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국제경쟁입찰 ‘유감’, ‘휴가날짜를 잡아놓으면, 곧 취소해야 하다니@@@’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2. 3. 15:25

//국제경쟁입찰 ‘유감’, ‘휴가날짜를 잡아놓으면, 곧 취소해야 하다니@@@’

 

정부의 물가안정용 특용작물을 수입대행하는 농.유.공의 입찰이나, 한국사료협회.축협의 사료곡물(부산물)의 입찰이나, 한국옥수수가공협회의 옥수수입찰이나 또한 대한주류공업협회=주정협회의 주정제조용 타피오카칩의 국제경쟁입찰등이 모두 우리 농산부의 주요사업이었다.

국제입찰이란 것이, 항용 그렇듯이, 예고없이 공고되기 때문에 입찰이 언제 공고될지 아무도 알수가 없다.

단지, 치열한 정보싸움에서 언제쯤 입찰이 공고될 것이라 추측할 뿐 어느 누구도 정확한 입찰일/등록일을 알 수가 없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농.유.공의 특용작물입찰의 경우, 누가 먼저 입찰정보를 비슷하게 맞추어내는지가 매우 중요하였다. 공식입찰 공고후, 7일 또는 10일 후 입찰마감하므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따라서, 입찰이 공고되면 그때부터 일종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

본사와 해외지사간 통신량이 늘어나고, 또한 나는 해외공급자의 책임자와 국제전화통을 잡고 시도때도없이 국내시장정보를 주고 산지의 시장현황에 대하여 묻고 답하면서, 다가오는 입찰일의 최종가격을 조율해나간다.

(입찰공고가 나면, 국내외 시장정보만 교환.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물품가격이지만, 생산지에서 소비지인 한국까지 유통단계별 가격구성요소등 각 단계별 가격들을 경쟁적으로 만들어나가야 한다. 즉, 산지-항구까지의 운송비+해상운임+보험료+환율+국제금리등에 대한 사전조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각단계별/모든 단계별로 경쟁적인 비용이 ‘경쟁적인 물품대’에 더 해졌을 때, 바로 경쟁적인 입찰응찰가격이 나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입찰정보를 가능한한 하루라도 빨리 입수해야, 산지에서 좋은 물품을 좋은 가격에 선점할 수 있다.

물품대가 한두푼이 아닌 몇백만불/몇천만불에 상당하므로, 국제금융을 활용해야하고, 때로는 선물+국제금리+환율까지 연결된다.

또한, 경쟁적인 해상운임을 확보하려면 좋은 포지션의 좋은배를 경쟁적가격으로 Chartering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입찰경쟁자들을 이겨낼 수 있다.

최종적인 응찰가격이 다른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서려면, 물품대뿐만 아니라 부수되는 수많은 가격구조.비용요소에 대해서도 경쟁우위에 있어야, 최저가응찰자가 될 수 있다.)

입찰공고가 뜨면, 바로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말이 이래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 입찰꾼들 말로하자면, 시도때도 없이 입찰이 뜬다.

입찰을 부치는 기관들은 ‘갑’이고, 그 입찰에서 먹고사는 우리 상사들은 ‘을’이다.

갑이 언제 입찰을 부칠지 을은 알수가 없고, 입찰이 뜨는대로 ‘을’은 ‘갑’이 원하는 조건에 모두 맞춰서 준비해야한다.

입찰비즈니스의 속성이 그러하다보니, 회사의 시무식이나 종무식때도 나는 입찰준비를 해야하고, 휴가계획을 잡아놓고 내일 비행기를 타야하는데도 바로 취소하고 입찰준비를 해야한다.

 

회사종무식때의 풍경;

보통 12.29 또는 12.30 또는 12.31에 회사종무식을 하는데, 이때 사무실 책상들을 모두 한켠으로 몰아부쳐놓고, 한가운데에 식탁을 만들어놓고 그 위에 간단한 음식.술.과장등을 올려놓는다.

국제입찰이 뜨면, 나 농산부장의 책상은 구석지 한곳에 부쳐놓고 책상 위에는 전화통과 메모지와 볼펜만 놓여있다.

종무식이 진행되는 중에도, 나의 전화밸은 울리고 나는 해외공급자와 입찰준비를 한다.

(나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조용하게 시작하지만, 대화가 깊어지고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나의 목소리는 높아지는지, 종무식 참가 모든 사원들이 나를 힐끗 보기도 한다...영어발음이나 좋아야 하는데 오리지널콩글리쉬를 하는 나는 그 방면으로 유명하다.)

 

더 고약한 경우는, 내가 휴가가기로 모든 일정을 잡아놓고, 떠나기 며칠 전이나 심지어는 하루전에 ‘입찰공고’가 나오는 때도 있다.

미루고 미루다가 간신히 잡아놓은 휴가계획이 펑크가 나는 순간이다. 나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나의 집사람은 속이 터지고 또 터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찌하랴, 지아비의 하는 일이 국제입찰비즈니스인 것을...숙명으로 받아드리는 수밖에 달리 할 일이 없지 않은가?

(한번은 이런 경우가 있었다. 내가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 얼마 지나지않아 홀인원을 하게 되었다. 2001년 어느날, 아시아나CC에서 덜컥 홀인원을 해버렸는데, 프랑크푸르트 왕복 비즈니스 항공권이 부상으로 나왔다. 그것도 부부가 함께 가는 여행상품권이었다. 단, 홀인원 한 날로부터 1년이내에 사용하는 조건이었다...1년안에 비즈니스석을 타고 유럽여행하는 것이니 가까운 시일안 어느때 당연히 곧 여행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유럽여행일정을 확정해놓으면 얼마있어 바로 입찰공고가 나와서, 잡아놓은 여행일정을 취소해야 하였다. 그러기를 몇 번일까? 거의 1년이 다되어 가는데 마지막으로,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동유럽여행상품에 우리부부가 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또 입찰이 뜨면, 비즈니스석 유럽여행이 날라가버리는 절체절명의 기회였다...뭐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소란을 피우나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도 아니고 몇 번 여행을 취소해봤다면 마지막 남은 기회가 살아있을지 또 죽을지...어려운 시험 합격자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 기분이 되었다.

다행히 그때, 입찰이 뜨지않아, 모처럼 우리부부는 동유럽여행을 잘 다녀왔다..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가 뉴스를 점하고 있을 때이니 2002년 어느때 가을이었을까?...더자세한 내용은, 나의 블로그 카테고리 ‘동유럽여행기’에서 )

 

정부의 특용작물 입찰은 주목적인 국내소비자가격 안정용으로 도입하는 것이므로, 추석.구정물가를 타겟으로 ‘긴급입찰’이 자주 시행되었다.

그리하다보니, 추석.구정전후의 귀향일정은 모두 취소되기 일쑤이고, 년말즈음에는 휴가계획을 잡아봤자 실행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국제입찰비즈니스를 하는 나의 숙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