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대한주류공업협회=주정협회 회원사들의 항의방문, 과감하게 ‘백지’ 승낙해주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1. 20. 11:45

/대한주류공업협회=주정협회 회원사들의 항의방문, 과감하게 ‘백지’ 승낙해주다.

중국산참깨(농수산물유통공사)와 인도산대두박(한국사료협회.축협) 사업을 이야기하다보니, 우리 농산부사업의 또다른 축인 타피오카칩(대한주류공업협회=주정협회) 사업 이야기를 하지못하였다.

이제부터는 그 이야기를 하여야겠다.

 

소주는 조주정을 희석시켜서 만든다.

조주정은 탄수화물을 많이 함유하는 농산물(쌀.보리.고구마.밀등)을 발효시켜 만든다. (탄수화물의 Starch 함량이 조주정생산수율을 좌우한다.)

소주는 아시다시피, 국내서민들이 애용하는 국민주=서민주.

국내소비자물가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주세수입과 직접 연결되어있어서, 조주정생산에 대하여는 국세청이 직할관리한다.

(아직 우리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전, 1960년때까지만 해도, 소주의 조주정원료는 국내산 쌀.보리.고구마등으로 충당되었다. 그때는 해외에서 원료를 수입해서 제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경제개발이 시작되고 국내농업생산이 여의치않아지면서, 쌀.고구마를 사용해서 소주를 만들면 원가부담이 커졌다.

해외농산물을 싼값에 도입해서 국내소주제조원가를 조정해야 하게 되었다. 국내산 쌀.고구마를 대체할 수 있는 해외농산물 중 태국산 타피오카칩만한 것이 없었다.)

 

앞에서, 한.태구상무역=태국산 타피오타칩과 한국산 비료의 교환판매(사고팔고 또는 보상무역)를 이야기한 바 있었다.

바로 그 타피오카칩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

 

내가 대기발령상태에서, 개발팀장으로, 그리고 얼마되지않아 갑자기 다시 농산팀장으로 보직이 바뀐 것은, 당시 농산팀장이 Peter Cremer 등을 빼돌려 신규법인을 설립하면서, 그 자리를 급하게 내가 맡게 된 것.

그 와중에, 대한주류공업협회 회원사에 공급하기로 했던, 태국산 타피오카칩의 공급에 차질이 발생하게 되었다.

원료재고가 곧 바닥이 나게 된 소주제조 조주정공장에서는 난리가 났고, 급기야 대한주류공업협회 회원사(진로,백화, 보해, 무학등 소주제조업체 조주정공장) 대표들이, 우리 해태상사 사무실로 쳐들어왔다.

새로이 ‘농산팀장’이 된 나에게, 조속히 공급계약 이행을 촉구하는 자리였다.

나는 일체의 변명을 하지않는 대신 통크게 회원사들의 모든 요구조건들을 모두 수용하겠다고 바로 선언하였다. 소위 ‘백지약속’이었다.

(빅바이어인 그들과 사소한 계약조건가지고 티격태격해봐야 얻을 것은 ‘좁쌀’이요 잃을 것은 ‘믿음’이었다. 과감히 좁쌀을 포기해버리고, 그들의 큰신뢰를 얻어야 했다. 더군다나, 그들은 ‘불안.불안’하였다. ‘농산팀장’이 몰래 야반도주하였다는 데 장차 타피오카공급이 차질없이 이행될 것이냐였다. 그 ‘불안’을 일거에 날려보내야했다.)

회원사들 대표들은 의외의 성과에 놀랬다. 보통 해외농산물 공급계약에서는, 현지사정에 따라 여러 조건들이 변경될 수 있으므로,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왕왕 거래조건 변경들에 대하여 이런저런 밀고당기기를 하는데, 농산팀장이 바뀌었으니, 새 농산팀장과 새로운 공급이행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어 왔는데 내가 ‘백지약속’을 해버리니,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어버린 것.)

 

그들로서는 단단히 벼르고 올라왔는데, 새로 부임한 해태샹사농산팀장이 ‘원하는 대로 모두 해주겠다’고 백지약속을 해버리니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게 된 것.

나로서는, 계약조건 일부변경하고 계약단가 일부조정하면서, 국내바이어들과 밀고당기기하느니 차라리 그들의 모든요구조건을 모두 받아주는 것이 훨씬 ‘실익’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멀리 보고, 또한 내가 새로 왔으니, 그들의 요구조건에서 하나도 빼지않고 모두 해주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었다. ‘소탐대실’하느니 사소한 몇 개를 주면서, 안정적인 물량과 경쟁없는 계약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남는 비즈니스였다.

나의 ‘백지약속’은 큰 효과를 보게 되었다.

새로 부임한 해태상사의 농산팀장이 옛 명성대로 일을 찌질하게 하지않고 시원시원하게 처리한다고 모두들 좋아하였다. 나에 대한 칭찬이 대한주류공업협회 회원사들 사이에 자자하였다.(그동안 몇가지 계약조건으로, 공급이행이 지지부진했던 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걱정이 많았던 그들로서는, 전혀 예상치못한 ‘계약이행’에 대한 확인이었다.)

 

나는 그날 즉시로, 태국의 Chaiyong Group과 태국산타피오카칩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대한주류공업협회(=대한주정협회)의 미공급물량 전량을 차질없이 공급하기로 하였다.

(일체의 계약조건변경없이 당초 체결한 가격에서 이행하기로 하였다.)

지금 기억으로는, 이로 인하여, 타피오카칩의 국제가격이 올랐지만 바이어인 대한주정협회의 당초계약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Chaiyong Group에서 계약단가를 조금 낮추고, 또 해태상사는 이익을 하나도 보지않는 선에서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고’가 났는데도 사고처리에 집중하지않고 거기서 또 이익을 챙기려고 했다가는 게도 놓치고 구럭도 놓치는 것이니, 나는 ‘이익’을 조금 보자고 회원사들과 티격태격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을 보았다.

공급계약이 어려워진 것은 태국산타피오카 생산여건이 바뀌고 있는 탓이 컸다. ‘농산팀장’이 갑자기 신설법인을 세워 ‘퇴사’한 것은 표면적인 문제일 뿐이었다.

즉, 태국산 타피오카칩의 대외경쟁력이 옛날같지 않게 된 것이 그 밑바탕에 있었다.

특히 타피오카품질이 갈수록 떨어져서, 조주정공장에서 불평.불만이 많이 터져나왔다.

가격은 가격대로 오르고, 산지에서부터 원료선별이 불충분하여 모래등 이물질이 많이 섞여서 수입되고 있다는 것. 이는 단순한 품질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태국산 타피오카의 생산원가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다.

나는 태국산이 아닌 다른 동남아산 타피오카로 대체수입해야 하지않을까에 착안하였다. 베트남산 타피오카는 가끔 들어오긴 하였지만, 품질은 좋으나 아직 정치적으로 불안정하여 공급여부가 매우 불확실하여, 안정적인 공급문제가 매우 컸다.(베트남의 식민지배 경험있는 프랑스회사 General Societe를 통하여 전임자들이 몇번 시도해보았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미선적 불이행 클레임만 남기고 떠나버렸다...)


태국의 Chaiyong의 Mr.Boonchai에 물어보니, 인도네시아에 타피오카가 생산된다는 것.

나는 바로 시장조사에 들어갔다. 인도네시아산 타피오카칩이 바로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