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6.산다는 것은....안부를 묻는 세가지 방법/박범신
/안부를 묻는 세 가지 방법;
-어디 사느냐 ‘부동산’?...내가 어떤 나무를 좋아하는지 어떤 꽃을 가꾸고 있느지? 말해주고 싶고...
-‘자식’으로 물어오면?/큰애가 연출한 연극 작품들의 경향에 대해 토론하고 싶고...
-‘건강’ 무슨 약을 먹는지 무슨 운동을 하는지?/삶의 유한성이 주는 우리 세대의 존재론적 강박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상의하고 싶고...
집에 돌아오면 지쳐서 눕는다.
나이 먹으면 친구들과 만나서 우의를 나누는 것이 최고의 낙이라 배웠는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삶의 유한성으로 내몰리는 노년을 어찌 보낼지 앞이 캄캄하다. 예전엔 만나기만 하면 며칠 밤을 꼬박 새워도 할 말이 차고 넘치던 친구들인데, 아무리 세월이 무섭다 하지만 어떻게 이리도 뚫고 들어가 소통할 말이 없단 말인가?
하기여 뭐 친구들만 그런 게 아니다.
가족들과도 때론 말분이 막히고 이웃들은 만나도 잘 나가야 신문 가쉽성 대화 정도에 맴돌기 일쑤고, 심지어 동료 작가들을 만났을 때도 개그맨들 잡담하듯 말허리를 서로 잇고 거짓말 반 참말 반으로 웃다가 끊어진 다리같은, 처치 곤란한 어색한 침묵과 맞닥뜨린다. 문학 얘기는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그런 날 역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헛헛하기 이를 데 없어 발이 꼭 허방을 짚은 것 같다.
차라리 모르스 부호를 두드리고 싶다.
사실이다. 자주자주 당신들보다 우주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진다. 사람들을 만나서 뻔한 개그에 의례적으로 웃고 실질에 도움도 안 되는 몇몇 정보를 주고받는 체하다가 잔뜩 지쳐서 돌아오면 나는 깊은 밤 혼자 앉아 우주를 향해 나의 상처와 고독과 남은 꿈에 대해 모르스 부호를 보낸다.
이 글도 우주로 보낸 모르스 부호들 중의 일부다. 가까이 있는 당신이 너무도 그립지만 이 세상의 말들은 이미 정보에 점령당해 그 빛을 잃었으므로 차라리 우주의 어느 별을 중계 삼아 당신에게 당신에게 ‘쓰리쿠션’으로 보내는 모르스 부호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자본과 기민한 정보에 ‘말’이 모두 흡수되고만 세상을 생각하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말’이 본질과 현상, 안과 밖, 꿈과 실제, 너와 나를 잇던 ‘전설의 시대’가 너무도 그리운 이 가을이, 지금 창 밖에서 속절없이 침몰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