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제 1회 수학녀행을 다녀와서ㅡ첫날
광주지역과 서울지역의 기러기 친구들이 산 좋고 물 좋은 어느 한 곳에 모여
한 일박이일쯤 추억의 시간을 가져 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이 이번 가을에는
과감하게도 추진되고 또 실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2008년 11월8일 아침 9시, 남부 터미날에 늦지 않게 나타난 사람은 서울팀 4명 동희, 수남, 영애, 영희였다.
원래 찬규가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새로 시작한 사업이 발목을 붙잡는 탓인지 불참하는 바람에
약간 서운한 마음으로 우리는 서울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예매한 버스표 중 한 장은 10% 수수료를 물고 환불 받았다.
버스표 한 장이 그대로 날아가지 않다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쾌재를 불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범생이의 한계인듯 싶었다.
버스표를 구하지 못하고 waiting list에 늘어선 한 사람을 꼬셔
버스표 한 장값 플러스 알파를 받아낼수 도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고 방장이 혀를 찼다.
서울에서 구례까지 가는 좌석에 누가 누가 한 팀을 이룰 것인가? 말이 많았지만
이는 제비뽑기로 엄중하게 결정되었다.
구례까지 가는데 소요 예상 시간은 4시간 30분이었는데
단풍철 주말인지라 5시간쯤 걸려서야 구례역에 도착했다.
구례구역 근처 식당에 모여 앉은 사람은
남부지역 곳곳에서 모인 정환, 정희, 유선, 솔향, 봄순
그리고 서울팀 4명으로 합이 9명이었다.
근처 섬진강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참게로 만든 참게탕을 비롯한
은어 튀김등 다른 지역에서는 맛볼 수 없는 여러 가지 음식을 푸짐하게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온 10 여 만원의 식대는 뜻밖에 유선이가 미리 지불했음을 알고
돈지갑을 들고 있는 나는 깜짝 놀랐다.
“그리하면 아니되옵니다마는...” 하고 여러번 탄원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느긋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저녁 숙소에 들어가기 전까지 드라이브로 단풍 구경에 나섰다.
해마다 단풍철엔 늘 그곳 육모정 근처를 빠뜨리지 않는다는
무드파 솔향의 긴급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날짜로 보면 단풍이 별 볼일 없는 시기였다는 데 올 가을 날씨가 더웠던 탓인지
아직까지 꽤나 아름다운 형형색색 단풍이 있었다.
우리는 단풍 빛을 좀 더 잘 감상해보겠다고 창문을 내리고 소리소리 지르며 방방 떴다.
“아니, 뭐가 그렇게도 좋고 뭐가 그렇게도 즐겁다는 거시여 시방?”
방장의 큰 눈이 단풍쪽 말고 우리 쪽을 보며 휘둥그레졌다.
나는 봄순이 모는 차를 타고 조수석에 앉았는데 봄순의 핸폰 신호가
계속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누군가 급히 연락을 보내고 싶어하는 모양이었다.
봄순의 설명으로 알게 된 사연인즉...
지금 단지 우리 기러기들의 입을 즐겁게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당일 아침 신안 앞바다에서 채취된 전복이 우리 뒤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거의 간첩 접선에 버금가는 그 프로젝트의 운반책이 “ 모시모시, 어느 골짜기에서 접선할깝쇼?”
애타게 연락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프로젝트의 총 책임자는 봄순양의 서방님, 도라도라 박사 말고 구슬치기의 타이거우즈 조박사였다.
원래 다정다감하고 화끈한 멋쟁이라는 걸 우리 친구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까지 우리 기러기들을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몰아 넣을줄은 예전엔 정말 몰랐어요였다
.
결국 그 전복은 심원마을 우리들의 숙소 "황토방“에 도착되었다.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그곳에 급커브와 경사를 지나 깜깜할 즈음 들어섰는데
운전하는 사람들의 등에는 식은 땀 깨나 흘렀을 것 같았다.
솔향은 이것저것 과일을 맛있고 예쁘고 큰 것만 골라와 우리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민박집 아주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내오신 더덕구이, 각종 산나물 또 토종된장 묵...
이런 진수성찬 플러스 조박사가 보낸 전복 두상자,
솔향이 가져온 과일 그리고 여기저기 속주머니에서 꺼내 놓은 향기로운 술...
전복이라고 하면 내 기억으로는...
늘 비싸고 귀해서 누가 병원에 입원이라도 해야
달달 떨며 지갑을 열어 딱 한 개 솥에 집어놓고 죽을 쑤어 먹는 물건이다...
라고 입력 되어있는데...
웬걸 우리는 몇 십개의 전복을 산처럼 쌓아놓고
회로 먹고 볶아먹고 또 죽까지 쑤어 먹었다.
과분한 저녁을 먹은 후 우리는 심원 마을 하늘에서
소문처럼 별이 쏟아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두 숙소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와는 확연히 다른 공기 그리고 고요함이 느껴졌다.
도시에서 산속으로 장소만 옮겨진 것이 아니었다.
5학년의 시간이 아닌 그 옛날 1학년 2학년의 시간으로
어느 순간 우리의 무대는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봄순양이 맨 먼저 우리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했다.
찌그러지고 때묻은 유행가 말고 우리가 그 시절에 불렀던 맑은 샘물같은 노래....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햇님이 쓰다버린 쪽박인가요...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스르르 팔을 베고 잠이 듭니다.....
끝없는 구름길 어디를 향하고 그대는 가려나 가려나...
꽃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임 날 기다리듯.....
Beautifl beautiful brown eyes....
You are my sunshine my only sunshine.....
서편에 달이 호숫가에 질 때에 전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
근심 띄운 빛으로 편히 가시오 친구 내 친구 어이 이별 할까나...
아아, 그 노래는 기억이 안나 그때 부르지 못했었나?
별도 쏟아지지 않는 지리산 심원마을 인적드문 계곡초입에 서서
어딘가 우리들 기억의 창고 속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우리를 기다릴
그 시절의 동요, 캠프송 가곡들을 불렀다.
옛 추억을 불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