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참깨 인천항 도착, 그러나 ‘반송명령’을 받고...
/중국산 참깨 인천항 도착, 그러나 ‘반송명령’을 받고...
정부의 참깨경쟁입찰에서 연일 승승장구하던 우리는, 잠깐 방심하였던지 인천항에 도착한 3000톤급 참깨선박을 중국으로 다시 반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난리가 났다.
잘못 풀리면, 정말로 반송해야한다면, 앞으로 참깨입찰사업을 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르는, 그만큼 큰일이었다.
이를 어찌 수습해야 할 것인가?
(정부 입찰에 최저가응찰로 낙찰되면, 계약에 들어가고 곧 선적을 하게 된다. 정부의 입찰조건은 물건이 선적전 정부관련기관의 대리인이 현지출장하여 물품검사를 하고, 물품검사에 합격된 것만 선적할 수 있다. 그런데, 선박의 출항일정이 촉박하여 물품검사요원의 확인을 받지않고 인천항으로 출항해버린 것이었다.
당연히 농산물유통공사=농.유.공의 현지출장직원은 이를 본사에 보고하였고 본사는 당연하게도 규정상 반송명령을 때린 것. 정부의 입찰기관과 해외공급자/국내상사 사이의 권력관계를 고려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농유공은 펄펄 뛰었다.
“감히...감히...너희 중국의 일개 공급자가...우리의 사전확인없이 배를 출항시키다니...그 죗값이 어찌되는지 똑똑히 보게 될 것이야”
농유공 본사는 할말 못할말 가리지않고 우리 해태상사에 쏘아댔다.
내가 농산사업을 오래 해보았지만, 이런 ‘불경’의 상황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공급자가 한 일은 바로 우리 해태상사가 한 일이요, 그들이 풀어달라고 하면, 나의 일처럼 풀어주는 것이 한국에 있는 우리의 일 아니느냐 면서...홍콩의 공급자를 달래고 안심시켰다.
(사실은, 여러문제가 중첩되어있었다...하나는, 홍콩지사의 장종0과장과 농유공의 신입 출장직원의 자존심싸움이 있었고, 또 공급자와 선박회사간의 계약문제가 있었다. 농.유.공 출장직원의 보이지않는 ‘갑질’에 우리 홍콩지사 장과장이 꼬라지 ‘을질’을 기술적으로 하였고, 거기에 급박한 선박출항일정이...다음 선적항으로 가야하는 일정이..너무 촉박하였던 속사정이 있었다.)
일은 어차피 벌어진 것. 그것을 푸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방법을 동원하였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주말을 이용하여 농유공 최고위층을 방문해도 해답은 없었다.
(내가 방콕지사장으로 근무때, 농림부 차관과 함께 방콕와서 골프와 관광안내를 해서 안면을 익힌 사이였다. 또 나의 대학선배이기도 하였는데, 사안이 커서인지 ‘공과 사’는 뚜렷이 갈라치는 것이었다.)
농유공 최고책임자를 더 밀어붙이면 잘못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어서, 다시 실무책임자에게 ‘정공법’을 택하기로 하였다.
이왕지사 참깨3천톤은 인천항에 들어왔고(외항에 대기중), 농유공은 참깨재고가 그리 여유없다고 조사되었으므로...외항에 가서 본선임시검사를 하여, 물품에 하자가 있으면 ‘반송’을 하고, 하자가 발견되지않으면 일단 하역을 하고나서, 다시 최종검사를 하여 ‘반송’ 또는 ‘클레임’을 제기하면 좋지않겠느냐는 ‘공문’으로 농유공을 우회설득하기로 하였다.
(외항선상 검사--하역후 최종검사 절차는, 표면적으로 내거는 ‘명분’이었다. ‘명분’을 주고, 농유공은 그 절차에 따르면 ‘공무집행’에 하등의 잘못이 없는 것. 나는 이 절차문제를 파고들었다.)
(외항의 본선에 올라가는 요원들은 물론, 하역후 물품검사하는 요원들에 이르기까지, 우리직원들에게 하나하나 관리에 들아가도록 지시해놓았다. 이미 검사합격이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도록 모든일은 사전 씨나리오를 짜놓았다.)
우리의 ‘공문’에 따라 농.유.공 실무진들은 움직였다. 농.유.공 인천지사는 본사의 큰그림(외상 본선검사--하역후검사)에 따라 또한 움직였다.
마침, 농유공 인천지사의 하역.물품검사 책임자가 송부0과장으로, 나와는 일본땅콩수출때부터 속속들이 주고받던 사이였다.(어찌나 까다롭고 괴팍스러운지 모두들 혀를 내둘렀지만, 나는 나름 그를 대접하고 다루는 묘수를 이미 갖고 있었다. 그는 특별한 때가 되면 무조건 해태본사로 나를 찾아와 특별선물을 요구하였고, 나는 싫어하지않을 정도에서 선물을 줘서 보냈다. 그 방정식의 해법을 나는 알고있었다. 일은 풀린 것이나 마찬가지.)
하역후, 물품검사가 평소보다는 훨씬 까다롭게 진행되었지만 결과는 우리가 바라는 바대로 끝나게 되었다.
길고 긴 터널을 힘들게 통과한 셈이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 형국이 되었다.
(하루이틀 일찍 배를 출항시켜 다음 선적을 조금이라도 서둘러하려다, 오히려 7일정도 더 늦게 되었으니, 그에대한 선박체선료가 만만치 않을 것이었다. 소탐대실이었다.)
정부의 입찰관련기관이 얼마나 큰 조직인지, 해외공급자가 아무리 크다해도 입찰참가하는 일개 회사에 불과하였다.
홍콩 공급자는 한국정부의 입찰기관이 일반시장의 바이어가 아님을 크게 깨달았을 것이다.
(홍콩지사의 장과장도 농유공 출장직원을 아무렇게나 ‘자존심’싸움을 하는 것은 ‘금기’사항임을 그때 알게 되었다...지금도 나는 그때 이야기를 하면, 그는 실실실 꼬리를 내리고 미안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