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Adds Ababa를 떠남시로`(끝)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15:30
2005.5.9.월. 출장 마지막 날 밤,아디스 아바바를 떠나면서, 방콕경유 중국광주행 에티오피아 항공.

좌석표시가 되어있지 않아 어디에 앉아야 하느냐 물으니, 그 여승무원은 ‘Free' 하였다.
이번 여행에는 유달리 ‘샴페인’과 ‘free'와 자주 만난다.

깨 쏟아지는 들판, ‘검게 그을린 땅’, 에티오피아의 대평원은 한국의 ‘대평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것인가, 정말 ‘Free'하고 또 free하게.

‘Free’란 것이 그러니까 우리말 뜻으로는 ‘자유로운’‘공짜의’ 또는 ‘아무것도 없는’ 등, 그런 뜻이 아닌가? 영어의 Free는 우리말뜻 모두를 서로 얼싸안고 소통시키는 것은 아닐지.
자유로운 것은 공짜이며, 아무도 소유하지 못할뿐더러 때로는 그것이 없을 수도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자유로움을 바라는 자, 움켜지지 말고 가진 것을 버리라. 자유로운 것은 누구에게나 공짜이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Free하게 생각하고, Free하게 살아라’인가?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앞만 보고 달려왔지 그것은 Free하지 아니 하였다는 반증인가?

‘아무 좌석이나 앉아도 좋사와요.’ ‘편하실대로, 좋으신대로, Free, free 하시와요.’
더 할 나위없이 나긋나긋하게, ‘Free, free'해댄다.

30석중에 아무 자리나 앉아도 좋다고 하니, 웬걸 전혀 free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하다.
어느 자리를 앉아야 더 좋은가, 창가? 가운데? 안쪽? 뒤쪽? 중간? 맨앞?
이것은 양손에 떡도 아니고, 수많은 미인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 하는 것이니, 나머지를 포기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더냐?

인간의 삶이 원래 모순덩어리, 그 속에 사는 인간 또한 당연히 모순 그러니 또 이율배반적 모순덩어리 아니던가. 구속이 싫다고 하여 자유를 주었더니 이제는 그 자유가 자신을 보이지 않게 속박하러든다고 짜증을 낸다. ‘Escape from freedom'이라 하지않던가.

여럿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하면 그대는 주저없이 무엇을 골라낼 수 있는가.
나는 머뭇머뭇 시간이 갈수록 어렵고 힘들어진다. 전혀 자유롭지 못하게 되는 자신을 보면 역겹기까지 한다. 용감하게 바로 결정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기까지 한다.

이것저것 따지고 비교하게 되고 소심한 난 결국 피곤하여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백화점에 가서 옷쇼핑을 즐기지 못한다. 특히 철지난 정장을 이제는 할 수 없이 갈아치울 때 몸살을 하면서 간신히 바꾼다. 나는 그런 내가 아주 싫다.
이미 어느 것으로 확정 지정되어 있으면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번거로움도 없고 망설임도 없으니 차라리 더 좋지 않은가?
‘용감한 자, 그대만이 미인을 얻나니‘ 이것저것 재거나 따지지 말고 용감하게 아니 무식하게 콱 찍을 수 있어야 저지를 수 있는 것이다.
때로는 무식해야 용감할 수 있고 미인을 얻게 되나니, 그대들 가끔씩 무식해도 좋으리.

‘바쁘다, 바빠‘ 시간들이 없다고 아우성치고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도 막상 자유시간, 그 마구잡이로 부담없이 쓸 수 있는 ’자유시간‘이 free하게 free로이 주어지면, 그대는 어떠신지.
오히려 그 자유시간들을 어찌 사용해야 좋을지 몰라 망막하지 않던가.
우리들 모순덩어리 인간들의 기회주의적 이중성을 어찌 탓하고 나무랄 것인가.

‘샴페인?’ 여승무원이 또 샴페인을 들이민다.
들어올 때도 ‘샴페인’ 하더니 나갈 때도 ‘샴페인’하는구나.
정말 내가 ‘샴페인’할 일을 하였으며 내게 ‘샴페인’할 일만 남아있는지 누가 아느냐.
나는 속으로 까짓것하면서 ‘축하’의 김칫국을 먼저 마시기로 하였다.
‘샴페인, 플리스!’

밤 비행기는 무엇을 잊지 못하여서일까,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밖은 소리없이 주룩주룩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정말 뭣인가 잊지 못하여 떠나지 못하는지, 엉터리 시인이 있다면 이를 슬퍼서 하늘도 울어준다 읊을지 모른다.
그 애틋하던 밤안개낀 ‘카사블랑카의 공항’은 아니지만 이렇게 비내리는 아디스아바바의 밤 공항이 괜히 내 마음을 신파조 가락으로 옮겨 가려 한다.

5월 6일 밤, 새벽 1시에 이곳에 도착하였으니, 지금 5월 9일 밤 거의 12시, 그러니깐 만 4일.
정말로, 또다시 그'번갯불에 콩 볶듯'일정을 소화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밤을 도와 들어왔다가 밤을 타서 나가게 되고 또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여느 때의 업무출장여행과는 사뭇 다르게 ‘센티’ 해지려한다.



몇 시간을 잤나? 3시간? 4시간?
모포를 등에 하나, 가슴에 하나 그리고 무릎에 둘, 모두 넷을 온몸에 둘러치고 잠을 잤다.
몸이 말끔하고 개운하다. 내 몸의 감기가 아디스아바바를 떠나면서 ‘샴페인’하며 ‘Free'하게 ’free'하며 나에게서 떠나준 것일까?
어깨팔다리 그리고 머리의 앞뒤옆, 여기저기 쑤시고 땅기고 찌근거렸는데 얼씨구 전혀 그렇지 않다. 무슨 조화이런가.
에티오피아의 오염되지 않은 공기만을 그동안 마셔대었더니 몸살감기가 자연적으로 치유되었다는 것인가?

우리의 일상적인 고정관념이나 상식이 때로는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에티오피아에 와서 새삼 확인되었다.
‘에티오피아는 몹시 덥다’ ‘에티오피아는 회교국이다’'가난하니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었다.
물론 해발 삼사백미터의 저지대는 몹시 덥고, 인구의 3-40% 정도는 무슬림이지만, 아디스아바바같은 고지대는 전혀 덥지 않으며 대부분이 크리스챤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려니 짐작하였던 것이 전혀 아니었다. 기존의 고정관념에 너무 끈질기게 또 고집스럽게 집착하지 말 것을 가르쳐 주었다.

년소득 이삼백불의 그들의 삶은 불행한 것인가?
우리들이 더 행복할까?
모르긴 해도 그들은 우리들보다 최소한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이웃의 삶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러니 비교할 필요가 없고 경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아직 돈의 위력을 경험하지 않았을 터이니, 분명 그들은 우리 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지 싶었다.

여름옷만을 준비해 간 나는, 잘못된 나의 상식으로 생각지 못한 고생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들이 대부분 무슬림이 아니며 기독교도가 더 많다는 사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나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최소한 나보다 불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
최소한 우리의 상식이 절대적으로 옳지만은 않다는 것이니, 세상사 절대로 내가 옳다고 장담할 일이 아니었다.

이번 출장여행은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처음을 시작하였지만 출장 내내 새로움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으니 그 끝은 좋을 수밖에 없다 해야지 않을까.
‘열려라, 참깨!’ ‘바꿔, 바꿔!’
‘검게 그을린 땅’에 ‘새로운 꽃’이 피어날지,
그들이 나의 모세가 될지, 내가 그들의 모세가 될지,,,,,,,,,
'Let's wait and see!'
기다려보자!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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