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주1회 일찍 퇴근하기, 손글씨로 생일축하하기.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1. 18. 21:24

/주1회 일찍 퇴근하기, 손글씨로 생일축하하기.

 

우리 농산부가 사업에서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자 나는 또한편으로는 직원들의 사기진작에 힘을 들였다.

우선, 그들과 허물없이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매일 아침 회의를 통하여, 근무자세를 가다듬는 한편으로, 점심시간이나 퇴근후 회식자리에서 전혀 부담이 되지않도록 노력하였다.

점심식사는 외부손님이 없는한 언제나 전직원이 함께 모여서 하였고, 퇴근후 회식도 자주 하였는데 원칙이 있었다.

입찰참여하여 계약이 되면, 그날은 무조건 전직원 회식을 하면서 그간의 노고를 정리하고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접대비 이야기는 후술)

나는 점심을 직원들과 함께하면서, 부서회의를 하는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식사하기도 하지만, 그때 그때 주요한 사업내용에 대해서 나의 방침을 말하고 또 그들의 의견을 듣는 시간으로 활용하였다. 꿩먹고 알먹고의 자린고비작전이었다.

외부손님이 왔을 경우, 나는 모든직원들과 외부손님들을 함께 자리하여 식사대접하였다.

외부손님들도 격의없이 농산부직원들과 어울리게 되니 매우 좋아들 하였다. 다른 상사부장들의 자세와는 너무 다른, 열려있고 허심탄회해지니, 일이 더 잘돌아가는 것같았다.

외부손님이 협력사인 경우,협력사사장들은 점심식사자리를 대단히 좋아하였다. 농산부직원들과 자연스럽게 개인적으로도 가까워지니, 서로의 사업에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 하였다.

외국에서 손님이 와도, 나의 농산부장의 방침은 변함이 없었다. 우리가 평소대로 하는 점심식사자리에 외국손님을 함께 초대하면, 모두가, 직원들도 외국손님들도 대환영이었다. 격식을 갖춰서, 호텔등에서 비싼음식을 대접하는 것보다, 이렇게 직원들과 평범한 식사를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욱 뜻깊에 받아들여지는 모양이었다.

홍콩에서 오는 Mr.Wong은 우리농산부의 단골외부손님이었다. 정부입찰의 유력공급자 Wide Source의 홍콩책임자였는데, 그가 방문하면 나는 그를 직원들과 함께 삼계탕집으로 데려가 점심을 함께 하였다. 그는 다른 어떤 음식보다도, 우리 농산부의 삼계탕을 제일로 평가해주었다.

 

또하나, 농산부사업이 번창하니 일도 많아지고, 야근하는 날도 늘어났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제안을 하였다. 주1회, 최소한 하루는 4시에 퇴근하라!!

내가 먼저 솔선하여 하루 일찍 퇴근하여, 집식구들과 좋은 시간을 가져주었다.

직원들도 자유롭게, 본인이 제일 편한 시간에 하루 일찍 퇴근하니 직원가족들이 더 좋아하였다.

또 1년중 하루는, 특별휴가를 내라고 요구하였다. 제주도 항공권이나 영화티켓을 사주며 직원들을 조금이나마 직장에서 벗어나도록 애써주었다.(요즘 신문을 보면, 이런 조기퇴근이벤트가 시행되는 것을 보고, 아 우리는 그것을 20여년전에 이미 해봤는데 하면 옛생각이 든다. 참 좋은 농산부였는데....)

 

또하나,

직원들의 생일날에는, 생일축하를 하나하나 전직원이 돌아가며 생일축하카드에 손글씨로 써 축하해주었다. 간단한 생일축하선물도, 생일축하회식자리도 좋아하였지만 유독 손글씨로 축하해주는 직원모두의 축하를 모두가 좋아하였다.

그만큼 우리농산부는 하나에서 열까지 똘똘 뭉쳐서 생활하였고, 바로 그래서, 5년연속 ‘흑자’를 내고, 종합상사중 유일하게 정부입찰에 최고실적을 낼 수 있었다고 자부한다.

전직원이 한마음.한뜻이 되었는데 이루지못할 사업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이런 해태상사농산부를 1995년 4월 그만두고 동양그룹의 해외사업창구인, 신설법인 ‘동양글로벌’로 자리를 옮긴다. 그날 나는 환송행사에서 모든 농산부직원들의 소주한잔씩을 받아마신후, 지구가 흔들흔들 움직이는 새세상을 보게 된다.(후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