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군대에서,1970-1977

군제대 그리고 복학....1976년 3학년 후학기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15. 22:38

/복학하면서....1976년 후학기
34개월 만기제대.
아니 교련 2학점이수 2개월단축되었으니 논산훈련소 입소후 32개월만에 제대.
2개월 단축도 하루가 금쪽같던 말년군대를 생각하면 엄청난 특혜였다.
교련반대를 외치면서 교련수업을 반대하고 딴 학점이수가 그래도 2개월의 황금같은 시간을 주었으니 아이러니는 아이러니였다.
따블빽동기들보다 2개월을 먼저 나왔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부대전입동기들은 얼마나 내가 부러웠겠는가.
가짜 서울상대생은 어찌 느꼈을까? 마땅히 1개월이나 2개월이나 3개월 단축을 받았어야했는데 가짜대학생이니 교련수업도 받지 않았으니 복무단축은 없고 이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가짜가 탄로났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뭐 이런 일 정도로 가짜가 당황하고 쪽팔려하며 움츠려들줄 알았느냐는 듯이 더 노골적으로 고개 빳빳이 쳐들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남은 군대생활 열심히 하였을까?
 
논산훈련소때, 입소전 칼잠자고 번개샤워하던 일, 화장실에서 남몰래 숨어서 피엑스빵 허겁지겁 먹던일, 취사병사역후 통닭들고 점호끝난 내무반에서 옆동료들과 통닭뜯어먹던 일, 28연대축구선수뛰다가 발바닥 물집잡혀 성냥화약으로 물집제거하던 일, 각개전투하던 밭에서 무줏어먹다가 오리걸음 기합받던일, 단기하사교육차출되어 평발로 합격취소되던 일,
101보충대 눈밭에서 웃통벗고 앞으로취침뒤로 취침 기합받던일, 공수훈련 무서워 사령부배치받게 해주겠다던 행정병에게 속아넘어간일, 전방배치명령후 행정반으로 몰려쳐들어가 약속위반을 따지고 일부반환받았던일, 눈제거사역하다가 주번하사를 들이받았던 일 그리고나서 공수훈련지원하고, 겨울훈련불가방침으로 도중귀대하고 오히려 3개월전입신병이 위로휴가 최초기록세운일...전입1년여때 인사행정반의 실력자행세하며 거침없이 군대생활해나갔던 일...
논산훈련소때는 모두가 똑같이 훈련하니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마음이 고통스럽지는 않았지만 자대배치되고 나서는 상하계급이 뚜렷해서 나의 처지를 주장할 수 없으니 처음 부대배치를 받고서는 마음이 무척 심란하였다.
특히 가짜서울상대생이 주는 남모르는 콤플랙스 그리고 군대생활의 모순과 불합리성,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는 막막하기만한 실체없는 실체..다행히 공수훈련지원으로 예상을 뒤엎는 강수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어서, 나의 군생활이 연착륙할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운명이었는가? 그것도 운명!
 
자, 이제 제대하였으니...자 이제 복학하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학내이념써클인 농대기러기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멀어져야 하나 더 깊이 들어가야하나 아니면 물러서야하나?
(그때 일반적으로는 대학2년때 이념써클의 중추역할을 맡았다. 나도 마찬가지여서 2년때 농대기러기회장을 하고 3학년때는 일선에서 물러나있엇는데, 군대를 다녀왔고 또 졸업을 곧 앞두기도 했으므로 이념써클 전면에 나서지않는다고 누가 크게 주목할 수도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3선으로 물러나 주1회 집회만 참석하고 세미나나 대외행사에는 일체 참가하지도 않고 간섭도 하지않기로 하였다. 학원정국은 갈수록 앞이 보이지않게 되고 한편으로는 학생들은 강경화되고 있엇는데 나의 경우는 자연스럽게 구심점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학생운동권에 몰두하지않은 것이 향후 나의 사회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누구도 알수 없을 것이었다. 이것도 운명이었을까?)
 


===며칠전, 서재의 파일을 정리하다 옛 병역수첩이 나왔다.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한때 방황하며 치열했던 때, 물불을 가리지않게 사회의 불의함. 불평등.불공정에 대하여, 두서없이 대들었던 때였다. 그렇다고 뭐 구체적으로 어떻게 무엇을 해야할지 좌충우돌하기만 하다가 급기야 더이상 어찌할바를 몰라서 그냥 휴학하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덜컥 휴학을 하였다..1년 정도 더 늦게 사회에 진출한들, 아무것도 모른체 무작정 휩쓸려가며 졸업하는 것보다는, 비록 1년 늦게 나간다해도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가는 것이 막연하게나마 더 좋을듯 하엿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변명거리이기도 하고 타협책일수도 잇었는데 그때 나는 1년 휴학을 결정하고..보성 시골로 낙향해서 고시공부를 하기로 하였다...마침 둘째형이 보성쾌상분교에서 신혼생활을 하고있었는데 그곳에 빌붙어 고시공부랍시고 하였다. 그러낟가 1년이 지나고 복학하였는데..복학하자마자 입영영장이 날아들었다...그때는 관계{당국에서 학원내 요주의 학생들을 괸리하고 있었는데 나도 그중의 한명이었던 것이다..입영영장 발부의 이유는 '학적변동자에 대한 긴급 영장'이었다.1973.10월 어느날? 논산훈련소 입소명령이었다..머리를 박박 깎고...하루전 광주의 김제평집에서 하룻ㅎ밤 함께 자고 논산으로 향하였다. 그도 영장을 받았다..)
(오늘 병역수첩을 다시보니...나의 병적기록이 그대로 유지되고있다...입대일, 진급일, 제대일 등..그런데, 눈에 띄는 것이 병역수첩게 '1973년도 보충역 편입' 보성읍사무소의 병적계의 기록이었다...나는, 병역자원의 예비 신체검사에서 이미 군의관이  '평발'임이 확인한 결과에 근거하여 '보충역 편입자원'으로 확인하고 있었는데..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른체 '학적변동자'로 분류되어, 복학하자마자  입영영장을 받고 논산훈련소에 끌려가서 3년의 군대복무를 하게 된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운명은 운명이었다...병역의무를 보충역으로 마칠수 있엇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아무 대비도 하지않은채 학적변동자로 갑자기 군대 끌려갔으니 이또한 운명이면 운명인 것이다. 만인 내가 군대 3년을 가지않고 보충역으로 병역의무를 마쳤음년 나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군대에 가지않고 그때 학내에 남아았었다면 나는 그대로 흥사단 기러기 활동을 계속하였을 것이고 성격상 강경파로서 학내분규에 휩슬리다다 공안당국이 그대로 놔두었을까? 누구도 모른는 일일 것이다..운명일까? 또다른 일은, 내가 내블로그 '군대생활'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바있지만, 논산 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마치고...후반기 교육이나 하사관학교 차출을 위한 정밀신체검사에서..군의관이 나의 '평발'을 확인하고는 '하사관후보 결격사유'이니...나에게 의견을 물어왔다. 하사관후보 3개월 훈련 받고 싶으냐 또는 그냥 보통 신병으로 전방 근무하는 것이 좋ㄴ즈냐 물어서..나는 두말하지않고 조금 고되다해도, 하사관후보로 가서 고된 훈련마치고 전방배치돼서 고참병장들과 다투느니 차라리 쫄병근무하는 것이 더 좋겠다 하였더니 그 군의관이 '하사관학교'대신 전방배치로 결정해주었다. 이또한 운명 아니겠는가? 만일 내가 하사관학교 훈련을 마치고 전방배치되었다면 나는 고참병장들과 어떻게 정리하였을까? 성격상 불의를 참집못하고 원칙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의 가치관에 ㄸ라 분명 그들과 다퉜을 것이고 결과는 어떠하였을까? 자못 궁금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는 하지만...그때 논산훈련소 상황에 처한 나로서는, 그냥 편하고 쉬운 길인...하사관학교 차출대신 쫄병 전방근무를 선택하였고 그 군의관의 호의로서 나의 운명을 그렇게 결정되었다..그런데 그 운명전에 나는 '73년도 보충역으로 이미 편입'되어있는 것이..현역입영으로 갑작스러게 변경되엇으니 이또한 운명일까? 참 모르는 일이로다..2024.7.14 그때그시절 회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