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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런던의 타워브리지에서---더불어숲 14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4. 20:46
---士와 心이 합하여 志가 됩니다(런던의 타워브리지)
‘언젠가는 지구상의 모든 언어는 사라지고 오직 영어와 중국어만 남게 될 것이다.’
런던에 오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방학기간은 물론이고 학기중에도 영어를 배우려고 와 있는 어학연수생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영국의 언어수출은 매우 상징적이다.
산업혁명의 본고장으로 자본주의의 길을 가장 앞서서 달려갔던 영국 자본주의의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지금 산업은 없고 다만 브랜드와 금융과 언어만 있다.
몸에 해당하는 산업이 없고 머리만 있으니, 경제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병’
이 유럽병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조화시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낼 것인가.
과거의 영광이 미래로 가는 아름다운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오늘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언어의 상품화는 자국통화가 국제통화가 되고 있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기득권이 아닐 수 없다.
영어의 상품력은 해가지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영연방 제국의 역사에 있음은 물론이다.
영국 박물관을 보라.
소장품은 각국의 문화재에 그치지 않고,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석상,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아시리아의 성문 등 유적을 아예 옮겨다 놓기까지 하였다.
대영제국의 위용을 말해주지만, 그것은 야만, 횡포 그리고 범죄행위가 아닌가.
오늘도 막대한 금융자본이 세계를 넘나들며 외환과 증권 시장을 손쉽게 조작하고 있는 것이 국제경제의 실상인데,
사랑채에서 유유히 소일하면서 장리부채를 넘기고 있는 양반의 모습이 아닌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기름때 묻은 손으로 산업현장에서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노동자들과는 너무나 다르고,
왜 이런 다름이 발생하였으며,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가.
탬스강과 타워브리지, 아름다운 윈저성과 버킹검궁전 그리고 그리니치 천문대 등 양반국가의 후광이 되고 있는 유적들을 돌아보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혼란스러웠다.
개인이 신분을 상승시키는 과정과 방법은 어떤 것이며, 한 국가가 양반 국가로 지체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제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지............
망연해질 뿐, 뾰쪽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관가에 진 빚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신분을 사들인 부자에게 양반이 누리는 권세를 다음과 같이 문권에 적어 주었다.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고, 대강 문사나 섭렵하면 크게는 문과에 오르고 작게는 진사는 된다.
시골에 살아도 이웃집 소로 먼저 내 밭을 갈고, 마음 일꾼을 데려다 김을 맨들 누가 감히 시비할 것이랴. 코에 잿물을 붓고, 머리끝을 잡아돌리고, 수염을 뽑더라도 감히 원망치 못하리라.‘
바로 이 대목에서 돈으로 양반신분을 산 부자가 양반되기를 포기한다.
‘나를 장차 도둑으로 만들 작정이란 말이더냐?’는 말을 남기고 달아나 버린다.
사와 심이 합하여 지가 됨을 일깨우고 무릇 양반된 자의 지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머리만 남은 현대 자본주의의 팽대한 금융 자본이 과연 어떠한 지를 갖고 있는지?
선진 자본이 머리가 되고, 중진 자본이 몸이 되고, 그보다 못한 나라의 자본이 발이 되는 구조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체제와 불평등 분업의 상호 침투하는 이중구조가 아닌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의 머리를 빌리기도 어렵지만 남의 몸을 빌리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몸을 빌리는 것이든 머리를 빌리는 것이든 그것은 어차피 이질적인 것의 조합이며 언제 이별을 고하여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동거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자본주의의 과정은 상품화의 과정.
인간의 노동력은 물론이고 신체의 일부마저 상품화하고 사랑과 명예에 이르기까지도 상품화시킨다.
마치 ‘미다스’ 왕의 손처럼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화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손에 닿는 것마다 금이 되기를 원했던 미다스 왕의 손은 결국 저주의 손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을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옷도 의자도 빵도 정원의 나무도 사랑하는 딸마저도 금으로 변해 버린다.
상품으로 둘러싸인 세상은 마치 황금으로 둘러싸인 미다스의 정원과 같지 않을까.
황금의 정원에 서 있는 미다스 왕은 얼마나 소외의 극치를 보여주는가.
상품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항상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가 뜻을 바쳐야 할 곳은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대상이어야 한다.
자기 영혼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을 갖지 못한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 아닌가.
석양에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타워브리지.
타워브리지에서 템스강을 내려다보면서, 현대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떤 뜻(志)을 지향해 갈 것인지,
망연할 뿐이었다.
‘언젠가는 지구상의 모든 언어는 사라지고 오직 영어와 중국어만 남게 될 것이다.’
런던에 오면 이 말을 실감하게 된다. 방학기간은 물론이고 학기중에도 영어를 배우려고 와 있는 어학연수생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영국의 언어수출은 매우 상징적이다.
산업혁명의 본고장으로 자본주의의 길을 가장 앞서서 달려갔던 영국 자본주의의 변화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는 지금 산업은 없고 다만 브랜드와 금융과 언어만 있다.
몸에 해당하는 산업이 없고 머리만 있으니, 경제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유럽병’
이 유럽병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조화시켜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어낼 것인가.
과거의 영광이 미래로 가는 아름다운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오늘 그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언어의 상품화는 자국통화가 국제통화가 되고 있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기득권이 아닐 수 없다.
영어의 상품력은 해가지지 않을 정도로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영연방 제국의 역사에 있음은 물론이다.
영국 박물관을 보라.
소장품은 각국의 문화재에 그치지 않고, 이집트 람세스 2세의 석상,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아시리아의 성문 등 유적을 아예 옮겨다 놓기까지 하였다.
대영제국의 위용을 말해주지만, 그것은 야만, 횡포 그리고 범죄행위가 아닌가.
오늘도 막대한 금융자본이 세계를 넘나들며 외환과 증권 시장을 손쉽게 조작하고 있는 것이 국제경제의 실상인데,
사랑채에서 유유히 소일하면서 장리부채를 넘기고 있는 양반의 모습이 아닌가.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기름때 묻은 손으로 산업현장에서 시달리고 있는 우리의 노동자들과는 너무나 다르고,
왜 이런 다름이 발생하였으며,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인가.
탬스강과 타워브리지, 아름다운 윈저성과 버킹검궁전 그리고 그리니치 천문대 등 양반국가의 후광이 되고 있는 유적들을 돌아보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들이 혼란스러웠다.
개인이 신분을 상승시키는 과정과 방법은 어떤 것이며, 한 국가가 양반 국가로 지체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제구조가 뒷받침되어야 하는지............
망연해질 뿐, 뾰쪽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연암 박지원의 양반전.
관가에 진 빚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신분을 사들인 부자에게 양반이 누리는 권세를 다음과 같이 문권에 적어 주었다.
‘농사도 짓지 않고, 장사도 하지 않고, 대강 문사나 섭렵하면 크게는 문과에 오르고 작게는 진사는 된다.
시골에 살아도 이웃집 소로 먼저 내 밭을 갈고, 마음 일꾼을 데려다 김을 맨들 누가 감히 시비할 것이랴. 코에 잿물을 붓고, 머리끝을 잡아돌리고, 수염을 뽑더라도 감히 원망치 못하리라.‘
바로 이 대목에서 돈으로 양반신분을 산 부자가 양반되기를 포기한다.
‘나를 장차 도둑으로 만들 작정이란 말이더냐?’는 말을 남기고 달아나 버린다.
사와 심이 합하여 지가 됨을 일깨우고 무릇 양반된 자의 지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서술하고 있지 않은가.
머리만 남은 현대 자본주의의 팽대한 금융 자본이 과연 어떠한 지를 갖고 있는지?
선진 자본이 머리가 되고, 중진 자본이 몸이 되고, 그보다 못한 나라의 자본이 발이 되는 구조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체제와 불평등 분업의 상호 침투하는 이중구조가 아닌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남의 머리를 빌리기도 어렵지만 남의 몸을 빌리기도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몸을 빌리는 것이든 머리를 빌리는 것이든 그것은 어차피 이질적인 것의 조합이며 언제 이별을 고하여야 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동거일 수 밖에 없다는 것.
자본주의의 과정은 상품화의 과정.
인간의 노동력은 물론이고 신체의 일부마저 상품화하고 사랑과 명예에 이르기까지도 상품화시킨다.
마치 ‘미다스’ 왕의 손처럼 만지는 것마다 황금으로 변화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손에 닿는 것마다 금이 되기를 원했던 미다스 왕의 손은 결국 저주의 손으로 변해 버렸다는 것을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옷도 의자도 빵도 정원의 나무도 사랑하는 딸마저도 금으로 변해 버린다.
상품으로 둘러싸인 세상은 마치 황금으로 둘러싸인 미다스의 정원과 같지 않을까.
황금의 정원에 서 있는 미다스 왕은 얼마나 소외의 극치를 보여주는가.
상품이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항상 다른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가 뜻을 바쳐야 할 곳은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대상이어야 한다.
자기 영혼을 바칠 수 있는 대상을 갖지 못한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 아닌가.
석양에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타워브리지.
타워브리지에서 템스강을 내려다보면서, 현대 자본주의가 앞으로 어떤 뜻(志)을 지향해 갈 것인지,
망연할 뿐이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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