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남자의 물건/김정운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1. 22:04

남자의 물건/김정운이 제안하는 존재확인의 문화심리학;

 

프롤로그;왜 ‘남자의 물건’인가?

 

한국사회의 문제는 불안한 한국남자들의 문제다. 존재확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존재 확인의 방식이 있다.  내 존재는 내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 확인된다.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존재한다’

이를 일컬어 ‘내러티브 전환 Narative turn'이라고 한다.

‘인간은 생각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남자들의 존재불안은 할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모여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정치인 욕하기가 전부다.

 

여자들은 모이면 할 이야기가 끝이 없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할 이야기다 많다는 것은 삶의 의욕이 충만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남자들의 일상을 한번 들여다보라. 도대체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가? 그래서 부부동반 모임에서 절대 남편들을 따로 앉히면 안 되는 거다. 정말 할 이야기가 없다.

 

 

-늙어 보이면 지는 거다!

‘아가씨, 얼굴에 뭐 묻었어요!’

‘뭐가요?’

‘아름다움이...’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안 좋으면 늙어보이고 그만큼 일찍 죽는다.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사람일수록 은퇴한 뒤 더 빨리 늙는다. 존재불안의 우울함 때문이다.

어떻게든 재미있고 즐거운 생각만 하려고 애써야한다.

 

-이 쩨쩨한 인생은 도대체 누가 결정했나?

내 인생에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듯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어찌어찌하다 밀려 이렇게 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삶이 재미없는 이유는 ‘선택의 자유 freedom of choice'를 박탈당햇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모이면 군대 이야기다. 이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기 때문이다. 자꾸 반복적으로 한 이야기를 하고 또 하는 이유는 뭔가 심리적으로 막혀 있기 때문이다.(여자들이 모여서 시집살이 이야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군인은 24시간을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입는 옷, 사용하는 물건이 모두 정해져 있다.

선택의 자유는 인간존재의 근거다. 내 삶의 의미는 내가 선택했는가, 아닌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등산가들은 죽어라고 그 높은 산 정상에 오른다. 자신이 선택한 일이기 때문이다.

‘선택의 자유’=‘내적 동기’

재미나 즐거움과 같은 내면의 욕구를 의미한다. 자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선택해서 하라고 곳곳에서 부추긴다.

재미있어서 선택하는 게 아니라 선택하면 재미있어진다. 아무리 재미없는 행동도 내가 선택하면 재미있어진다.

‘넛지Nudge'

방향만 은근슬쩍 제시하고 최종결정은 스스로 내리도록 해야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한 이들에게 나타나는 심리현상은 좌절이다. 좌절한 이 땅의 사내들은 밤마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다양한 폭탄주를 제조한다. 내 돈 내고 마시는 술이라도 한번 내마음대로 섞어보자는 거다.

그래서 요즘 부쩍 드는 의문이 있다. 술도 못마시고 고작해야 수첩이나 바꾸며 만족해야 하는 ‘이 쩨쩨한 인생은 도대체 누가 결정했는가’하는 심각한 질문이다. 잘 모르겠다. 이런 젠장. 이제 내 나이 오십인데...

 

-시키는 일만 하면 개도 미친다!

‘파블로프의 개’

짓궂은 파블로프가 타원 모양을 점점 원에 가깝게 했다. 어느 순간부터 개의 행동이 이상해졌다. 원과 타원의 구별이 어려워지자 아무 때나 침을 흘렷다. 그래도실험이 계속되자 개는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안을 빙빙 돌아다니며 오줌을 흘렸다. 주변에 있는 물건을 물어뜯는 등 전에는 전혀 보이지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파블로프는 신경증환자가 보여주는 행동과 유사하다고 해서, ‘실험적 신경증 Experimental neurosis'이라고 불렀다. 개도 똥오줌을 가리기 힘든 상황이 지속되면 정신병에 걸린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심리학자 셀리그만은 파블로프보다 더 잔인한 실험을 했다...전기고문실험.

어느 집단의 개는 도망갈 수 있는데도 그 자리에서 꼼짝않고 전기고문을 당했다.

‘학습된 무기력 learned helplessness';무기력도 학습된다는 이야기다.

실험적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은 개의 정신질환이 아니다. 인간의 상황을 개에게 적용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 오랜 기간 처하면 누구나 이 병에 걸린다. 스스로 차를 운전하면 절대 멀미를 하지 않지만, 남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도무지 차가 언제 가고 언제 서는지 예측할 수 없이 그저 앉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남자라면 누구나 약한 정도의 ‘신경증’과 ‘학습된 무기력’에 사로잡혀 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들어서는 더하다. 집안문제든, 사회문제든 도무지 내가 어떤 결정에 주체적으로 관여해본 경험이 전혀 없다. 어떻게 밀려 살다보니 여기까지 온 거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더 이상 무기력하게 ‘바보상자’를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까닭이다. 자신이 계속 듣고싶은 노래, 계속 보고싶은 사람을 결정할 수 있기에 즐거운 것이다.

그깟 TV 출연자를 결정하는 버튼 누르기도 그렇게 즐거운데, 내 삶을 내가 결정하는 일은 얼마나 설레고 흥분될까?

개도 시키는 일만 하면 미친다. 이제라고 뭐든 스스로 결정하며 살자는 거다. 내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일에 제발 쫄지 말자는 이야기다./계속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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