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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종주기(6)....돈워리쓰바, `이 또한 곧 지나가리니`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19. 22:20

14;30

벽소령대피소출발

세석대피소를 향하여...

금방 나올 것이라는 선비샘은 왜 나오지않는고야,우씨?

벽소령대피소에서 긴급수혈된 반쯤찬물통이 바닥을 보인지가 언제인데 왜 나온다는 선비샘은 나오지 않는쥐...

미치고폴짝뛰어야할 판이 되었다.

도표를 보았더니 벽소령대피소에서 선비샘까지는 2.4키로...

평소의 2.4키로는 1시간 정도 거리였지만 체력소진이 많은 지금은 아니었다.

많이 걸었다 생각해도 남은 이정표거리를 보면 아직도...생각만큼 많이 오지 않았고,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었다.

이런 머릿속 계산과 실제거리의 차이라니 사람 마음속이라는 것이 이렇게 허망요망스러웠다.

체력이 바닥이 났는지

어젯밤 수면부족영향이 이제야 나오는지

아니면 옆자리나이고운녀성동무들과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너무 노닥거렸는지

서서히 그 진가들이 나오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벽소령-세석가는 길목은 곳곳이 들쭉날쭉 오르내리며 고도를 높여갔다.

오르막길이 끝났다싶으면 또 나오고...이제는 끝났다싶은데도 또...또.. 흐미주까꾸나흐미@@@

나중에 들으니...덕평봉 칠선봉 그리고 영신봉까지 소문나게 악명높은 험산준령이었다.

아,내가 너무 과욕을 부린 것일까?

환갑나이를 어디로 출장보내구 대신 이팔청춘을 다시 들여온것 마냥 겁없이 아직도 청춘인양 뭔가 착각한 것인가?

억지로 어거지로...

그래도 선비샘은 결국 내앞에 나타났다.

물통에 물을 꽉꽉 눌러담고

누가 보거나 말거나

누가 자연보호 식수자원보호를 외치거나 말거나

나는 모든 것 체면 몰수해버리고

그 알량한 모범생의 탈을 훨훨 벗어던져버리고는

불같은 머리통에 물을 한바가지 두바가지 연거푸 들이부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머릿속이 진정이 되고 마음속이 차분해질지 모른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조금 진정이 된 것일까?

선비샘에서 이제 많이 쉬었으니

아무리 험한 오르막길이 나온다해도 죽기아니면까무러치기 그 이상일까 단단히 마음을 먹고

다시 그 '밀당'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험하다면 얼마나 험할까?

그래도 끝은 분명 있을 것이니...

세석대피소까지 남은 거리가 3.9키로...

지금시각 오후 3시30분쯤이니 오후6시까지는 얼추 2시간반이 남아있었다.

시간학상으로는 충분하였지만....체력이 거의 바닥수준이고 험한 영신봉을 넘으려면 ??? 각오를 단단히 하였다.

아니나다를까?

어느 지점이었을까?

가파른 바윗길을 힘들게 오르고나서 이제는 내리막길이 나오려니 했는데...

이때는 그‘밀당’의 법칙이 아니고 또 밀어붙여야하는 험한 오르막길이 나왔다.

간신히 엉금엉금 기어서 한고비를 넘기는가 했더니 이제는 또 왠 철제계단이 깎아지르듯 가파르게 누워서는...

드높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어찌할 것인가

엄살을 부린들 누가 받아줄 것인가

한걸음 한계단

나잡아잡수시라하면서

하나둘셋넷...다여일곱야달...

오르는 계단숫자를 거칠게 세면서 고달픔을 달래며 힘든것을 잊고 오르는데

어느 지점에서 가슴이 갑자기 울렁울렁거리는 것이 아닌가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이 벅차오르는듯 하였다.

순간적으로 ‘아차차’ 이것이 그런것이구나 싶었다.

탈진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겁이 덜컥 찾아들었다.

이 계단에서 쓰러지면 누가 알까?

어찌될까?

그대로 주저앉았다.

더 이상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

한참동안을  멈춰서 쉬었다.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였다.

진정이 조금 되었다.

그런데 계속 쉬고만 있을 수 없었다.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오르고 또 올랏는데도 계단은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몇계단이란 말이냐?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니...’

......곧 지나가리니 이 또한...

지리산 곳곳에는 알맞은 자리에는 꼭 이정표가 있었다.

가는 곳의 방향과 거리가 표시되어 있어서 나같은 초보산꾼에게는 더없이 유익하였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세석대피소가는 길목에도 곳곳에 이정표가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노릇인지 그 숫자가 예전의 그 숫자지표가 아니었다.

말짱헛것...도통 도움이 되지않았다.

이를테면..어느 지점의 이정표 가라사대;세석대피소까지 2.4키로

그러나, 가도가도 세석대피소는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다 왔겠지하면 아직도...2키로

이제는 다 왔겠지해서 다음 이정표를 보면...아직도 1.5키로...또...

마음속의 허수였다.

마음속에서 요술을 부리고 있었다.

상상임신을 한다더니 어쩌면 내가 헛것을 보고 허수를 실수로 받아들이려 하는 것인지 몰랐다.

내가 지금 누구냐? 내가 지금내가 아니냐?

역호접몽?

영신봉에서 세석대피소가는 길은 단순한 ‘밀당’이 아니었다.

계속 밀어붙여야하는 험한 오르막길의 연속극이었다.

당연히 요령이 생겻다.

힘이 부치고 떨어지면 더 이상 진행하지않고 그대로 앉아서 쉬었다.

쉬면서 오리걸음을 걸으면서 다리의 경직을 풀었다.

(경험상..다리근육 푸는데는 오리걸음만큼 좋은 것이 없다!!)

쪼구려뛰기도 하면서 기운을 다시 불러들이고 몸을 추스렸다.

그리고는 또 다시 시작하였다.

얼마가지 않아 또 가슴이 울렁거리려하고 다리가 굳어지는듯하면

또 쉬었다.

또 오리걸음을 하였다.

하늘을 보고 심호흡을 하고 또다시 정신을 가다듬었다.

새로운 이정표가 나오면 보이는 숫자의 2배 아니 아예 10배를 해서 느긋하게 셈을 하였다.

남아있는 거리가 아직도 많이 남았으니 너무 서두르지말고 느긋하게 천천히 가자!

‘곧 지나가리니... 이또한...’

나자신에게 수없이 주문하고 또 주문하였다.

고문을 당해본 사람이 말하였다.

‘언제 고문이 끝날지 모를 때가 가장 힘들고 두렵다. 아무리 험한 고문도 끝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 전혀 두렵지 않다’

‘가장 두려운 것은 끝이 어딘지 모르고 불안해 할때이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다리가 흩으러지려할 때 나는 수없이 되내었다.

'세석대피소'라는 오늘의 끝이 분명히 존재한다.

두려워하지마라.

가고 또 가면

기어서라도 가면 그곳은 나온다.

돈워리쓰바!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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