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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돈과 권력을 어떻게 대할까/이지양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20. 20:38

돈과 권력을 어떻게 대할까
이 지 양(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사마천의 『사기』「화식전(貨殖傳)」에 이르기를,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가 많으면 그에게 자기를 낮추고, 백배가 많으면 그를 무서워하여 꺼리며, 천 배가 많으면 그에게 부림을 받고, 만 배가 많으면 그의 노복이 된다”고 하였다.

기원전에 쓰인 이 문장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한 듯하다. 아니, IMF 이후 더욱 생생해지는 것 같다. 부자는 유능하고 부지런하며 예의바르고 세련되었다는 이미지 구축을 하고 있고, 가난한 자는 무능하고 게으르며 무례하고 더럽다고 이미지가 굳어져가는 중이니까 말이다. 재화를 어느 정도 소유했느냐가 곧 사람의 가치를 대신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럭셔리’라는 말이나 ‘명품’에 대한 선호는 그런 현상과 맥락을 같이한다. 누구나 일단은 ‘있어 보이는 이미지’에 호감을 표하고, ‘있어 보여서 기쁘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부자 멸시에서 숭배로 바뀌고, ‘1% 싹쓸이 사회’로

1980년대만 해도 우리 사회 분위기는 부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부자는 권력의 특혜를 입은 자, 그리고 그 권력이란 ‘군홧발로 국민을 밟고 차지한 힘’이라는 것으로 즉각 환치시키곤 했으니까. 그것은 우리의 현대사가 군부 권력과 재벌이 정경유착을 빚어온 결과이겠지만, 아무튼 그 당시엔 ‘부자는 나쁜 놈’이라고 거부감을 갖는데 별로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한 세대 만에 숭배로 돌변하고 있다.
그런데 부나 권력을 숭배하든 멸시하든 간에,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처럼 그 양 극단의 중심에는 ‘사람값’이 빠져 있다. ‘사람값’이나 ‘인생의 가치’ 대신에 돈이나 권력을 중심에 놓고서라야 그것을 숭배하거나 멸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분모를 가진 것이다.

사실, 부가 부정축재의 결과로만 있는 것은 아니듯이, 가난도 게으르고 무능함의 결과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명예로운 부가 있듯이, 명예로운 가난도 있지 않은가? 친절을 베풀고 봉사료를 요구하는 사람은 돈을 선택한 것이지만, 친절을 베풀고도 봉사료를 거절하는 사람은 친절 자체를 선택한 것이니까. 그런 식으로 환금성 대신에 다른 가치를 선호한 결과로서 가난한 경우라면, 가난을 보는 시선 역시 그렇게 일방적으로 편협해서는 안 될 것 같다.

근래 몇 해 동안 ‘2:8의 사회’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1% : 99%의 사회’라는 말이 들린다. 1%의 부자가 99%의 부를 소유하는, 한마디로 ‘1%가 부를 싹쓸이하는 조짐’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 부자들은 아마도 이규경(李奎景)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 가운데 ‘한량없는 큰 힘과 큰 부자에 대한 변증설’에 열거된 큰 부자들과 비슷할 것이다. 그 글에 나열된 역사상 손꼽히는 부자들에 대한 묘사는 정말 기기묘묘하여, 읽고 있으면 저절로 유쾌한 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남을 질리게 할 만큼 거대한 부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큰 부자들도 행복하게 살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들은 공존의 철학을 갖지 못했던 외로운 1%들이었던가. 만약 그들 1%가 지도층이 될 만했다면 99%를 어떻게 섬길까를 고뇌했을 것이나, 그냥 1% 부자에 불과했다면 99%와 차별되는 특혜를 누리려다가 평화를 모른 채 살다 죽었을 것이다. 부자는 좋지만, 외로운 부자는 좋지 않다. 외로운 부자는 한갓 초라하고 불쌍한 존재일 뿐이므로.

돈은 돈일 뿐, ‘사람값 하는 사람’을 섬기는 사회를

얼마 전, 인수위에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지도자 그룹이 ‘공존의 철학’ 대신 1%의 부자들을 위해 ‘전체’를 차별하고, ‘균형’을 추구하기보다 1%를 편드는 발상을 한다면 이 사회가 얼마나 지옥이 될까 싶어서였다. 그런 쏠림을 지지하여 차별화 전략을 제도로 구축하려는 발상이 ‘혁신’이나 ‘선진화’의 명패를 달고 추진된다면 ….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모두들 도박판처럼 ‘올인’을 외쳐대고 ‘선택과 집중’을 서두르고 ‘승자 독식’을 만끽하려고 하지만, 쏠림은 그 자체현상 때문에 스스로를 전복시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돈은 돈이요, 권력은 권력일 뿐. 그것을 특별대우 하는 것은 부당하다.

지금은 오히려 돈과 권력을 담담히 제자리로 돌려보내고, ‘사람값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사마천이 살았던 기원전 시대로부터 인류가 한걸음이라도 성숙한 진보를 했다면, 부와 권력의 쏠림으로 지배관계를 만들고 두려움을 형성하기보다는 ‘만인의 평화공존’을 이상으로 삼아야 되지 않겠는가? 돈과 권력을 섬기지 않고, 사람값 하는 사람을 섬기는 사회를 꿈꾼다.

글쓴이 / 이지양
부산대 인문학연구소 전임연구원
논문:「연암 박지원의 생활 특징과 문화예술사상」(『한국한문학연구』36집, 2005)외 다수
저서 : 『홀로 앉아 금을 타고』, 샘터사, 2007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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