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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울릉도 여행 이야기(3)---내 이름은 `곽 봉 희`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3. 22:16
‘곽봉희 님'
'곽봉희 님‘
‘곽봉희 님 안 계세요?’
묵호항 승선담당 여행사 직원은 ‘곽봉희’를 불러대지만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곽봉희’는 ‘박동희’의 잘못 적혀있는 이름임을 난 알아차렸다.
우리집 ‘그냥’께옵서 여행사에 예약할 때 불러준 이름 ‘박동희’를 여행사 직원이 잘못 들어 잘못 적어놓은 것.
평소 내 이름은 부드럽게 발음되지 못하여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리 들리는 모양이었다.
‘막동이’ ‘막둥이’ ‘박덩이’ 또는 ‘박봉희’는 있었는데,
그러나 이번처럼 성씨까지 갈아치워버린‘곽봉희’는 전혀 처음이고 의외였다.
보통 내가 다른 회사에 전화를 걸고 상대방이 없으면 비서들에게 메모를 남긴다.
메모를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봉희’라고 메모하려 하는데, 난 ‘봉’이 아니고 ‘동’입니다, 하고 부연 설명해도 그 쪽에서는 다시 ‘봉’이라고 메모하려 한다.
그러면 난 다시 ‘봉’이 아니고 ‘동’, ‘동서남북’ 할 때 ‘동’이라니깐요, 하며 다시 확인사살을 해야 한다.
프로야구가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는, 롯데투수 ‘박동희’ 아시지요?, 저는 롯데의 박동희가 아니고, 해태의 ‘박동희’ 라고 하였었다.
우리집 ‘그냥’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하게 정정을 요구하였지만 다음 구간에 가면 또 ‘곽봉희’, 소용이 없었다.
맨 처음의 여행사 직원이 계속 따라다니지 않고, 구간 구간마다 새로운 직원이 나오며, 또 모든 서류의 여행자 호적에는 내 이름은 이미 ‘곽봉희’로 등재돼 있어 끊임없이 ‘곽봉희’로 불리어졌다.
나는 우리집‘그냥’씨와는 달리 재미있어서 즐기고 있었다.
‘봉이 김선달’도 있는데, 이 참에 ‘봉이 선달’로 행세하면 어떨까 해서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 더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잘 된 일인가.
내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해보면,
옛날 서중 1년, 반대항 축구시합이 있었을 적인데, 나는 선수 중 키가 제일 작았다.
연습을 하다가 어느 녀석이 날 부르는데, ‘박동희’하다가 제일 작기도 하고 발음상 비슷하고 편하였던지 ‘막동이’ ‘막둥이’ 하였다.
그 뒤로 모두들 날 부를 땐 ‘막동이’ 또는 ‘막둥이’가 되었고, 지금도 몇몇 동기생들은 ‘막둥이’로 부른다. 그들은 지금도 내가 집에서 막내이며 막둥이로 불리는 줄로 알고 있다.
'박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보고, 그의 맏형 ‘박동희’ 옹과 같다면서 더 친근감을 표시해주었지만, 데모하던 학창시절이나 본말이 전도된 사회 속에서 힘든 것들을 생각할 때는 그 친근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하였었다.
한번은 방콕에 첫 출장을 갔을 때였다.
내 영문 명함을 받자마자 상대방이 야릇한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닌가.
여성동무 신체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재미있게 표현한 뜻이라는 것이었다.
기억하기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인류역사가 만들어지는 모태라는 뜻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이후 나의 태국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었다. 지금도 그들하고는 사업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계집애 이름같다며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막둥이'라 불려서 많이 싫어했던 어린시절에는 왜 그 많은 좋은 이름 놓아두고 하필이면 '동희'라고 지었는지 불만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철이 든, 아마도 40 전후, 나에게는 내 이름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냥 풀어쓰면 '자유와 행복이 있는 동쪽' 아닌가!
여하튼, 자식들 이름 잘 짓고 볼 일이었다.
부르기 쉽고, 상징하는 뜻도 좋으면서 기억하기 쉬운 말로, 각별히 신경써서 지어줄 일이다.
부르는 대로, 불러지는 대로의 뜻으로 그 사람이 만들어진다고 하잖은가.
행복한 노래를 부르는 자, 곧 그의 인생이 행복하게 된다고 하였잖은가.
내 이름은 ‘곽 봉희’,
“나는 ‘곽봉희’로소이다”
울릉도 여행에서 내 새로운 이름은 '곽봉희'가 되었다.
뱀발;
멀미약을 먹은 탓에 우리의 곽봉희님께서는 10시 묵호항발 한겨레호가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할 때까지, 2시간 여를, 그 넓고 넓은 바다의 가슴을 만져보지도 않고서는 ‘코’만 하면서 잠멀미 하였음을 추가합니다.
배멀미 하지 말라고 먹은 약이 수면제와 동격이란 것을 배에서 내리고서야 알았습니다.
내리자 마자 또 새로운 여행사 직원이 ‘곽봉희’님 불렀지만, 다시 따지지 않고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답니다.
여행사 직원을 졸졸졸 따라간 ‘곽봉희’ 부부는 99 식당에 가서 맛있는 울릉도 토속음식을 먹으면서부터 울릉도 여행의 제 1일 째를 시작한답니다.
'곽봉희 님‘
‘곽봉희 님 안 계세요?’
묵호항 승선담당 여행사 직원은 ‘곽봉희’를 불러대지만 대답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곽봉희’는 ‘박동희’의 잘못 적혀있는 이름임을 난 알아차렸다.
우리집 ‘그냥’께옵서 여행사에 예약할 때 불러준 이름 ‘박동희’를 여행사 직원이 잘못 들어 잘못 적어놓은 것.
평소 내 이름은 부드럽게 발음되지 못하여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리 들리는 모양이었다.
‘막동이’ ‘막둥이’ ‘박덩이’ 또는 ‘박봉희’는 있었는데,
그러나 이번처럼 성씨까지 갈아치워버린‘곽봉희’는 전혀 처음이고 의외였다.
보통 내가 다른 회사에 전화를 걸고 상대방이 없으면 비서들에게 메모를 남긴다.
메모를 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봉희’라고 메모하려 하는데, 난 ‘봉’이 아니고 ‘동’입니다, 하고 부연 설명해도 그 쪽에서는 다시 ‘봉’이라고 메모하려 한다.
그러면 난 다시 ‘봉’이 아니고 ‘동’, ‘동서남북’ 할 때 ‘동’이라니깐요, 하며 다시 확인사살을 해야 한다.
프로야구가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는, 롯데투수 ‘박동희’ 아시지요?, 저는 롯데의 박동희가 아니고, 해태의 ‘박동희’ 라고 하였었다.
우리집 ‘그냥’은 몹시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강하게 정정을 요구하였지만 다음 구간에 가면 또 ‘곽봉희’, 소용이 없었다.
맨 처음의 여행사 직원이 계속 따라다니지 않고, 구간 구간마다 새로운 직원이 나오며, 또 모든 서류의 여행자 호적에는 내 이름은 이미 ‘곽봉희’로 등재돼 있어 끊임없이 ‘곽봉희’로 불리어졌다.
나는 우리집‘그냥’씨와는 달리 재미있어서 즐기고 있었다.
‘봉이 김선달’도 있는데, 이 참에 ‘봉이 선달’로 행세하면 어떨까 해서였고, 새로운 이름을 하나 더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잘 된 일인가.
내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를 더 해보면,
옛날 서중 1년, 반대항 축구시합이 있었을 적인데, 나는 선수 중 키가 제일 작았다.
연습을 하다가 어느 녀석이 날 부르는데, ‘박동희’하다가 제일 작기도 하고 발음상 비슷하고 편하였던지 ‘막동이’ ‘막둥이’ 하였다.
그 뒤로 모두들 날 부를 땐 ‘막동이’ 또는 ‘막둥이’가 되었고, 지금도 몇몇 동기생들은 ‘막둥이’로 부른다. 그들은 지금도 내가 집에서 막내이며 막둥이로 불리는 줄로 알고 있다.
'박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 이름을 보고, 그의 맏형 ‘박동희’ 옹과 같다면서 더 친근감을 표시해주었지만, 데모하던 학창시절이나 본말이 전도된 사회 속에서 힘든 것들을 생각할 때는 그 친근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도 하였었다.
한번은 방콕에 첫 출장을 갔을 때였다.
내 영문 명함을 받자마자 상대방이 야릇한 웃음을 짓는 것이 아닌가.
여성동무 신체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재미있게 표현한 뜻이라는 것이었다.
기억하기 좋아서였는지 아니면 인류역사가 만들어지는 모태라는 뜻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이후 나의 태국사업은 날로 번창하였었다. 지금도 그들하고는 사업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계집애 이름같다며 놀림을 당하기도 하고 '막둥이'라 불려서 많이 싫어했던 어린시절에는 왜 그 많은 좋은 이름 놓아두고 하필이면 '동희'라고 지었는지 불만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철이 든, 아마도 40 전후, 나에게는 내 이름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이름이 되어 있었다.
그냥 풀어쓰면 '자유와 행복이 있는 동쪽' 아닌가!
여하튼, 자식들 이름 잘 짓고 볼 일이었다.
부르기 쉽고, 상징하는 뜻도 좋으면서 기억하기 쉬운 말로, 각별히 신경써서 지어줄 일이다.
부르는 대로, 불러지는 대로의 뜻으로 그 사람이 만들어진다고 하잖은가.
행복한 노래를 부르는 자, 곧 그의 인생이 행복하게 된다고 하였잖은가.
내 이름은 ‘곽 봉희’,
“나는 ‘곽봉희’로소이다”
울릉도 여행에서 내 새로운 이름은 '곽봉희'가 되었다.
뱀발;
멀미약을 먹은 탓에 우리의 곽봉희님께서는 10시 묵호항발 한겨레호가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할 때까지, 2시간 여를, 그 넓고 넓은 바다의 가슴을 만져보지도 않고서는 ‘코’만 하면서 잠멀미 하였음을 추가합니다.
배멀미 하지 말라고 먹은 약이 수면제와 동격이란 것을 배에서 내리고서야 알았습니다.
내리자 마자 또 새로운 여행사 직원이 ‘곽봉희’님 불렀지만, 다시 따지지 않고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답니다.
여행사 직원을 졸졸졸 따라간 ‘곽봉희’ 부부는 99 식당에 가서 맛있는 울릉도 토속음식을 먹으면서부터 울릉도 여행의 제 1일 째를 시작한답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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