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욕망해도 괜찮아`2(끝)...사자가죽/김두식
/사자가죽;
어머니(김두식의)는 돈과 권력을 아주 하찮게 생각하셧던 분.
누가 강남에 땅을 사서 떼돈을 벌었다고 하면; 그 집에는 참 좋은 일이네. 그러ㅏ 우리는 그런 걸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야. 하며 눈하나 깜짝 하지 않으셧다. 그런 말을 실제 입에 올리시지는 않았지만...원래 진짜 규범은 말이 아니라 태도를 통해 은근히 전수된다.
어머니의 그런 세계관은 60-70년대 우리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유통되던 가치이기도 했다.
그 당시 김형석/안병욱 교수등은 기독교와 유교의 전통적 가치를 잘 포장해서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 설파했다.
‘나는 사랑한다 고로 있다’
‘안빈낙도’
물질적인 것은 뒤로하고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라는 큰 흐름만은 분명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도 현명한 사람들은 적절한 ‘투자’를 하면 현실적인 이익을 추구할 줄 알랐다. 읽고 말하는 것과 행위를 적절히 분리했던 것. 그러나 우리 어머니는 그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한 순진한 분이셨다.
사자가죽;섬머싯몸의 장편(긴것이 아니고 손바닥크기길이의)소설---(사자가죽은...이솝우화의 유명한 당나귀 이야기에서 빌려온 것)
''동물의 왕 사자를 부러워하던 당나귀는 우연히 사냥꾼의 집에 걸린 사자가죽을 발견하고 사냥꾼이 집으 비운 틈에 그걸 훔친다.
사자가죽을 뒤집어쓴 당나귀가 사자 행세를 하자 다른 동물들은 겁에 질려 다들 도망간다.
거기에 신이 난 당나귀는 콧노래를 부른다. 사자가 내는 당나귀 소리를 이상하게 생각한 다른 동물들은 자세히 살펴보다가 곧 사자가 아닌 당나귀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결국 당나귀는 몰매늘 맞고 동네에서 쫓겨난다.''
장편소설 '사자가죽'의 줄거리는....;
주인공; 로버트 포리스티어=그 당나귀와 비슷한 사람.
1차대전에 참전한 포리스티어 대위는 야전병원에서 근무하던 엘레노어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전선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생사를 넘나들었다는 그가 야전병원에 입원한 이유는 사실 피부종기.
전쟁이 끝나자 포리스티어은 엘레노어와 결혼해 부자 아내의 재산에 얹혀 빈둥거리는 삶을 산다.
그러면서도 늘 ‘신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따로 있다. 사람은 자기 계급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의 자부심은 자신이 신사. 즉 잰틀맨이라는 사실에 기인한 것.
그렇게 허세를 부렸건만, 이미 이웃사람들은 모두 포리스티어가 가짜라는 사실을 안다.
바로 이웃집 아저씨가 오래전 인도에서 세차장 직원으로 일하던 포리스티어를 만난 적이 있었던 것.
하층계급이던 포리스티어는 전쟁의 혼란기를 이용해 일종의 계급세탁을 한 것.
이웃의 비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포리스티어는 계속 신사 행세를 한다. 다행히도 엘리노어는 남편의 전력을 알지못한 채 신사 남편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결혼생활이 16년차 되었을 때 포리스티어 부부집에 불이 난다. 외출중 돌아왓을 때는 이미 더 이상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불이 번진 상태. 두 사람은 망연자실, 화염 속에 무너지는 집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갑자기 엘레노어가 비명을 지른다. ‘우리 개가 아직 집 안에 있어요!’
그 소리를 들은 포리스티어는 주저없이 개를 구하기 위해 집안으로 뒤어들어가려 한다.
동네사람들은 너무 위험하다며 그를 붙잡는다. 지금 개를 구하러 들어가는 것은 누가 봐도 미친짓. 그러나 포리스티어는 만류를 뿌리치고 집안으로 뛰어든다. ‘무릇 신사가 뭔지를 당신들에게 보여주겠어!’
한 시간후 잿더미 안에서 포리스티어의시체가 발견된다. 그의 팔에는 개의 시신이 안겨 있다. 포리스티어는 너무 오랜 세월 신사행세를 하다보니 어느새 자신이 가짜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 사자가죽을 뒤집어쓴 채 콧노래를 부른 당나귀처럼.
그래서 진짜 신사들도 하지 않을 ‘신사다운’ 행동을 하다가 목숨까지 잃는다. 진짜 신사들은 신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지키지못한 규범은 적당히 무시한다. 그런데 가짜 신사인 포리스티어는 머릿속으로 가상의 교범을 만들어 누구보다 열심히 지켰다. 그런 가상의 교범에 적혀 있는 내용 중의 하나가 신사는 자기 개를 친구로 생각하고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는 신화였을 것. 그느 그렇게 만들어진 거짓 이미지를 믿고 자기목숨까지 바쳤던 것.
/진짜 사자의 삶;
신사=잰틀맨의 어원은 잰트리 gentry.
잰틀맨은 꼭 영국의 귀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은 상류층 남자를 일반적으로 지칭.
그러나 신사가 좋은 교육을 받고 상류층이 될 수 있는 기반은 대부분 상속받은 땅.
상속받은 땅을 가진 자만이 소작인의 노동에 기반한 소출 위에서 공부도 하고 사회활동도 할 수 있는 것.
써머싯몸이 살았던 시대는 분명히 그랬다. 제인에어/폭풍의 언덕/오만과편견/채털리부인의 연인 등 어떤 작품을 봐도 19세기에서 20세기초반의 영국신사들은 노동을 하지않는다.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1215년 영국귀족들이 국왕 John에게 강요하여 왕권의 제한과 제후의 권리를 확인한 문서. 영국헌법의 근거가 된 최초의 문서)이후 헌법과 기본권이 크게 발전했지만, 프랑스처럼 혁명다운 혁명을 거치지 않은 까닭에 영국은 사회구조의 근본이 뿌리째 흔들려본 적이 없다.
영국소설에서는 거지처럼 살던 주인공이 오랜세월 소식이 끊겨 존재도 알지 못했던 부유한 삼촌에게 예상치 못한 유산을 물려받아 갑자기 신분이 상승하는(신분을 되찾는) 이야기는 있어도...자수성가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 정도가 예외.
바로 이게 계급이다.
포리스티어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지간해서는 당대에 신사가 될 방법이 없다.
신사는 근본적으로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 상속받는 재산이 없는 포리스티어는 올라가봐야 아내 재산이나 등쳐먹는 놈팡이 정도가 상한선. 그런데도 그는 평생 신사 흉내를 냈고,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신사의 교범을 따라 죽어갔다.
영국에서 신사가 신사일 수 있는 이유는 그게 물려받은 재산이 있기 때문이다. 재산은 처음부터 주인공 신사의 것이고, 그가 일하지 않는 것도 너무나 자연스럽다.
실상 그가 신사일 수 있는 핵심요건은 지식.매너.자신감.이웃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돈이다. 그것도 그냥 돈이 아니라 물려받은 돈. 물려받은 돈이 없다면 그는 무슨 노력을 해도신사가 될 수 없는 것. 물려받은 돈만이 품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런 품위를 기초로 신사들은 규범을 만들어낸다. 규범이 자신들에게 불리해지면 알아서 고친다. 규범을 만들고 페기하는 것이 자신들의 권한이기 때문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규범 자체가 지배수단이기도 하다. 돈이 만들어준 여유공간 덕분에 자신들이 만든 규범 안에서 숨쉬는 것도 일반인만큼 어렵지 않다.
어차피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씨스탬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까닭에 굳이 규범을 깨가며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칠 이유도 없다.
영국신사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Nobles oblige란, 세계대전 같은 엄청난 사건을 당대에 겪지않는 한, 기본적으로는 식민지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씨스탬 안에서의 의무.
규모를 유지하려면 유산이 가급적 한명의 아들에게 모아져야 하므로 아들들 중 일부가 전쟁터에서 죽어주는 것도 계급을 지키기 위한 필수조건.
아들 하나가 죽으면 노동력의 손실로 당장 먹고살 게 줄어드는 중산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영화‘하녀’
재벌가의 집사 조병식(윤여정분)여사의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하지만, 재벌 고훈(이정재분)일가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자를 적당히 돈을 줘가며 관리하면 그만인 하인이므로..
여려서부터 자기중심적으로 키워진 고훈에게는 규범이라는 게 별로 중요한 가치도 아니다. 이런게 진짜 사자의 삶!
어머니로 상징되는 중산층은 규범을 만들고 바꿀 의지도 힘도 없으면서 규범의 화신처럼 살아온 사람들.
신사보다, 귀족보다,재벌보다 훨씬 강하게 규범을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포리스티어 대위와똑같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상류층보다는 오히려 중산층이다.
돈이란 성실히 살면 자연히따라오는 것이지 굳이 추구할 목표가 아니라는 고상한 가르침을 진짜로 믿고 실천하지만 이상하게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분노가 쌓이지만 표출할 방법도 배우지 못했다. 기껏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이 사자가죽을 뒤집어쓴 다른 당나귀를 사냥하는 것. 그게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 매일처럼 벌어지는 싸움이다.
어머니로 상징되는, 자존심있는 중산층문화가 잘못된 사회시쓰템개혁할 생각은 하지못한채, 너무 개인적인 규범만을 강조해온 것잉 아닌가?
우습게도 이 사회에서는 상류층 사자들이 중산층 당나귀에게 ‘사자가죽’을 뒤집어쓸 것을 권유한다.
당나귀들이 사자에게 요구되는 규범성을 갖추면, 진짜 사자 입장에서는 다스리기가 훨씬 쉽다. 사자에게나 요구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자도 지키지 않는 노블레스오블리주를 당나귀들이 실천하기 시작하면, 사자의 삶은 훨씬 편해진다.
사자들은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인 상류사회에서 놀고먹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면 된다. ‘사자가죽’을 뒤집어쓴 당나귀들은 늘 자기가 더 열심히 살앗어야 한다고 자책한다. 진짜 사자들에;게 뭘 요구할 생각을 못한다. 사자보다 열심히 ‘계’를 지키다 못해, 나중에는 더 못사는 빈곤층의 토끼나 양한테까지 그 ‘계’를 강요하는 역할을 자발적으로 수행한다.
가끔 가다가 사자에게 불만을 느끼는 당나귀가 나온다. 그런데 그 당나귀도 ‘사자가죽’이라는 규범의 틀만은 벗어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 당나귀가 가장 싫어하는 대상은 사자가 아니라 ‘사자가죽’을 뒤집어쓴 다른 당나귀이다. ‘저 당나귀는 토끼와 양을 위하는 척하지만, 실상은 사자를 위해 일하는 가짜’라고 서로 손가락질한다. 특별한 당나귀를 추종하면서 서로 패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게 사자가 만든 규범인 것도 모른 채, 그 규범을 손에 들고 끊임없이 다른 당나귀를 사냥한다. 사자들은 날로 살찌고, 당나귀들은 날로 말라간다. 땅이 너무 황폐해지면 적절한 당나귀를 찾아 희생양으로 삼는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우리가 당나귀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결국 욕망을 인정하자는 것. 사자 가죽을 뒤집어쓰고 규범의 화신 노릇하던 것을 빨리 그만두고, 다른 당나귀들과 손을 잡아야 한다.
--킹목사이야기;
킹목사는 그를 공산당으로 몰려했던 FBI에 의해 상시적으로 도청당하면서도 혼외정사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햇다. 시민운동 중에 그 많은 일정을 소화하면서 섹스파트너와도 매일 만났다. 도청을 통해 뻔히 그 사실을 알고있엇던 존슨대통령같은 보수지도자들은 킹목사를 위선적인 설교자라고 맹비난했다. 시민운동이 최고조에 이르렀을때 FBI는 킹목사에게 당장 운동을 중단하지않으면 여자문제를 폭로하겠다는 익명의 협박메일을 보냈다.
킹목사의 위대함은 그런 개인적인 약점과 한계를 안도도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위인전은 당연히 그런 이야기를 소개하지않고, 코레타 스콧 킹여사와의 사랑과 우정만 이야기한다.
인간은 빠지고 날조된 신화만 넘치는 위인전들 덕분에 우리는 인생선배의 삶을 통해 욕망과 조심스럽게 동행하는 길을 모색할 기회를 잃었다.
어쨌든 한 인간이 지닌 이런 복잡성에 대한 치열한 탐구가 빠진 전기류들은 세상에 존재하기 힘든 가상의 위인들을 목표로 삼아 앞으로 달려나가는 고된 삶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런 위인이 될 가능성은 0.0001%도 안 되는데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뛰는 꼴이다. 위인전이 천재들을 주인공으로 그드릐 기행을 다룬 경우가 많다보니, 우리 세대의 공부 좀 하는 애들은 너나 할 것없이 어린시절부터 슬쩍슬쩍 천재 흉내를 내야 했다.
몸은 완전히 ‘계’의 세계에 있으면서, 다른 한편 천재처럼 보이는 기행까지 만들어내야 했으니 인생이 얼마나 피곤했겠는가?
인간의 내면이란 이처럼 아무리파고 들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복잡한 것이다....이하생략/'욕망해도괜찮아'소개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