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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7.연애에서의 세대차이/박범신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5. 13:04

나는 때로 요즘의 젊은 그들이 부럽다.

그들은 확실히 우리 세대보다 안정적이고, 감정의 기복을 무난하게 여밀 수 있으며, 절제를 통하여 ‘튀지 않고’ 사는 기술을 더 잘 알고 있다.


내게 있어 연애는 여전히 평화보다 투쟁에 가깝다.

사랑은 합리성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감정과 다름없어서, 한번 연애에 돌입하면, 무슨 일이든 있든 없든 상관없이, 내부에서 끊임없이 추락과 상승이 반복되고, 주관과 객관이 전도되고, 이성적 판단과 감성적 선택의 경계가 무화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내부의 열망으로 모든 감각체계가 풍뎅이처럼 부풀어 올라 매사에 균형과 안정감을 잃게 되는 것이다.

공부라고 뭐 다르겠는가.

특히 창작이란 비정상적인 감정의 반응을 포착하여 그 씨앗으로 얻어내는 과실 같은 것이라서, 심리적 균형은 경우에 따라 언제든 독이 될 수도 있다.


내 젊은 날은 지향에 대한 절대적인 열망 때문에 일상에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엇고, 지금의 보편적 ‘젊은 그들’은 모든 걸 상대적으로 받아들이고 관계 맺기 때문에 균형에 따른 부가적인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연애도, 창작도, 그것에 대한 절대적 지향 때문에 끝없는 내적 분열의 고통을 매일 감당해야 하고, 그 ‘투쟁’을 창작과 삶의 동력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지닌 나 같은 사람에게, 상대성을 견지하며 비교적 균일하게 매사를 챙겨가도록 훈련받은 안정적인 ‘젊은 그들’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의심많은 나는 돌아앉아 그들의 뒤꼭지에 대고 이따금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제네들, 연애를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

‘문학을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


수시 모집 면접 날, 운동장에 자가용이 미어터진다.

면접시간이 다 끝나도록 캠퍼스 곳곳에 진을 친 자가용은 움직이지 않는다. 불안하고 초조한 부모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시골에서 올라온 것도 아닌데, 대체 스무 살 다 된 ‘청년’들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으로 태워 오고 태워 가는 것일까. 나는 그것 역시 부럽고 신기하다.

어쩌면, 연애를 해도 성적이 절대 떨어지는 법 없고 ‘무엇’이 되고 싶으면서도 성적의 과목별 편차가 전혀 없는, 안정적 ‘젊은 그들’을 길러내는 요람이 그 풍경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안정감은 아름답고 편안하다.

그러나, 젊은 날, 자기 지향을 오지게 쫓아갈 수 있는 동력은 안정감보다 필연적으로 불균형하게 드러나는 내적 분열에서 나온다는 믿음을 나는 아직 수정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매사 상대적인 관계로써 안정감을 확보한 ‘젊은 그들’보다 여전히 내부적 불균형 때문에 불편하게 살고 있는 ‘늙은’ 내가 오히려 덜 권태롭고 덜 외롭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껴안고 가는 안정감은 최종적으로, 권태와 고독의 수렁으로부터 자신을 건져 올리는 힘이 없다.

그게 문제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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