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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프랑스 혁명과 `세느강은 흐르고`-----더불어숲15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4. 20:54
---추락은 이상의 예정된 운명입니다. 그러나 이상은 대지 위에 추락하여야 합니다(콩코드 광장의 프랑스 혁명)

‘바스티유 광장으로부터 콩코드 광장에 이르는 길. 이 길이 프랑스의 근대사이다’
바스티유 감옥, 루브르 궁전, 시청사, 시민들이 최초로 무장을 갖추었던 폐병원, 나폴레옹이 대관식을 올린 노트르담 사원, 그리고 혁명과 반혁명의 기라성같은 영걸들이 단두되었던 기요틴 등,
혁명의 시작과 끝이 이 길에 총총히 자리잡고 있다.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의 함락으로 시작된 프랑스 혁명.
사회의 모든 계급의 원망과 소망을 남김없이 분출시키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얼굴을 백일하에 드러내는 장대한 드라마의 진행.
음모와 배신, 정의와 공포, 산악과 평원......모든 것이 뒤엉켜 달리는 산맥의 질주였다.

현재 바스티유 광장에는 감옥이 없다.
콩코드 광장 어디에도 기요틴의 자리도 없다.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트와네트’, 민중의 벗이던 ‘당통’, 혁명의 양심으로 불리던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화신 ‘생 쥐스트’
중세 1000년이 단두되었던 곳이며 동시에 혁명의 새싹이 단두되었던 곳,
루이 15세의 기마상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세워졌던 기요틴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은 채, 무심한 발길이 지나는 광장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역사를 만나는 어려움을 실감케 하였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어차피 역사를 해석하는 것일 터.

다행스런 것은 콩코드 광장과 국회의사당을 잇는 콩코드 다리.
바스티유 감옥을 헐어 그 돌로 만든, 감옥의 벽이 되어 사람을 가두었던 돌들이 이제는 사람들은 건네주는 다리로 변해 있다는 사실이, 곧 혁명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콩코드 다리 아래로는 예나 이제나 변함없이 센강이 교각을 적시면 흘러가고 있었다.

혁명이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만들어내려는 미지의 작업.
먼저 요구되는 것이 인식의 혁명.
낡은 틀을 고수하려는 특권층이나 그 낡은 틀의 억압에 항거하는 농민들의 인식.
그러나 특권층이나 농민들의 인식과는 달리 이 혁명을 이끌었던 혁명파의 구상은 관념적으로 선취된 이상과 그 이상에 도취되고 있는 정열로 채워져 있었지 않은가?
낡은 틀이 와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틀에 대한 분명한 구상이 마련되고 있지 않은 상황,
이것이 진정한 위기라는 교훈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 과정의 그 숱한 우여곡절과 좌절이 바로 그러한 위기의 필연적 귀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폴레옹의 구데타와 제정의 부활로 10년에 걸친 프랑스 혁명은 그 격동의 제 1 막을 내리게 되었고,
나폴레옹의 등장과 몰락은 철학이 없고 권력의지만 있는 힘이 결국 어디로 향하는가를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힘과 미덕, 이상과 현실이라는 팽팽한 긴장도 사라지고 지금은 다시 ‘이상이 없는 현실’ ‘현실이 없는 이상’이 함께 추락하는 역사를 맞이하고 있다.
‘자유, 평등, 박애’ 프랑스 혁명의 이념은 정말 사라졌는가?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정확히 200년 후, 1989년 소련은 해체되고 걸프전이 발생하면서 세계는 패권주의 역사가 전면화하고 있다.
그나마 슬로건으로 남아 있던 프랑스 혁명의 이념마저 영원히 사라진 것인가.

파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그들의 투표용지 속에서 혁명의 전통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프랑스 혁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고 위대한 승리였다고 믿는다.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싹을 틔우는 한 알의 씨앗‘이라는 싯귀처럼, 이상은 추락함으로써 자기의 소임을 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추락이 예정된 운명이라고 하더라도 이상은 대지에 추락하여야 한다.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는 민들레는 얼마나 슬퍼할까요?

소수의 그룹이나 개인에게 전유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그 이상이 공유되었던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난 것이라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는 승리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대로 역사가 되고, 역사의 반성이 되어 이윽고 역사의 다음 장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혁명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정신의 세례를 받았는가에 의하여 판가름되는 것.
바로 이 점에서 2300만의 프랑스인들이 함께 일어났던 프랑스 혁명은 실패일 수가 없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점철되어 있는 좌절을 기억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한다.

기요틴이 서 있던 자리를 밟는 감회가 비상한 것임은, 발밑에 묻혀 있는 혈흔이 전율처럼 번져오는 것, 우리가 먼저 읽어야 하는 것은 하늘.
광장을 가득히 메웠던 사람들의 머리위에 쏟아졌던 자유, 평등, 박애의 세례.
그것은 인간의 노력과 마찬가지로 비록 참담한 실패로 끝난 것이라 해도 너른 대지 위에 한 알의 씨앗으로 추락함으로써 역사의 긴 이랑을 푸르게 일구는 장구한 서사시로 다시 태어나 일어서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곡선의 콩코드(화합)’ 이며, ‘비극에 대한 축복’이다.
진보와 성장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한때 공감했던 감동은 마치 바다를 찾는 강물처럼 끊임없이 물길을 틔워나가리라고 생각한다.
지금보다는 덜 나쁜 세상에 대한 기억을 간직케 하고,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키워주며 진보와 성장의 의미를 새로이 만들어 가리라 믿는다.

‘세월도 흐르고 강물도 흐르고
우리의 사랑은 돌아오지 않은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강은 흐른다‘

‘아폴리에르’의 시가 떠오르고, 오늘도 센강은 바스티유 감옥의 돌멩이들을 적시며 흘러가고 있다. 직선이 아닌 곡선의 물굽이로 새로운 기하학을 가르치면서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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