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누가 이런 씨나리오를 쓰는가? ‘농산팀장으로 가라!!!’, ‘그것은 바로 운명이었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1. 8. 11:40

 

/누가 이런 씨나리오를 쓰는가? ‘농산팀장으로 가라!!!’, ‘그것은 바로 운명이었다~~~’

 

내가 개발팀장이 되고, 베트남출장을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회사가 갑자기 술렁대고 무슨 큰일이 났는지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수군수군거리고 있었다.

술렁거리는 소문의 시작은 ‘농산팀’이 통째로 회사를 나간다는 것이었다.

나;@@@@????

 

발단은, 한국무역대리점협회가 매월 신규회원을 소개하는 뉴스때문이었다.

법인체이름이 KS무역 그리고 대표는 김병0과 신병0으로 되어있어, 이것이 농산팀장인 김병0차장과 신병0대리가 아니냐는 것.

기획실 담당과장은, 회사내 수군거림을 확인하기위하여 당사자인 농산팀장을 불러 확인하였고, 그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해주었다.

(내사업에 대한 ‘꿈’이 있는 회사직원들이여, 그러나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이 있나니, 절대로 회사근무중 미리 ‘법인설립’하여 무슨 협회등 신규법인 안내뉴스에 올라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네방네 소문이 나면, 혹 퇴사할 때 어떤 불이익이 있을지 감내해야 할 것이다.)

 

박사장은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노발대발하였다.

특히나 농산팀장인 김차장은 L.A지사요원으로서 박사장의 친위대처럼 믿고 맡겨주었었는데,

신뢰를 배반하고 몰래 ‘신규법인’을 차렸으니, 박사장의 분노야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아니겠는가?(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자리는 본래부터 나의 몫이었는데, 박사장이 그를 미리 L.A에서 불러들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아니, 그전에 김차장이 갔던 미국 L.A 지사원 자리는 본래, 내가 선임이니 내가 먼저 미국으로 갔어야 맞는 일이었다...일종의 추월이었는데, 3년후 아니 5년후, 다시 농산팀장 자리를 두고, 누구도 예상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김차장은 매사가 합리적이고, 대인관계가 매우 무난하고, 그의 주장에는 무리가 전혀 없는, 정말 젠틀맨이었다. 나는 매우 직선적이고 매사 호.불호가 뚜렷하여 사람을 대하는 데도 좋고 싫음이 항상 분명했는데, 그와는 상당부분 정반대였다.)

 

앞서 해태상사의 조직개황에서 간단히 설명했던 바대로, ‘농산팀’(당초 농산부에서, 팀제 개편으로 ‘농산팀’으로 바뀌었지만, 막강 부서급에서 초라한 과단위 팀으로 위상이 추락돼 있었다...후일, 내가 다시 팀위상을 대부서급으로 확대.격상시켜 ‘농산부’ 옛이름을 되찾아왔다.)은 해태상사의 중추조직이었는데, 이 중추조직이 초라한 과단위로 쫄아들었을 뿐아니라, 그 위에 ‘중추’뼈대까지 뽑아내, 야밤‘탈출’공작이 탄로났으니, 이를 어찌 수습할 것인가? 해태상사의 농산사업을 이끌어갈 사람은 누가 가장 적격일까?

당연히, 자연스럽게, 현 ‘개발팀장’인 박차장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소란이 있던 바로 그 다음날로 나는 ‘농산팀장’으로 보직이동 인사명령이 났다.

해외신시장개척은 아예 본격적인 시작도 하지못한 채, 농산팀장으로 이동해야 했으니,

나의 운명은 또다시 요동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은 무슨 운명의 장난이었다.

대기발령받아 내일모레 곧 그만 둘 처지였는데, ‘퇴사’ 몇 일을 앞두고 돌연 ‘개발팀장’으로 발령이 나더니, 또 얼마되지않아서 농산팀장과 대리가 비밀작전하듯, 몰래 ‘신규법인’을 만들어 농산사업을 통째로 들고나가려다 회사를 발칵 뒤집어놓았고, 그 수습책으로 내가 ‘농산팀장’이 갑자기 되었으니...몇 달간 이렇듯 숨가쁘게 돌아가는 ‘씨나리오’가 과연 누가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굳이 억지로 쓰려고해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쓰여질 리가 없는 ‘씨나리오’

바로 나를 위한 씨나리오 아니겠는가?

방콕에서 본사를 들어오면서도, 박사장과의 불화, 박사장에게 밉보인 것 외에도, 농산팀장에 이미 L.A 출신의 김차장이 맡고있으니, 이제 본사에는 내 자리가 없구나 싶어서, 아예 ‘동부산업’으로 이직하거나 사표를 내고 내 사업을 해야겠구나 싶었는데, 이렇게 농산팀장 자리가 내게 오다니, 누가 어떻게, 이런 극적전환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었는지, 한번 설명해보라.

(내가 농산팀장이 되면서, 앞에서 후술하기로 했던, ‘동부산업’으로의 이직은 자연스럽게 없던 일로 정리되었으며, ‘멸치액젓’ 시험수입도 정말 ‘시험’으로 끝나고 더 이상 속편수입은 없게 되었다.)

(세상일은 모두 이미 정해져있다해도...어느 것은 내 자유의지와는 관계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만들어져가는 경우가 또 많이 있는데, 내가 대기발령을 받게 된 것은,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 것이지만, ‘개발팀장’으로 발령나고, 또 ‘농산팀장’으로 발령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전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누군가의 연출.작품임에 틀림없지 않은가? 이 모든 것까지 포함해서 ‘운명’인가? ‘만사개유정’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는, 개인의 자유의지가 포함되느냐 않느냐까지 포함되는 것이 큰의미의 ‘운명’아니겠는가?)

 

개발팀장의 후임은 따로 필요없었다. 왜냐하면, 나를 위한 ‘위인설관’자리였으므로, 내가 농산팀장으로 보직이동이 되었으니, 개발팀은 자연사상태로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든, 개발팀장 후임을 찾지않는 것만 봐도, 내가 회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회사가 평가해주는 나의 존재감은 분명 있었다.)

 

내가 해태상사 입사 이후, 그 곳에서 자라났고 국내 제일에 버금가는 '해외곡물.농산물사업부서로 키웠던 그 곳에 내가 다시 돌아왔으니, 새삼 감회가 오락가락하였다.

절대로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는데, 무슨 운명의 장난으로 뒷걸음치다가 다시 옆으로 갔다가, 다시 먼 옛날 그 자리로 원위치했으니, 감회가 오락가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누가 이런 씨나리오를 쓰고있는가? 또 앞으로 쓸, 앞으로 전개될 씨나리오는 또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고, 한편으로는 설레이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조차 한 일이었다.)

 

자...

또다른 ‘운명’의 시작인 ‘농산팀’으로 가보자. 무슨 운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그냥 운명의 끈을 잡아나가는 것이 아닌, 내 자유의지를 얼마나 넣어서 무슨 운명을 새로이 만들어갈지,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