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계 ‘Patana스쿨’에서, ‘한국에서 천재 형제가 왔다!!!’
/영국계 ‘Patana스쿨’에서, ‘한국에서 천재 형제가 왔다!!!’
내가 해태상사 방콕지사장 할 때(1986-89년), 방콕에는 외국인학교가 셋 있었다.
ISB, Patana, Ruamrudi.
미국계 ISB는 방콕내 외교관자녀들이 주로 많이 다녔고, Patana 는 영국계 학교였는데 아무래도 영국쪽 관련인사 자녀들이 많이 다녔으며(위 두학교는 수업료가 매우 비쌌다.), Ruamrudi는 태국상류층.해외상사주재원자녀들이 다녔다.(지사원 정과장과 한과장 자녀들은 이 학교를 보냈다.)
우리아들 둘은 영국계인 Patana에 다니게 되었는데, 전임지사장 한이사의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여서 그대로 따라서 하였다.
수업료등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본사에서 자녀학비의 50%를 지원해주고 있었지만, 영국계 Patana의 수업료 대기가 쉽지않았다.
Ruamrudi를 보내면 수업료가 거의 반값 수준으로 부담이 덜 될 것이었지만, 이왕지사 격조있는 영국계 교육을 받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판단하여 밀어 부쳤다.
다행히 우리 아들 둘은 Patana의 교육방침에 잘 따르고 학교생활에 무난히 적응하여 큰 문제는 없었다. 오히려 두 아이 모두 학교에서는 최우수 학생으로 평가되어 부모로서 큰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때, 작은아이가 1학년때 방콕에 왔으니, 처음에는 영어 때문에 고전하였지만, 어린 나이여서인지 곧 언어소통에 무리가 없이 잘 적응해 나갔다. 동일 환경에서 똑같은 조건으로 배우는 것이니, 뒤떨어지지않고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좋은평가를 받으니 비싼 수업료를 낸 보람이 있다 싶었다...Patana에서는 우리 아들 둘은 매우 인기가 좋았으며 특히 공부를 제일 잘하니, 선생님들 모두가 한국에서 천재들이 왔다고 크게 평가해주었다.(하나 좋지않은 것은, 아침 새벽같이 스쿨버스를 타야하는 것. 우리부부 모두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타입인데, 우리를 닮았는지 우리 아이들도 아침잠이 유독 많아 아침 일찍 일어나야 했다. 우리아이들이 겪은 유일한 어려움이었다. 처음에는 힘들어서인지 코피가 터지기도 하였었다. 스쿰빗 소이38 Sunshine court에서 회사가 더 가까이 있는 소이12? Siam court로 이사한 후로는 더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회사 가까이 또 아피트렌트값을 조금 더 줄이려고 했던 부모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우리 아들 둘이 Patana에 다니는 동안, 우리나라 학교교육과 다르다고 느겼던 것은, 아이들에게 주입식교육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무엇을 ‘결정’해서 학생들에게 외우라 하는 것이 아니고, 넓은 주제를 주고 학생들이 알아서 자율적으로 조사하고 그 결과를 학교에 제출하는 시스템이었다.
(예를 들면, Transportation에 대해서 조사해오라는 숙제를 내면, 우리 아이들은 Transportation과 관련한 무엇이든 모아서 제출하였다. 신문을 오려서 내기도하고, 우리집 볼보에 대해서 써서 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또하나 기억되는 것은, 월별/분기별/반기별로 때맞춰 학부모 면담시간이 있어서 주기적으로 선생님과 학부모 간, 학생의 발달과정.학교생활에 대해서 의견교환의 기회가 있었다. 이는 아마도 한 반이 소수의 학생(20명?)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반편성과는 사뭇 달랐다.
Patana 학교에 다닌지 1년도 되지 않았는데도 우리 아들 둘의 영어발음은 ‘아름다웠다.’
그들의 영어발음은, 나의 우물딱주물딱하는 브로큰 콩글리쉬가 아닌, 오리지널 본토발음과 전혀 다름이 없는, 정말 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물흐르듯 하였다.
그러던 그들의 영어가 귀국하고 1년도 되지않아 모두 반납해버리고, 영어는 어디론가 통째로 사라져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쉽고 안타까운 일.
(요즘 해외에 살다 돌아오는 어린 학생들은, 강남의 영어학원에 보내서 현지에서 몸에 밴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게 사후관리를 해주고 있다는 데, 나도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하지못하고 지나쳐버렸던 것이었다...그래도 우리아이들도 저 밑바탕에는 어렸을 때 방콕에서 배운 영어가 조금은 도움이 되는 듯 하지만...영어가 ‘힘’을 발휘하는 세계에서 큰무기 하나를 내팽개친 꼴이 되고말았다. 영어를 조금 우습게 알고, 뭐 그리 대단한 것이야 하며 냉소적이었던, 현실을 무시했던, 나의 또다른 패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