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글로벌(주)에서(1995-1996)

동양글로벌에서 8; 정부의 ‘입찰중재’제안을 받고, 동양글로벌 ‘임원’을 ‘사임’하기로 하였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2. 20. 14:59

/동양글로벌에서 8; 정부의 ‘입찰중재’제안을 받고, 동양글로벌 ‘임원’을 ‘사임’하기로 하였다.

 

정부(농산물유통공사)가 수단산참깨와 중국산참깨의 입찰분쟁과 관련하여, 제3자인 동양글로벌의 임원인 나에게 ‘중재’ 해줄 것을 제안해오자, 나는 그 ‘중재임무’를 맡기로 결정하였다. 왜냐하면, 농유공의 정본부장의 말씀처럼, 동양글로벌의 ‘박이사’는 제3자이긴 해도, 수단산참깨(Huyton)와 중국산참깨(Wide Source)의 해외공급자를 한국시장에 소개한 장본인이기도 하며, 이번 입찰분쟁을 야기한 원인제공자가 해태상사인데, 해태상사는 지금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얼마전까지 농산부장이었던 동양글로벌의 박이사가 ‘책임지고 해결해주라’는 것이니, 거절할 마땅한 명분이 없었다. 하물며 그의 제안은, 한편으로는 매우 간곡하면서도 실질적인 제안이었으므로, 어떻게보면, ‘나의 책임’이라는 그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내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동양글로벌’의 ‘이사’ 사임을 하고, 정부(농유공)와 해외공급자들(홍콩의 Wide Source와 영국의 Huyton) 사이의 분쟁에 대하여, 관계당사자들을 모두 잘 아는 '개인 Mr.Park'이 ‘입찰중재’를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얼마전, ‘6층사무실 이사 사건’으로 ‘동양글로벌’을 떠나기로 하였던 ‘나의 작심’을 이번에 그대로 실행하기로 하였다.))

 

정부(농산물유통공사)의 ‘입찰중재’ 제안을 받기로 마음을 결정하자마자, 나는 채오병사장에게, 최근 정부의 참깨 국제 입찰에서, 수단산 8천톤 전량이 최저가응찰자가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중국산 참깨를 선호하는 국내시장상인들의 반발과 중국산참깨를 공급하고자하는 중국정부의 항의에, 한국정부(농유공)가 진퇴양난에 처해있다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였다.

내가 그동안 어떠한 역할을 해왔는지도 설명해주었다.

(해태상사 근무때, 홍콩의 Wide Source나 영국의 Huyton도 모두 내가 해외공급자로 발굴하여 한국입찰시장에 등록시켰고, 수단산참깨 입찰을 위하여 향도상사를 농유공입찰등록시킨 것도 장본인도 나였다고 설명했으며, 또한 농유공의 정본부장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내가 있으니, 나에게 책임지고 해결하라 하는데, 나로서는 그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Huyton이나 Wide Source에서도, 심지어 해태상사에서도 나로 하여금 ‘중재’를 요청해서, 정부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다. 해태상사의 농산부를 떠나서, 동양글로벌의 ‘임원’으로 옮겼기 때문에 ‘당분간, 문제해결때까지, 해태상사의 농산부장 노릇을 책임지고 해야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내가 동양글로벌의 임원으로서 근무하는한, 해태상의 ‘농산부장’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임원’의 직무유기는 아닐지라도, ‘배임’에 해당될 수도 있었다. 나는 채오병사장에게, 정부의 입찰중재제안을 받아들이되, 동시에 동양글로벌의 ‘임원’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가 되니, 동양그룹의 ‘임원사임’할 것을 말씀드렸다.

(이번 기회를 빌어서, 나는 그동안, 동양글로벌에서 쌓였던 불만과 앞으로 내가 과연 동양그룹에서 무엇을 할수 있을지, 깊은 회의에 차있었으므로, ‘임원사임’을 통보하고 곧 ‘동양글로벌’을 떠나기로 하였던 것이었다.)

물론, 채오병 사장은 무슨 일을 그렇게 칼로 자르듯이 엄격하게 적용하느냐고 나를 나무라면서, 농유공 참깨입찰 관련 ‘분쟁중재’에 대하여 전혀 문제 삼지 않을 것이고, 아무런 부담없이, 끝까지 ‘중재'역할을 해도 좋으니, ’사임‘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말라 하였다.

(당신도 옛날 부장시절, 조달청의 국제입찰 경험이 많은데, 입찰로 인한 국내외 분규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니, ‘박이사’는 전혀 구애받지말고 농유공과 해외공급자들의 분쟁을 잘 해결, 마무리짓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리 할 수 없었다. 동양에서 월급을 받으며 더군다나 ‘임원’이란 자가 자기일은 하지않고 ‘남의 일’을 처리하는 데 온정성을 쏟아낸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임원’이란 사람이 바쁜 회사일은 팽개쳐놓고, ‘입찰중재’한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것을 동양글로벌 직원들에게 설명할 자신이 없다고 하였다.

‘사임’을 하는 것이 맞고, 그리고 제3자로서 ‘입찰중재’일을 해야하는 것이 맞다고 보았다. 나는 ‘사임’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하였다.

나는 ‘사임’을 끝까지 고집하였다. 앞서도 잠깐 이야기한 바있듯이(사료담당 직원 채용문제와 사무실 6층 이사문제를 나와 일언반구 협의가 없었다), 나의 마음은 이미 ‘동양글로벌’에서 떠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