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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디스아바바의 첫 일요일(3)/`빗 속에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15:14
전원이 끊겨버려 야당대표의 연설을 들을 수 없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흩어져 나갔다. 나도 호텔로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이들 사람들 속에서 우왕좌왕 할 것인가 생각이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그 대학생은 나에게 대학축제에 가보지 않겠느냐, 거기서 에티오피아의 전통무용도 보고 전통적 커피도 맛보고, 장애인 돕기 행사에도 참여해보라고 은근히 꼬드기는 것이었다.

크게 내키지는 않았지만 일요일 오후 특별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옛 대학시절 못 다한 축제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고 해서, 강한 거부를 하지 않았는데 녀석은 벌써 방향을 그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래, 전통춤이 어떤지, 또 여학생들은 얼마나 예쁜지, 살짝만 보고 오자 하였다.

30여분을 더 걸어야 한다니 괜한 일을 하였구나 싶기도 하고, 감기기운의 체력이 괜찮을까 걱정되었지만 이왕 내친 김 돌이키기는 늦었다.

여전히 거리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움직이고 도로 곳곳에서는 '바꿔, 바꿔' 소리치며 돌아다니는 젊은이 떼들로 가득차 있었다.
대중의 힘이 무섭다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우리의 6월 항쟁이 그러했을까?
나는 그 때 방콕에서 해외지사 생활을 하였었는데 역사의 현장에는 있을 때 있어야 하는 것임을 훗날 알게 되었다. 남의 나라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았다. 대학축제까지 가려면 아무래도 비를 만날 것 같았다. 어서 우산을 어디에서 사야할 것인데 가게들은 모두 닫혀있고 망막하기만 하였다.

드디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말았다. 대학축제는커녕 어찌 호텔에 돌아가야 할지, 우산은 살 수 없고 아무리 택시를 잡으려해도 보이는 택시마다 호텔이 있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다. 그 학생이 택시를 잡아오겠다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너무 그 학생을 믿은 것이 아닐까, 대학축제를 따라나선 것이 너무 경솔하지 않았는가, 혹 이상한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가버리면 어찌되는가, 쓸데없는 걱정들을 하고 있는 사이, 얼마가 지났을까, 그 학생이 택시를 잡아서 나타났다.
어디로 나를 데리고 간다면 그때 일은 그때 가서 고민하기로 하고, 택시에 올라탔다.

비는 계속해서 억수같이 내리지요,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 찼지요,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요,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호텔은 가까이 다가오는지, 얼마가 지났을까, 내가 지난 아침에 돌아다녔던 낯익은 큰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지는 않았구나 싶으니, 괜한 생각을 한 것이 그 학생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드디어, 호텔 정문앞, 택시값을 물으니 운전수가 머뭇머뭇, 10Birr, 예상보다 너무 쌌다. 우리돈으로 1000원 밖에 안되다니, 10Birr를 더해 20Birr를 주고 내리려 하니 그 학생이 손을 내밀었다. 점심을 아직 못했는데 점심값을 좀 달라는 것, 10Birr를 주었더니, 부족한 듯 더 달라고 하였다. 다시 택시 잡아온 수고 값을 달라고 해서 또 10Birr를 주었더니, 이제는 아예 내 손에서 10Birr를 다시 하나 더 빼앗듯이 채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하였다.

이상한 곳으로 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지, 열심히 에티오피아 시국을 설명해준 통역료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대학축제에 가서 장애인돕기도 했을 푼돈일 수도 있었으나,
여간 깨름칙하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그의 조국, 에티오피아의 장래를 걱정하면서 하나라도 더 외국인에게 그 실상을 알리고자 이것저것 열심히 설명하던 그가 돌연, 돈 몇 푼을 뜯어가고 말았으니 이를 어찌 받아들여야 좋단 말인가.

현실의 배고픔 앞에서 젊은이의 자존심도, 외국인에 대한 나라의 자존심도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몇 푼도 나가지 않는 푼돈일 뿐이란 말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가난이란 무엇인가.
젊음의 자존심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인가.
돈은 귀신도 잡아온다고 하더니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젊은이의 자존심은 돈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단 말인가.

나의 가난했던 젊은 시절이 떠오르고, 지금도 열심히 가난과 싸우면서 제대로 잘 살아 보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을 것인데, 가난해도 돈 몇 푼에 절대로 자존심을 내팽개치지 않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분명 그 학생에게는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을 것이다,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돈 몇 푼을 더 달라고 한 것은 차마 말하지 못할 사연이 있음에 틀림없는 것이야,
나는 애써 나의 소설을 짓기로 하였다.

그래도, 그래도, 내 마음은 황당하게 또 씁쓸하게 비를 맞고 말았다.
우연찮게 '바꿔 바꿔' 외치는 사람들 속에서는 순박한 희망과 활기찬 미래가 보였었는데, 끝내는 앞으로 나아가고야 마는 어떤 역사의 흐름이 이곳에도 찾아왔구나 싶었는데,
나는 괜히 30년 전 데모하던 대학생이 되어 모처럼 신났었는데, 갑자기 쏟아진 비처럼, 그 끝이 날 스산하게 만들고 말았다.
나에게 비는 축복이며 희망이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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