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4. 산다는 것은.....산나귀와 집나귀/박범신
/산나귀와 집나귀;이솝우화
우리가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추상적 가치여서 그 정체가 늘 모호할 수밖에 없다.
모로코를 여행하던 중 사하라 사막 변방에 사는 베르베르족 노인을 만났을 때 나는 대뜸 행복해지기 위해 바라는 게 있냐고 물었다. 노인은 ‘오늘 밤 비가 내리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라고 대답했다. ‘비가 내려 황무지의 풀이 좀더 자라면 내 양떼들이 그만큼 더 배불리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노인은 오히려 내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무엇을 바라는가.
이솝의 우화에 나오는 산나귀는 스스로 자유로운 삶이라고 자각함으로써 행복하다고 느끼지만 그것 또한 산나귀의 ‘자족’일 뿐이다.
어떤 이는 차라리 자유를 제한당한다고 해도 편안하고 안락한 삶이 행복의 선결요건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아니 ‘집나귀’가 이렇게 말하면 또 어떤가. ‘나는 짐을 지고 가는 걸로 어려운 사람을 돕고 있어. 그게 내 삶의 보람이야. 추위에 쫓기면서 죽을 때까지 먹을 것이나 찾아 헤매는 너는 과연 무엇에서 보람을 찾고 있니?’
원시문명에서 사람들은 ‘산나귀’였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거의 모두 ‘집나귀’가 됐다. 바라는 건 천차만별이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집나귀’로 길들여진 상태에서 얻어낸 ‘가짜’라는 걸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내가 바라는 것은 더 큰 아파트’라고 말했을 때, 더 큰 아파트로 이사가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 큰 아파트’라는 소망은 본질적인 염원이기보다는 경쟁적 정보가 우리에게 주입된 길들여진 상태에서의 ‘가짜 소망’이기 때문이다.
‘자족’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한단 말인가.
지속적인 행복을 얻으려면 진실로 내가 소망하는 것을 먼저 확실히 해두어야 하지만 바쁜 현대인의 생활 속에선 이것을 찾아 확인하는 것부터가 참으로 쉽지 않다. 만족을 모르는 욕망이 우리를 가두고 있을 뿐 아니라 자유로운 삶에 대한 요건도 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도 교묘한 길들여짐에 의한 가짜 자유인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