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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숫자 `0`의 의미는?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4. 23:30

1972년 영화배우 허장강·신성일·윤정희가 출연한 이만희 감독의 영화 <0시>는 원칙주의자 형사의 좌충우돌 사건을 그린 수사물이다. 하루의 마지막 시간인 밤 12시를 ‘0시’로 표현해 ‘없음’ ‘비움’을 은유했다. 그러나 0이 태어난 인도를 비롯해 유럽에서는 ‘0층(ground level)’을 지상 1층의 의미로 사용한다. 0층을 ‘있음’의 시작점으로 정의한다.

어떤 물건을 셀 때 ‘0’은 ‘없음’을 뜻하지만 인도에서는 ‘영원히 있음’을 상징한다. 숫자의 개념보다 철학적 의미로 존재한다. 인도인들은 갠지스강에 몸을 씻고 영혼을 맑게 하는 구도의 행위를 통해 찰나의 삶보다 영생을 갈망한다. 그들은 존재에 대한 회의와 공허함을 영원의 징표인 ‘0’으로 달랜다. 아라비아 숫자에 0을 수없이 붙여 크게 만드는 것도 도달할 수 없는 ‘영원’을 희망하기 때문이다. 7세기께 인도 수학자 브라마 굽타는 임의의 수를 0으로 나눈 몫을 ‘무한대’로 정의했다. 생이 무한대로 반복되면 죽음이 찾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간절함에서 ‘0’이 태어났다.

중세 유럽에서 아라비아 숫자를 수용할 당시에도 0의 개념은 없었다. 로마교황청은 “로마 숫자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니 앞으로 누구도 숫자를 보탤 수 없다”며 ‘요물’인 0의 사용을 금지했다. 몰래 0을 사용한 수학자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도 했다.

인류 최초의 0은 기원전 바빌로니아에서 사용했다는 주장도 있다. 소멸된 0은 6세기께 인도 차투르부즈 사원 벽의 비문에 새겨진 헌물 목록 중 ‘270’이라는 숫자에서 확인된다. 1에서 9까지의 숫자에 0을 붙여 10이 될 때마다 한 자리씩 올려가는 십진법은 수학과 과학의 기초인 0의 중요성을 입증한다.

최근 미국에서 0의 의미가 새삼 부각되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허리케인 ‘샌디’로 기름대란이 발생한 미국 동부에서 주유소 홀짝제 시행과 함께 ‘0’으로 끝나는 차번호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논란의 대상이라고 한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이 지난주 홀짝제를 발표하면서 0을 짝수로 분류하자 수학자들조차 0이 짝수인지 홀수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난감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확실하다. 시험에서 0점을 받으면 홀·짝수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삶 자체가 문제 될 수 있다. 숫자 ‘0’은 흥망의 키워드인 셈이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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