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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대는 운명을 믿는가?(2)/수단출장기(2009.9.3-9.11)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5. 00:12

수단출장일정이 자꾸 늦춰집니다.

현지사정이 만만치 않는 눈치입니다.

어디 쉽게 되는 일이 있던가요?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오후,

밖은 또 눈이 이쁘게 내립니다.

나는 눈이 오면 아직도 마음이 설레입니다.

눈이 와서인지 오늘은 매우 '나이스'입니다ㅎㅎ.

 

다음글은, 오래전(2009.10.5) 나의 개인블로그에 거칠게 저장되어있던, 수단출장기(2009.9.3-9.11)를 일부 맛사지해서, 옮겨온 것인데요, 내용이 좀 장황한 개인사업이야기 중심이어서....조금 염려됩니다....개인적 긴 글이 부담되면, 그냥 건너뛰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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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출장 2009.9.3-9.11.

서울(9.3)-두바이-카르튬-포트수단-카르튬-두바이-서울(9.11);

(1.서울공항에서...신종플루=돼지독감/2.두바이공항에서(1)/3.두바이공항에서(2)/4.두바이 Merdien 호텔에서/2009.9.4.08;00;생략)

 

5.'그대는 운명을 믿는가?/카르튬공항에서...2009.9.9.

 

---‘숙녀신사 여러분, 저는 기장입니다. 저희 비행기는 기계적 결함으로 오늘밤 이륙하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천천히 비행기에서 내리시고 자세한 것은 저희 지상직원들의 안내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오마이갓@@@@

이런일이라니@@@@

정말 청천벽력, 맑은 하늘에 벼락이 치다니...

말로만 듣던 황당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2009.9.9.오후9시.

9.9.9.9.

누구는 6자가 셋이면 사탄의 숫자라하여 무슨 나쁜 일이 일어난다하더니,

그 6이 뒤집어져서 9가 되었는데,

그날은 9자가 셋이 아니라 그것도 넷씩이나 모여만났는데..., 정말 무슨일이 일어나고 만 것인가?

아니면, 더 큰일이 일어났을 것인데, 6자가 아니고 6자가 뒤집어져버린 9자인 덕분으로, 이정도에서 끝난것일까?

인살라!

알라신의 뜻인가?

또 참고 기다려야 하는가?

지난 9일

수단 카르튬 공항

출국수속을 모두 마치고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

저녁기내식까지 마치고 커피한잔을 하면서

비행기가 이륙하기만을 기다리던 중

뜻밖의 안내방송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안내하고 있었다.

‘Adventure!'

새로운 것이 없는 우리삶은 얼마나 단조로운가?

'자, 새로움 속으로!'

'운명이 이끄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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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에서 늦은 밤비행기를 타고, 두바이에서 10시간여를 기다려서 수단카르튬(9.4 오후 6시경)에 들어왔다.

이번 수단방문이 몇 번째일까?

4번째? 5번째?

맨처음 수단에 온 것이 1994년!?

김일성 사망뉴스를 카르튬의 힐튼호텔에서 CNN 방송으로 들었으니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무엇이 나를 수단으로 불러들였을까?

어떤 운명의 끈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젊은 날, 어떤 선택이었을까?

수단에서 참깨가 정말 나는지 수단참깨가 어떻게 생겼는지, 내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때 회사에서는 모두들 나의 수단출장행을 엉뚱생뚱할 뿐,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고들 하였었다.

그때는 수단까지 가는 직행 비행기가 없어 유럽의 프랑크푸르트, 암스테르담, 파리 또는 런던을 경유해야 하였는데 보통 하룻밤 또는 이틀밤을 자야 수단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치않고 힘든 여행길을, 더군다나 눈코뜰사이없이 바빴던 그때, 나는 왜 수단출장을 간다고 하였을까?

힘들고 먼길가지말고 그동안 휴가도 가지못하고 쉬지도 못했으니 차라리 유럽 어디 좋은곳에서 며칠 쉬었다 오라는 '회장님'말씀까지 간단히 무질러버리고, 나는 왜 그곳에 고집스레 갔을까?

그들은 이런 나를 두고, 단순한 호기심을 넘은, 의미없는 돌출행동, 아니면 맹물풋도전이라 하였을까?

'어디 두고 보자! 얼마나 잘 하나 보자!의 시새움을 뒤로 하고, 나는 역사적? 운명적? 수단출장길에 올랐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의지가 개입된 나의 선택이었을까? 아ㅣㄴ며 모두 둘다일까?

( 이 무모한 출장여행이, 먼먼훗날 나에게 어떤 선물을 줄 것인지는 그때는 아무도 몰랐었다. 왜 그곳에 가게 되었는지는...'그'와의 운명적인 만남과 일들에 대한 소개가 있어야 할 것이다...다음편?에)

 

곧잘 엉뚱한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하고싶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어느누구처럼 소위 '옳은 소리를 그렇게 싸가지없이 하는' 나는, 부하직원들에게는 환영받고 박수를 받았지만, 같은직급의 동료들 또는 그 윗분들,그들은 언제나 날 부담스러워했고 또 가끔 어려워하였다.

(나는 직장생활을 참 어렵게 위험하게 하고 있었다. 모두들 그러는 것처럼 '좋은게 좋다'하며, 편하고 순탄하게 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었는데, 난 그런걸 못참아했고, 지금 생각하면 윗사람들에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못본체 그냥 넘어가주고, 굳이 꼭 그렇게 몰아부칠 필요는 없었지 않는가 하고...)

 

그 시절

나는 H상사 방콕지사장 근무(1986-1889)시절의 아픔(오너사장과 기득권 임원들의 파워게임 속에서, '순수한 고집불통', 아니 뭘 전혀 모르는, 방콕지사장의 위치가 왜곡되는 것과의 싸움에서 몸무게가 10키로가 빠지는 정신적 혼란을 겪고 있었다...이것도 언제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또 다음에 ㅎㅎ)을 이겨내고 승승장구, 국내 해외농산물시장의 큰손이 되어 한참 잘나가고 있었다.

오너사장과의 불화로 만년차장에서 벗어나지못하다가, 부장을 거쳐 단숨에 수석부장(임원승진대기특별직급)까지, 훨훨 날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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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방문(1994)을 하고 나서 다시 수단을 찾은 것은,

내회사를 차리고 첫계약한 물품에 대한 현지검품을 하기위한 정부검품요원들과 함께였다.

1996년이 다가는 겨울쯤...

 

잘 나가던 큰회사 임원자리를 집어던져버리고 내 회사를 차린 것이 1996년 여름이었으니, 누군가가 나를 보이지않게 도와주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가락시장옆 작은사무실(실평수10평?)에서 매일 하릴없이 신문이나 뒤적이던 나에게 첫계약이 이루어진 것은,

그 해(1996)가 거의 끝날즈음, 갑자기, 전혀 뜻밖에 찾아왔다.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그것은 잘 짜여진 각본처럼이루어져, 어느 사이에 나의 손에 들어와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나에게만 특별히 주는 분명 신의 선물이었다.

그것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그것도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1995년초, 그룹사와의 형평을 이유로, 임원승진대신 임원들에게 보임하는 농산사업본부장을 맡으라는 H상사를 떠나기로 하였다.임원승진이 문제가 아니라, 오너중심의 획일적일방적 의사결정구조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었다. 그해 5월, 나는 새로이 종함상사조직을 만든 D그룹의 농산사업본부장을 맡고있었다...소위'스카우트'였는데, 막상 들어가보니 재벌회사는 모두 마찬가지, 내마음대로 하게 놔두는 구조가 아니었다. 곧 조직의 부속품이 될 것이 뻔히 보여서,1년만 하고 아무 계획도 없이 뛰쳐나왔다. 무모하기 그 짝이 없는 '동희'호테식 결정이었다......이이야기도 언젠가 기록으로 나올 것이다)

 

첫계약이후, 그만그만하던 나의 사업은 이듬해 1997년 졸지에 불어닥친 IMF 금융위기에 오히려 더 잘되어 나갔다.

인생=새옹지마?

어느 가지에 언제 열매맺을지 누가 아는가?

쥐구멍에도 볕들날 있다 하지 않았던가?

내 회사가 잘 되니 옛날 부하직원들이 하나하나 내회사로 들어왔다.

(IMF가 터지고나서 내가 근무했던 모회사 H상사는 회사정리절차에 들어가있었고 직원들은 살길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에서 나의 회사는 그들에게 좋은 안식처였고 나또한 큰수고큰비용들이지않고 옛조직을 거의 복원할 수 있어서 누이좋고매부좋은, 찰떡조합이었다. 당연히, 혼자 북치고 장구치면서 하던 일들이 이제 부하직원들에게 넘어갔으니 힘든 수단출장일도 당연히 그들의 차지였다)

비로소 나는 힘든 장거리 수단출장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젊은 직원들은 수단출장가라고 하면 더없이 좋아하였다. 전권을 주어 보내니 어려운 일들을 신나게 해대었다.

차린지 얼마되지않은 내회사가 점차 조직적인 자리를 갖춰가기 시작하였다.

나도 수단출장일에서 벗어나, 나의 또다른 특별사업, 다른 상사들이 하지못하는, 베트남 타피오카(열대고구마, 소주만드는 주정원료)수입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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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운다 하였는가?

언제부터인가(2004년부터?) 잘 나가던 수단참깨사업도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인도산참깨의 경쟁력이 좋아지면서 수단참깨는 힘을 잃어갔다.

그동안 욱일승천의 기세로, 일개 소규모무역회사가 국내굴지의 종합상사들을 이겨내 제치고, 국내참깨시장을 과점하다시피 해왔지만 최근 5년여는 계약이 한 것도 없게 되었다.

입찰에 붙었다하면 인도산참깨를 당해 내지 못하고 계속 실패만 거듭하고 있었다.

흐르는 세월을 이겨낼 수 없구나.

시장흐름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끝내고 헤어져야 할 시간인가?

그동안 15년여

아무리 뜨겁게 사랑했다고 해도

주변 환경이 바뀌어 가고

내 나이도 들만큼 들었으니

사랑했던 옛연인을 보내주어야 하리라!

이제 더 이상 욕심부리지말고 조용히 우리의 뜨거웠던 사랑을 정리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

다만, 어느 날, 어느 특정시점에 무쪽자르듯 끝을 내자는 것은 아니고, 되는대로 되어가는 대로 자연안락사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나는 내나이비슷한 모두들처럼 본격적인 '노후살이'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사업의 끝을 어떻게 할지 이미 마음정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또 계약이 된것!

또.또.또다시 수단을 찾게 되었다는 것!!!

또 이렇게 다시 낙찰이 되고 또 출장을 가게 되니 옛생각들이 하나하나 마치 어제일들처럼 떠올랐다.

그것은 정말 운명일까?

운명?

15년전 '그'와의 운명적 만남과 곧이은 '첫출장', 그 연이 이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의지.선택과도 연결되어있다는 것 아닐까?

아니, 나도 모르는, 더 오래전의 어떤 인연이 또 이어져 나가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의 선택도 나의 운명 속 어느 한 가닥이란 말인가?

운명적 선택?

선택적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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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깐...

이번 수단출장은 거의 10여년만에 가는 셈이었다.

오랜만에 낙찰이 되었지만 너무 먼 곳이어서 힘든 길이어서, (초창기처럼 유럽을 경유하지않고, 두바이경유하는 루트가 개발되어 소요시간이 10시간여 줄었들었다지만...), 가능하면 가지 않고 해결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가지 않고도 일처리가 되나 싶더니 결국은 내가 출장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일이란 정면돌파해야지 우회하려고 하면 그르치게 되더니 이번 경우가 또 그러하였다.

막상 출장가는 것으로 결정을 하고나니, 가지않으려고 이리저리뺐던 마음이 이제는 달라졌다.

그동안 수단은 어찌 얼마나 변했을까? 궁금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헤어진 옛연인을 오랫만에 다시 만나는 것처럼 설레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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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가 잡아준 호텔로 다시 돌아온 나는, 첫수단출장/나의 창업/첫계약등 이런저런 지난일들을 뒤돌아보고 있었다.

전혀 계획에 없던 '특별하룻밤'이 아니었다면, 지난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시간이 없었을 것 아닐까?

 

평소 나같으면 길길이 뛰며 난리부르스를 치고도 남았을 것인데 그날따라 나는 더 냉정해지고 있었다.

역입국수속(재입국수속)..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하였다가 다시 입국하는 것이니...한밤중에, 찜통더위속에, 입국절차를 밟아나가야했다.

그 와중에 탑승객들 사이에서는, 지상직원들과의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으니, 고성이 오가고, 우왕좌왕, 전쟁이 나면 이럴까?

피난길 아수라장이 이렇다할까?

찜통같은 더위에 온몸이 땀에 절고, 말은 통하지 않고,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재입국절차는 끝났다.

늦은밤, 거의 새벽녘에 항공사가 잡아놓은 호텔로 갈 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소란소동속에서도 나는 가까스로 마음의 평정을 잃지않았다. 오히려 침착해졌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분명한 것은 나는 아무일도 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이번에는 어쩐일인지 무력감 대신에 어떤 차분함이 들어왔다는 것.

나의 현실적 존재감을 깨달은 것일까?

현실적 한계를 수동적으로가 아니고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것일까?

어느 인간의 무력하기만한 현실적 한계를 적극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또다른 세계 속으로 의미있게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들어간다는 것일까?

 

무슬림들은 이를 ‘인살라’라 하는 것인가?

‘인살라!’

알라신의 뜻으로!?

며칠전 수단입국후;

카르튬(수단의 수도)에서 포트수단(홍해에 접해있는 수단 유일의 항구도시)으로 이동해야하는 첫날,

수단항공은 나에게 ‘인살라!’하며 하루를 더 기다리게 하였다.

포트수단에서 출장일을 마치고 카르튬으로 돌아오는 날,

또다시 수단항공은 나에게 또 하루를 기다리게 하며 ‘인살라!’를 다시 한번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인살라!’

당초 일정을 이틀 연장하여 귀국길에 오른 나에게 알라신의 뜻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다는 듯이 하룻밤 추가로 특별교육시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참고 기다리라!’

‘인살라!’

 

기계적 결함을 무시하고 비행기가 이륙을 감행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누가 알 것인가?

이륙하면서 사고가 났을지 비행도중에 사고가 일어났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든가?

모든 출국수속을 마치고 탑승하여 저녁 기내식까지 하였는데

비행기의 기계적 결함으로 이륙하지 못한 것도 ‘인살라?’

그것은 운명이려니? 운명이라고?

나의 선택하고는 상관없는 알라신의 뜻, 알라신의 선택이었을까?

덕분에 나는 출장중 책읽기 신기록을 수립하게 되었다.

혹시나 해서 가져간 5권의 책 중 마지막 책을 마저 읽어낼 수 있었다.

그중, 구약성서 이야기;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대 것이라’

덕분에 또,

지난일들을 돌이켜보면서, 하나하나 정리해보면서, 그것은 과연 나의 운명일까 아니면 나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나의 선택까지 포함된, 그 모두가 나의 운명일까?하면서

그 지난일들을 정리해서 글로써 남길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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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5.화.‘그대는 운명을 믿는가?’

지난 9.3-9.11 다녀온 수단출장후기를 쓰려는데 어찌된 노릇인지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다.

위에 써놓은 것처럼 이것 저것 건들기만하고, 너무 복잡하고 중층으로 겹쳐있어서 좀처럼 실마리를 어디서부터 찾아야할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안풀리면 돌아서 가보면 어떨까?

출장출발할때부터 상황상황마다 메모해두었던 내용들을 단순하게 정리해 보면 한편으로는 기록으로 남아서 좋고 기록하다보면 좋은 실마리가 나오면 그때 실마리를 찾으면 될 것 아닌가?

시간을 역추적하여 에피소드 중심으로, 그중 큰것을 중심으로, 정리하다보면 길이 나오지 않을까?

‘그대는 운명을 믿는가?’ 나의 삶은 나의 운명일까? 아니면 나의 선택일까?를 정리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또, 얼마전 그친구의 말 ;만사개유정, 부생공자망!, 방랑시인 김삿갓의 말이라는데요... 인생만사 이미 정해져있는 것인데 한낱덧없는 삶살아가는 나혼자 홀로 천방지축 바삐 괜히 떠들어대는가요?ㅎㅎ)

인생에서 두 가지는 공평합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 어느 철학자가 '인생은 원인의 철학도, 결과의 철학도 아니다, 경과의 철학'이라고 말했지요. 그 경과 속에는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들어있어요. 저는 최선을 다함으로써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엮어갈 수 있다는 신념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 인생이 황홀하다고 느껴요."/조정래의 자서전 ‘황홀한 글감옥’ 에서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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