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계로록1(서문)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15:41
-계획한 대로의 인생이 있을까

젊음이란, 미숙하고 어딘지 모르게 창피스러웠으며, 우스꽝스럽기조차 했다.
스물 다섯 살때, 나는 속이 얼마나 좁았던가. 사람들은 속이 좁은 것을 순수하다고 하는 것일까.
나는 순수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속이 좁았을 뿐이었다.

40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그것은 내가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기술을,
뒤늦게나마 조금씩 터득하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하면
이 또한 무슨 그럴싸한 체면치레의 말이란 말인가.
나는 그만큼 적당주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적당주의자인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형편상 타인의 적당주의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누구에게나 그 사람이 다름아닌 그 사람이라는 필연적인 이유가 배후에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분명히 실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더욱더 내 사고의 논리성에 혼란이 더해졌고, 애매모호해졌으며 반사회적이 되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은
이 새로운 혼란을 제대로 보는 입장에 처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젊었을 때보다도 복잡하게 몇겹으로 가리워진 사물의 내면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은 사물의 배후에 있는 무한한 깊이와 숨겨진 부분이 보이게 된다는 것이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점점 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는 것일 뿐이었다.

나이 40에 불혹이라는 말은,
40세가 되어도 도저히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 없다는 절망감이 꽤 분명해지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최선이 아닌 차선이나 혹은 그 다음의 길도 담담하게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어떠한 노인이 되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훌륭하게 늙어가는 작업을 나이 들어서 시작한다면 이미 때늦은 것이 아닐까?
어린아이 때 어른이 될 준비를 하듯
노인이 되기 위해 인간은 어쩌면 중년부터 차차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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