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생명 살리는 새로운 연장을 꿈꾼다`/박범신
[새해 특별 기고] 생명 살리는 새로운 연장을 꿈꾼다 | |
박범신 작가·명지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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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란 전인미답의 대지이다. 우리는 점령군처럼 물밀듯이 2010년의 대지로 들어왔다. 어떤 이는 새 삽을, 새 낫을 들고, 또 어떤 이는 새 호미를 들고 들어왔다. 신기종 트랙터를 앞세우고 무리지어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호랑이해, 라고 목청껏 외쳐대는 것이 옳거니, 모두 한바탕 ‘백수의 제왕’처럼 용감하게 뛰어볼 심산이다.
하지만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새해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온 신대륙이 아니라 어제라는 대지의 연상선상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지난날로부터 남겨진 문제들을 무책임하게 덮어버리고 얻어낼 수 있는 새날의 수확이란 없다. 연장만을 새것으로 바꿔 든다고 해서 대지를 옥토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참된 농사꾼의 영혼을 알고 있었던 생텍쥐페리는 일찍이 ‘대지는 우리에게 책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말하면서 ‘왜냐하면 대지는 우리에게 저항하니까’라고 단서를 붙인 바 있다. 희망을 좇아 설레면서 새해라는 이름의 전인미답, 그 대지로 진군해 들어갈 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자본주의적 욕망과 독재의 그늘 진군해오지만
18년 동안이나 이 땅에서 살아온 네팔 청년가수 ‘미누’가 불법체류자로 붙잡혀 많은 사람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재빨리 송환된 사건 역시 잊히지 않는다. ‘미누’의 문제가 어디 미누만의 문제인가. 새해는 왔지만 인종, 신분, 학벌, 재력에 따라 모든 생명값을 서열화해 버리고 마는 야만적인 사회 관행을 진실로 반성하고 개선하자는 말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의 발표를 보면 우리 사회의 개방도는 조사 대상 57개 나라 중 56위다. ‘한국이 슬퍼요!’라고 외쳤던 ‘미누’의 울부짖음이 상기도 생생하다. 지난해 우리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남달랐던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을 잃었으나, 거칠게 말하자면, 날이 갈수록 그분들의 인간주의적 열망조차 우리들 손으로 땅에 파묻는 느낌이다. 문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구조 속에도 산적해 있고,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도 더께를 이루고 있다. 자본주의 욕망이 만들어낸 가증스런 편견들과 독재의 그늘이 조작해낸 정파에 따른 온갖 고정관념들이 우리를 좇아 새해라는 시간 속으로 함께 진군해 들어오고 있을진대, 어찌 희망만을 말하며 2010년을 맞이하겠는가. 호랑이해라고들 한다. 하지만 ‘호랑이해’라는 말이 행여 우리 모두를 옥죄는 어떤 속임수의 이데올로기로 이용될까 솔직히 지레 겁이 나는 요즘이다. 5000만 민족이 모두 다 ‘백수의 제왕’이 되려 한다면 …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