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신영복의 `더불어 숲1`에서(2)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3. 23:26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1936년 프랑코의 군사반란으로 시작된 3년간의 스페인 내전, 20세기의 가장 참혹한 비극.
타협을 불허하는 선과 악의 직선적 대결, 이상에 대한 정열, 행동에 대한 도취 등 스페인 특유의 열정과 함께 질풍처럼 달려간 비극.
2,100만명의 인구 중에서 100만명이 전쟁에서 사망, 내전이 끝나고 25만이 투옥, 40만명 외국으로 망명, 또다른 40만명은 테러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
20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모순의 전형.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대가 직접 개입하고, 옛 소련이 공화정부를 지원하여, 국제적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2차 대전의 전초전이었고 대리전이었다.
반란을 승리로 이끌고 36년간의 독재, 프랑코는 그의 죽음 앞에서도
'적을 용서하겠는가?'라고 물으니, '내겐 적이 없다. 모두 사살되었다'고 대답하였다니 그 안하무인이라니.
당시 곤경에 빠진 스페인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하여 의용군 4만여명의 이야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For whom the bell tolls?
울려퍼지는 성가와 기도 속에서 누구를 위햐여 종은 울리는지.......
거대한 성당과 십자가가 투옥된 정치범들의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충격적 사실을 아는지,
건립의 주체자가 가해자이며, 그 노역의 담당자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내전에 죽어간 모든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평화이고 기도일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 물을 필요가 없다 하였습니다.
John Donne 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세상의 어느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는,
한줌의 흙이 파도에 씻겨가면 그만큼 대륙의 상실임을 상기시키며 그러기에 저 조종소리는 단지 죽은 사람을 위한 종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소리임을,
긴 눈으로 본다면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모두가 희생자이며 결국은 우리 세기의 비극일 수 밖에 없다.
구태여 누구를 위한 십자가이며 기도인지 물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누루를 위한 기도인가를 묻지 않은 것이 진정한 용서이고 이러한 용서에 의하여 비로소 역사가 진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존 돈의 기도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이런 차이점은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삶에 대한 긍정적 열의와 인류의 연대 의식을 중시하게 된 헤밍웨이 자신의 가치관 변화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에서 작가는 남녀의 사랑보다 특히 인류애와 게릴라 부대원들과의 끈끈한 동지애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 점은 벌써 제목에서 드러나 있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의 제목을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 1573-1631)의 시 "기도문"에서 따 왔다.
"어느 누구도 하나의 섬은 아니요, 어느 누구도 그 스스로 온전한 것은 아니니라.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어떤 친구의 죽음도 그대 자신의 상실이려니, 그것은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그러기에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애도의 뜻으로 치는 종)은 울리느냐고.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므로."
시인은 우리 각자는 인류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다른 이의 일이 곧 나 자신의 일이 된다며 인류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에스파냐에서 일어난 내전이 곧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소설 속에서 조던은 자발적으로 참전한 것이다.
1936년 프랑코의 군사반란으로 시작된 3년간의 스페인 내전, 20세기의 가장 참혹한 비극.
타협을 불허하는 선과 악의 직선적 대결, 이상에 대한 정열, 행동에 대한 도취 등 스페인 특유의 열정과 함께 질풍처럼 달려간 비극.
2,100만명의 인구 중에서 100만명이 전쟁에서 사망, 내전이 끝나고 25만이 투옥, 40만명 외국으로 망명, 또다른 40만명은 테러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
20세기를 관통하고 있는 모순의 전형.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대가 직접 개입하고, 옛 소련이 공화정부를 지원하여, 국제적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2차 대전의 전초전이었고 대리전이었다.
반란을 승리로 이끌고 36년간의 독재, 프랑코는 그의 죽음 앞에서도
'적을 용서하겠는가?'라고 물으니, '내겐 적이 없다. 모두 사살되었다'고 대답하였다니 그 안하무인이라니.
당시 곤경에 빠진 스페인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하여 의용군 4만여명의 이야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는가?' For whom the bell tolls?
울려퍼지는 성가와 기도 속에서 누구를 위햐여 종은 울리는지.......
거대한 성당과 십자가가 투옥된 정치범들의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충격적 사실을 아는지,
건립의 주체자가 가해자이며, 그 노역의 담당자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내전에 죽어간 모든 희생자들에 대한 진정한 평화이고 기도일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이 누구를 위한 기도인지 물을 필요가 없다 하였습니다.
John Donne 의 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세상의 어느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는,
한줌의 흙이 파도에 씻겨가면 그만큼 대륙의 상실임을 상기시키며 그러기에 저 조종소리는 단지 죽은 사람을 위한 종소리가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종소리임을,
긴 눈으로 본다면 가해자이건 피해자이건 모두가 희생자이며 결국은 우리 세기의 비극일 수 밖에 없다.
구태여 누구를 위한 십자가이며 기도인지 물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누루를 위한 기도인가를 묻지 않은 것이 진정한 용서이고 이러한 용서에 의하여 비로소 역사가 진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존 돈의 기도문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이런 차이점은 허무주의를 극복하고 삶에 대한 긍정적 열의와 인류의 연대 의식을 중시하게 된 헤밍웨이 자신의 가치관 변화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에서 작가는 남녀의 사랑보다 특히 인류애와 게릴라 부대원들과의 끈끈한 동지애를 부각시키고 있는데, 이 점은 벌써 제목에서 드러나 있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의 제목을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 1573-1631)의 시 "기도문"에서 따 왔다.
"어느 누구도 하나의 섬은 아니요, 어느 누구도 그 스스로 온전한 것은 아니니라.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이어라,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구라파는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 어떤 친구의 죽음도 그대 자신의 상실이려니, 그것은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이기에, 그러기에 묻지 말지어다,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애도의 뜻으로 치는 종)은 울리느냐고.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므로."
시인은 우리 각자는 인류라는 이름으로 묶인 공동체의 한 부분이며, 따라서 다른 이의 일이 곧 나 자신의 일이 된다며 인류의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에스파냐에서 일어난 내전이 곧 나의 일이 될 수 있음을 알기에 소설 속에서 조던은 자발적으로 참전한 것이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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