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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Addis Ababa의 첫 일요일(2)/`바꿔, 바꿔!`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15:05
2005.5.8.일, 아디스아바바의 첫 일요일/거리에서 '바꿔, 바꿔!'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나. 조금씩 조금씩 이것저것 천천히 오래도록 먹었으니 배가 부담이 되고도 남았다.
배도 꺼지게 할 겸, 아디스아바바 도시 거리구경도 할 겸, 또 예의 쉬엄쉬엄 느리적거리면서 호텔 밖으로 나갔다.

누군가 다가왔다. 어린 아이였다. 우리의 초등학교 몇 학년일까. '구두 닦으세요' 구두통을 들고서 계속 따라왔다. '구두 닦아요, 구두 닦아'
'Gondor' 공장을 다녀와 내 구두가 엉망이기도 하고 그냥 적선하기도 뭐 할 것이고, '얼마?' 하였더니 '당신 좋을대로' 하는 것이었다.
무조건 구두를 맡겼다가 베트남의 나트랑에서 황당해했던 것이 생각나서, 다시 '얼마?' 물었다. 또 '당신 좋으실대로', 어디서 이 구절을 외웠는지, 정말 영어를 잘 하는지 'As you like, as you like'을 되뇌고 있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서 '1Birr?' 하였더니 구두통을 바로 땅 위에 내려놓고 내 구두를 잡아 올려버리는 것이었다.
쓱싹슥삭 몇 번을 왔다갔다 하였나, 눈 깜짝할 사이에 먼지만 대충 털어버리고 구두통을 탁탁 두드린다. 이제 끝났다? 처음에는 10 Birr를 주려고 생각했었는데 1 Birr만 주고 말았다.
내가 너무 쪼잔한 것인가, 그가 너무 얍삽한 것인가.
'What matters most is how you see yourself.'

구두의 먼지를 털고나니 몸과 마음이 이 더 가벼워졌다. 본격적으로 거리구경을 시작하자. 어디 한번 보자 하였더니, 지난번 이른 아침에 보았던 그 거리가 아니었다. 거리에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처음에는 일요일이고 또 오후이니 또 날씨도 너무 좋으니, 오고가는 사람들이 많으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조금 있으니까 한무리의 젊은이들이 무슨 피켓을 들고 무슨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온통 휩쓸고 뛰어 가고 있었다. 그런 일단의 무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나가면 또 지나가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외쳐대고 휘몰아쳐 갔다.

무엇이라고 외치는 것이냐? 옆에 서있던 한 젊은이에게 물었다. 다행히 나의 서투른 영어를 알아들었다. 'Change! Change!'
얼마 전 우리의 '바꿔, 바꿔'와 같은 것인가.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졌다. 도시구경삼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던 내가 어느새 사람들의 한 가운데 들어서 있었다. 또 물었다. 그 청년은 어떤일인지 계속 내 주위를 떠나지 않고 따라온 모양이었다. 모두들 지금 야당 대표의 연설을 들으러 가는 것, 백만 군중은 훨씬 넘을 것이며 그러니까 삼백여만 아디스아바바 인구의 모두가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 곁들어서 설명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나를 보고서는 어느 나라에서 온 옵저버인지 캐묻는다. 디카를 가지고 무엇인가 이것저것 찍어대니 이번 총선참관을 위하여 방문한 어느 국제기관의 옵저버 중 하나로 여긴 모양이었다.
업무출장 여행중이라 하였더니 조금 기대에 어긋난 듯, 실망하는 눈치가 보였다.
아무래도 국제적 옵저버라는 신분과의 대화가 더 효과적일 것이니까, 어딜 가나 내 직업은 그렇게 선호되는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젊은이들이 소리치며 달려 지나갔다. '도둑놈들, 도둑놈들'이라고 외친다는 것이었다. 지난 14년 동안 군부통치가 에티오피아의 정치.경제,사회를 몽땅 망가뜨렸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이들에게 국가를 맡겨둘 수가 없으며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5년마다 총선을 하는데 지난 2번 모두 국민들을 속이고 집권연장을 하였으며 이번에는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대학 2학년의 IT공학이 전공인 대학생은 물어보는 것마다 처음보는 이 외국인에게 거침없이 설명해 나갔다. 젊은이들 75%가 직장이 없어 가장 큰 문제인데 새로운 정부는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서 국가경제를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새로운 일자리가 마음대로 만들어진다고 믿느냐?' 하였더니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냐', 거칠게 되묻는 젊은이를 어떤 말을 하는 대신에 그냥 뚫어져라 들여다만 보았다. 그런 나를 그는 왜 그런지 이해하였을까. '말로써 말처럼 그렇게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뭐시 꺽쩡이다냐 쨔쌰야'
그 젊은이는 그냥 '할 수 있다.' '해야 한다'고만 말할 뿐 구체적 방법이 아직 있을 리 없었다.

야당 대표가 연설도 하기 전에 전원이 꺼져버려서 연설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현정부의 주구인 경찰들은 정신차리라, 또 일단의 무리들이 소리치고 지나갔다.
얼마 전 우리들의 모습들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면서 이들의 앞일이 걱정되었다.

우리의 발전과정을 그대로 밟아갈 터인데 혹 불상사가 나면 어찌하나 눈에 보이는 듯, 나쁜쪽으로 뒷걸음치지 않고 좋은 쪽으로 잠시 왔다갔다 비틀거리다 제대로 방향을 잡는다면 그것 좋을 것이다 한편으론 크게 기대되기도 하였지만, 만약 잘못되어 크게 뒷걸음친다면 이 노릇을 어찌할 것인가 한편으론 걱정걱정 심지어 소름끼칠 일이 보이는 듯 하였다.

14년 장기집권의 현정부여당은 정권을 넘겨주려하지 않을 터이고 국민들은 야당세력들에게 힘을 실어 모든 것을 '바꿔, 바꿔'하고자 할 것인데, 충돌이 불문가지일 터인데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내 옆의 젊은이는 나의 이런 가능성에 대하여 전혀 터무니없는 걱정이라고 일소에 부치고 만다. 노프로블렘, 써치어씽 네버 해픈, 돈워리. 아, 이를 어찌할 것인가?

일주일 후 총선결과, 에티오피아의 정국은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이 젊은이의 자신만만함처럼 현정부가 순순히 정권을 내주고 새로운 정부가 '검게 그을린 땅' 에티오피아에 새로운 일자리를 금방 많이 만들어, 아디스아바바에 정말 '새로운 꽃'을 피워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더 좁게는 '열려라, 참깨'는 열릴 것인가 열리다가 닫혀버릴 것인가,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하여, 가까운 장래의 일들이 왔다갔다 하였다.

사는 것이 무엇인지, 역사는 여하튼 앞으로 나아가게 되어있다는데, 자유 평등 박애를 향하여 느린 듯 때로는 아니 가는 듯 때로는 뒷걸음치기도 하지만 결국은 앞으로 나아간다는데, 에티오피아는 과연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그 역사의 수레바퀴 틈새 속에서 나의 '열려라, 참깨'는 어느 자리에 자리잡힐 것이며 그로 인한 결과가 나에게 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열리지 않는다면 그것이 역사의 한 과정이고 어쩔 수 없는 평가이니 이 개인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내가 너무 진도를 나간 것이야, 에티오피아의 민주화과정과 나의 '열려라 참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정치와 경제는 역사의 현장에서 때로는 아주 별개로 움직이지 않던가, 그것이 나중에는 결국은 한 역사로 만나게 된다지만....................................
내 할 일은 해놓고 기다려보는 수밖에, 나에게 역사는 너무 크고 더군다나 남의 나라 '에티오피아'의 역사는 더욱 먼 나라 이야기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은가.

아디스아바바에서의 첫 일요일,
거리구경을 나갔다가 우연찮게 '검게 그을린 땅' 에티오피아 역사 흐름 '바꿔, 바꿔' 속에 서있게 되었다.
그들에게도, 나의 '열려라 참깨'에도 '새로운 꽃'은 피어나는 것인가?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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