩하다가 곧 베트남의 역동성과 자유로움을 느끼게 된다.
햇볕을 가리기 위한 방편임을 곧 알아차렸지만, 그것은 다름아닌 여전사의 모습. 여인들이 거침이 없고 활달하니 베트남의 미래는 건강하고 빛날 것임에 틀림없다.

밤에는 쌍쌍이 메뚜기처럼 붙어서 데이트를 즐기고, 때로는 세 마리 심지어 네 마리 가족 메뚜기들까지 있다. 무덥기만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나으니 거리는 온통 메뚜기 떼들로 가득차게 된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사이공 강 그리고 사이공 항구. 넘실대는 물줄기들은 분명 흙탕물일 것. 꿈틀대며 과거의 역사를 울부짖으며 미래를 향해 바다로 바다로 힘차게 흐르는가.
촌스런 바지선이 더 친근하게 눈길이 가고, 정박해 있는 화물선들의 기중기들이 깃발과 함께 흰 구름 가득한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하늘 위의 구름도 바쁜가 부지런히 솜털을 만들어대고 있다.
강 옆의 숲들은 강물에 포위되어 외딴섬같이 되었으나 그 푸르름으로 주위의 소란스러움을 안아버린 듯 말 없이 서있다.

도시는 바야흐로 시끄럽게 시작되었다. 호텔 방에서 눈으로만 그림을 그리느니 몸소 걸어다녀 보자. 10시 30분에 온다는 손님이 오후 1시로 약속을 바꿨기도 했으니..........
저기 보이는 사이공 강가까지 걸어가면서 호치민 시내를 냄새맡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