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직원실무교육 3; 새내기 상사맨 매뉴얼=‘무역실무편람’, 그리고 ‘쎄미나’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1. 16. 06:41

/직원실무교육 3; 새내기 상사맨 매뉴얼=‘무역실무편람’, 그리고 ‘쎄미나’

‘겁 없이 영어말하기’ 그리고 아침회의를 통한 'Plan, Do and See'로 자신감 갖기.

기초체력을 더 장기적으로 강화하여 ‘전투체력’화해야 한다고 나는 판단하였다.

나는 주 1회 또는 월1회정도로, 우리 농산부사업품목과 관련한 주제(예; 참깨.팥.땅콩.쌀.커피, 설탕, 아몬드, 건포도, 밀, 옥수수등)이거나, 또는 무역거래와 관련된 전문지식(예; 용선실무=Chartering, 보험실무, 무역금융, 영문계약체결실무, 해외무역관행=Incoterms. 관세통관실무.물품검사검증실무등)에 대한,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시행하였다.

 

농산사업 품목.시장에 대한 세미나는 훗날, 실제 그 시장에 진출할 때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고, 세미나로 품목에 대하여 한번 들었으니, 그 품목을 어떻게 사업을 전개해야하는지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해주었다.

농산부 품목.시장에 대한 세미나도 좋았지만, 특히 인기를 끈 것은 외부전문강사를 초빙하여 Chartering이나 Incoterms 및 영어계약실무등을 들을 때는 우리 농산부직원뿐만 아니라, 공산품.자원사업부등 Bulky Cargo=대량화물을 취급하는 부서까지 인기가 많았다.

강의를 해주는 외부강사들도 우리 농산부의 취지를 십분 이해해주고 오히려, 강사료 없이 소위 ‘재능기부’를 흔쾌히 해주었다.

(외부강사는, 내가 직접 섭외하였는데, 우리농산부 사업과 연관된 협력사중에서 엄선하였다. 보통 대기업과 거래하는 협력사들은, ‘을’의 입장이어서 실거래때는 음으로 양으로 ‘갑질’하는 대기업의 눈치를 보게 돼 있다. 그럼에도 우리농산부와 거래하는 모든 협력사들은 그런 눈치를 하나도 보지않게 하는 대신에, 거래조건에서 ‘착한가격’을 최우선으로 제시하게 하였다. 나는 부장으로서 그 외 어떤 조건도 달지않고 ‘착한조건’을 제시한 협력사에게 최우선하여 거래하게 하였다. ‘뒷돈’을 챙긴다거나 ‘삥땅’을 뜯는다는 것은 우리농산부협력사에서는 결코 없었다. 오히려, 나는 협력사대표들을 우리부서의 회식자리에 자주 초대하여 직원들과의 소통이 잘되도록 도와주었다. 직원들의 집들이등 행사에도 초대하여 ‘고스톱’ ‘포카’게임등도 함께 하며 ‘을’로서 해야할 일은 ‘착한조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 직원처럼 대접해주었다. 그때 우리와 거래했던 협력사들은 해태상사 농산부의 분위기를 지금도 못잊어한다고 들었다.)

위와같이 영업에 필요한 간접.전문지식을 세미나등을 통하여 보완해나가니, 하던 영업에 탄력이 붙고 더 자신감이 붙게되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였다.

결과론적으로, 해태상사 역사상, 3년, 4년, 5년 연속‘흑자’를 내는 것은 나의 ‘농산부’가 유일하였다.(어느 상사이건, 무역사업으로 ‘흑자’를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 통설. 왜냐하면, 그룹사의 창구역할을 하므로 최소한의 대행수수료 가지고는, 고급인력을 쓰는 인건비와 해외출장비. 해외통신비. 접대비등을 소화해내기는 쉽지 않았는데, 그 어려운 ‘흑자’를 나의 농산부는 5년 연속으로 할 수 있었다.)

 

((1992년? 내가 수석부장이 되기 전? 된 후?

유부회장은 새로이 해태상사 대표이사를 ‘선경’에서 데려왔다. ‘유철0사장’.

해태상사의 영업이 점점 확대되자, 관리중심인 유부회장보다는 영업통인 전문경영인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해태그룹 회장실=종합기획실에서는 유철0대표이사를 새로이 ‘선경’에서 데려왔다.

나는 씨니컬하게 한마디 뱉어내고 말았다. ‘우리 해태상사가 선경의 마포출장소인가?’ 내뱉지말고 마음속에 가두어둬야할 말을 나는 또 스트레이트로 쏘아대고 말았다. (지금 돌아보니, 반성해야할 일이었다.)

새로 오신 유사장과 해태상사의 고참부장들과는 묘한 전운이 감돌았다.

일종의 텃세바람이었을까? 그러나 유사장은 오불관언.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당신이 생각하는 방침.지침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고참부장들이 모두 나가떨어졌다. 원칙적으로 밀어붙이는 인사권자에게 섣부른 실력으로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유사장은 해태상사의 부장들을 ‘선경’의 부장들보다 한수 아래로 보는 듯 하였다. 사실, 다른종합상사 부장들에 비하여 준비가 덜된 부장들이 많았다.)

그러나 부장들 중 유일하게 나는 하나하나 시비를 가리면서 나는 나대로 내가 지향하는 대로 농산부를 이끌어나갔다. 어느 것하나 ‘선경’의 제도를 원용할 필요가 없었다. 특히나 농산.식품분야에서 만큼은 종합상사 그들이 우리 ‘해태상사’를 전범으로 하여 배워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우리 해태상사가 선경의 마포출장소는 아니니(그들 선경출신들은 해태상사 평가하기를, 껌팔이 해태제과수준정도로 폄하하는 듯 하였던 것이 사실), 너무 한수 아랫니듯 고수 노릇하지 않는 것이 좋지않는가 하면서 나는 내 할 일만을 꾸준히 하였다.)

그의 눈에 나의 농산부가 들어온 모양이었고, 모든 부서 가운데 유일하게 농산부의 Activities에 대하여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까지, 농산부까지 그의 저항세력으로 두어서는 아니된다 판단해서일까 아니면 정말로 잘해서일까, 아마도 후자였으리라..))

 

나는 직원들에게 그동안 아침회의때, 그리고 정기적으로 해왔던 ‘세미나’등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무역실무편람’을 만들게 하였다.

최초 상담부터, 오파, 계약, 수출입통관, 검증.검사 등 무역절차실무부터, 계약실무까지 망라하고, 거기에 더하여 Chartering, Incoterms 까지 정리하여 활자화하니, 가히 무역실무의 백과사전이 되었다.(안타깝게도, 그 사본 한권도 남아있지 않다. 누가 한권쯤 가지고 있으련만...직원들이 도중퇴사때, 몰래 복사하여 가지고 나가기도 하엿었는데...)

출간하기전 그에게 사본을 보였더니 ‘원더풀 원더풀’하면서 어찌나 좋아하고 감동하는지, 지금도 좋아하는 그를 잊을 수가 없다.

해태상사에도 이런 부서가 있었다니, 말로만 듣던 해태의 Mr.Park 이 헛소문이 아니었다는 듯이 나를 냉정히 평가해주었다.

그와 나는 그 이후 완전히 ‘동지’가 되었다.

 

새로오신 ‘유사장’님은 업무에 관한한 어찌나 철저한지, 나의 업무방침과 너무나 똑같았다. 원칙적이면서도 심사숙고하고 논리적이며 전혀 무리를 하지않고 그리고 또, 허세.허례.허식은 절대로 배격하고...그러면서도 나아갈 길은 박력있게 나아가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내가 동양글로벌로 이직하고, 얼마후 돌연 자살하면서 삶을 마감하였다...왜 그리하였는지??? .농산사업본부장2 그리고 동양글로벌 이야기는 후술)/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