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2..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잊고있었던 ‘동양’에서 연락이 왔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2. 9. 08:49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2..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잊고있었던 ‘동양’에서 연락이 왔다.

 

서류를 보내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동양그룹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임원초빙 문제이니만큼, 합격여부를 떠나서 가부 결과를 알려줄 만도 한데 아무런 소식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고...나는 또 업무에 열중하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 농산부에 근무하던 직원하나가 갑자기 사표를 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직감적으로 ‘동양글로벌’로 옮긴다고 생각하였다. 평소 그의 근무태도로 보아, 나의 농산부운영방침을 따라오지못하고 딴생각을 한다싶었는데, 내가 신입직원들 교육용으로 정리.편찬한  ‘무역실무편람’을, 얼마전 통째로 복사하는 것을 보고, 그가 곧 ‘사표’를 쓸것이라 짐작하였던 차였다...((얄궂게도, 내가 얼마후 ‘동양글로벌’의 농산.식품사업담당 임원으로 스카우트되면서, 그는 또 나를 거기서 만나게 된다. 그는 한치 앞을 보지못하는 운명을 타고 난 것?, 야릇한 우리들 운명 아닐까?))

공산품사업부의 다른 부서직원들도 몇몇이 사표를 내고 ‘동양글로벌’로 이직하였는데, 막상 ‘임원’지원을 한 나에게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않으니, 나는 동양글로벌의 ‘임원’으로 초빙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였다.)

 

1월초쯤에 원서를 내었으니 시간이 꽤 흘렀다.

어느때쯤이었을까?

3월쯤 되었을까, 어느 날 동양그룹 회장실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직도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나와는 서울대 70학번 동기, 사대영어과출신 0수건...이름이 기억하기 좋아 더 잘 기억하고 있다. 동양글로벌을 맡으신, 대표이사가 장기해외출장중이어서, 연락이 늦었다. 죄송하다. 곧 ‘면접’하기 위하여 접촉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로 채오병 사장(서울대 경제학과, 제일모직.삼성물산 전무출신..해태상사 유부회장과는 평소 막역한 선.후배사이로, 나를 스카우트해가자 유부회장에게 호되게 얻어들었다. 1997년 간암으로 작고.)이라는 분께서 차 한잔 하고싶다는 전화가 왔다.

그는 이렇게 늦게 연락하게 되어 대단히 미안하고, 해외출장이 예상외로 길어져서 며칠 전에야 귀국하였고, 임원지원 서류를 이제야 보게 되었다는 것을 부연설명해주었다.

(그동안 왜 아무런 연락이 오지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모두 잊고 새롭게 일을 하고있는 나로서는 좀 당황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렇다고 차한잔 하자는 데 처음부터 ‘거절’하기는 또 그래서, 일단 만나기로 약속하였다. 차한잔 하면서 점잖게 거절하면 될 것이라 판단하였다.)

 

마침 그때 동양그룹은 ‘동양건설사업본부’가 부속사업부서로, 해외사업 신설법인인 ‘동양글로벌’에 소속되어 있었고, 해태상사가 있던 불교방송빌딩과는 지척이었다.(가든호텔 바로 앞, 삼창플라자가 건설현장이었다.)

동양글로벌의 대표이사인 채오병사장이 ‘건설사업본부’의 본부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그는 삼창플라자 건설현장에 올때마다, 나를 불러내 ‘차한잔’하자며, 모르는 사람끼리 더 가깝게 하기 기회를 기회만 되면 찾으려 하였다.

맨처음 ‘차한잔’하면서, 나는 지금은 동양글로벌의 ‘농산.식품사업본부장’에 더 이상 관심이 없고, 현재 일에 충실하고있다고 거절 의사표시를 하였지만, 그는 ‘마지막 말’은 지금 하지말고, 이왕지사 우리 이제는 알게 된 사이가 되었으니, 가끔 시간내어 단순하게 ‘차한잔만’ 나누자면서, 관계를 끊어버리지 않고 계속 이어갈수있도로 뒷맛을 남겨두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아니되옵니다’라고 매정하게 끊어버릴 수도 없고, 막연히 ‘허허’웃으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은 채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가 잊어버릴 만하면 또 전화를 걸어와, ‘나 지금 가든호텔 앞 현장에 왔는데, 시간좀 내주세요, 차한잔 합시다’ 하면서 나를 불러내었고 나는 별 특별한 의무감없이 차한잔 하는 것이니 뭐 어때하는 심정으로 그를 만났다.

(불륜같기도 하지만 또 불륜은 아닌것같고...그러나, 근무중에 경쟁상사의 대표이사를 회사밖에서 비공식으로 만난다는 것이,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계속 만난다는 것이 조금은 꺼려지기도 하였다.)

(남여의 연애감정이란 것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나중에 그때를 생각해보면... 딱 싫으면 딱싫다하고 더 이상 만나지 않았어야 맞는데, 나는 특별한 이성감정은 없었지만, 비호감이 아닌 상대방이 차한잔 하자고 하니, 뭐 특별한 감정없이 몇 번 응하게 되었고...자주 만나다보니, 막연하게나마 없었던 감정이 싹트게 되었고...채오병사장은 바로 이런 연애감정 유발을 노렸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의도한 것은 아니었을지라도,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고, 채사장님은 그런의미에서 성공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유비가 제갈공명을 삼고초려하듯 마땅한 인재를 드디어 찾은듯 속은 구렁이가 몇마리 들어있었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