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바른마음`The righteous mind..나의 옮음과 그들의 옮음은 왜 다른가?+`남태평양`중 어느 황홀한 저녁
'바른마음'The righteous mind..나의 옮음과 그들의 옮음은 왜 다른가?/Jonathan Haidt
인간집단이 초월적 존재를 상정하는 것도, 어쩌면 이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기들 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도덕은 너무나도 감성적이다...인간이란 원래 사방에서 자기를 잡아당기는 듯한 힘에 갈피를 못잡는 존재이자, 내 행동을 내 힘으로 통제 못해 의아해하는, 때로는 무서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코끼리(감정.직관 및 모든 형태의 '보이는 그대로의 인지) 와 기수('이유를 찾는 인지'를 포함한 통제된 인지과정)
(기수는 코끼리의 대변인 역할을 해준다. 그러나 이때, 기수가 코끼리의 본심을 반드시 다 알 필요는 없다. 코끼리가 방금 무슨 일을 저질렀든 기수는 그것을 사후 조작하듯 설명하는 기술이 뛰어나고, 코끼리가 앞으로 하고 싶어하는 일에 대해서도 그 정당화의 근거를 잘 마련한다.)
한마디로, 이성은 직관의 하인인 것이다. 기수가 코끼리 등에 올라타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코끼리의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서이다.=감정적인 개, 이성적인 꼬리....우리가 도덕적.정치적 논쟁을 할때, 왜 분통 터지도록 답답해 하는지...도덕적 이유가, 다름이 아니라 직관이라는 개가 흔드는 꼬리이기때문이다.
따라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누구의 마음을 바꾸고 싶다면, 코끼리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자신의 직관에 어긋나는데 그것을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하면, 그들은 전력을 다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찾을 것이다. 내 논거나 결론에 어디 미심쩍은 부분이 없나 이유를 찾아내면서 말이다. 그리고 거의 백이면 백 그 노력은 성공을 거둘 것이다.
자신은 바르다고 여기는 독선을 경계해야한다.
남이 잘못을 알기는 쉬우나, 나 자신의 잘못을 알기란 어렵다. 사람들은 남의 잘못은 바람에 곡식 키질하듯 드러내고, 자신의 잘못은 노련한 도박꾼이 패를 숨기듯 감춘다.
(코끼리와 기수의 관계에서 지배권은 코끼리에게 있다...물론, 더러는 코끼리가 기수의 설득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도덕은 표를 얻으려는 정치인과 같다.
자, 여기 신들이 모여 여러분이 태어날 때 동전 던지기를 한다.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당신은 일평생을 누구보다 정직하고 공평한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파렴치한 악당이라고 믿는다.
한편으로는,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당신은 자신의 필요에만 맞으면 언제든지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당신을 성인군자라고 믿는다.
여려분이라면 동전의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플라톤의 국가론에서는 앞면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위한 길임을 갖가지 논변을 들어 구구절절 주장한다. 즉, 선하게 보이는 것보다는, 실제로 선한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국가론'의 초반부를 보면, 플라톤의 형 글라우콘이 소크라테스르 밀어붙이는 대목이 나온다...(단순히 평판만 정의로운 게 아니라) 정말로 정의로운 사람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를 증명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글라우콘은 기게스의 '요술반지'를 갖게 된 사람 이야기를 꺼낸다. 그 금반지만 끼면 마음대로 몸을 감출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는 것이다.
(글라우콘의 이 사고실험에 함축된 뜻은, 사람들이 선하게 살아가는 것은 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남들에게 들통 날까봐, 특히 평판에 손상을 입게 될까봐, 두려워서이다)
이어서, 글라우콘은 소크라테스에게, 어떻게 정의롭지만 평판은 나쁜 사람이, 정의롭지못하지만 널리 훌륭하다고 알려진 사람보다, 더 행복할 수 있는지, 증명해달라고 한다.
꽤나 골치아픈 도전을 맞은 소크라테스는 비유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한다.
즉, 사람 안에서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도시(폴리스, 도시국가) 안에서 정의가 이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도시에서는 조화와 협동이 이루어지고, 모든 계급사이에 노동의 분화가 이루어진다. 농부는 농사르 짓고, 목스는 집을 지으며..통치자는 통치를 해야 정의로운 도시이다...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저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이바지하기때문에, 도시민 어느 하나가 불행을 맞으면 도시민 전체가 그것을 안타까워한다.
반면에 정의롭지못한 사회에서는, 어느 한쪽이 무엇을 얻으면 다른 한쪽은 잃고, 당파끼리는 서로 무너뜨릴 책략을 짜며,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 도시는 사분오열된 채 싸운다.
소크라테스는 대혼란과 다름없는 무자비한 이기주의 나락에 폴리스가 빠져들지 않으려면, 반드시 철학자가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히 자기에게 좋은 일보다, 진정으로 좋은일을 추구할 수있는 사람은 오로지 철학자뿐이기때문이다.
(행복한 도시는 철학자가 통치해야하듯이, 행복한 사람도 반드시 이성이 통치해야만 한다는 것)
====글라우콘식;이성은 진실보다는 정당화의 근거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이다. 사람이란 실제보다는 외관과 평판에 훨씬 더 신경을 쓰는 법이다...윤리적 사회를 건설하는데 가장 중요한 원칙이, 다름 아닌 '모든사람이 항상 자신의 평판을 목숨걸고 관리하도록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는 것.
사람들은 정말 올바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올바른 사람처럼 보이기위해 더 애쓰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경향도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남들에게 전하기 앞서 우리 자신부터 그것을 믿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 사고가 이루어지는 모습은, 진리를 발견하려는 과학자보다는, 유권자의 표를 잡으려는 정치인게 훨씬 더 가깝다.
How am I doing? 저 잘하고 있습니까?
(How are you doing? 잘 지내세요?)
'남 태평양' 中 '어느 황홀한 저녁 - 페리 코모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