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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날, 우리집 자명종은 울지 않았다(1)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3. 17:52

----그날, 우리집 자명종은 울지 않았다.

하늘만 우리의 자의반 타의반 울릉도 여행을 시새움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집 자명종은 그날 울지 않았다.

새벽 5시 20분까지 신사역에 가려면 늦어도 4시 30분경에는 일어나 이것저것 챙기고 간단한 아침식사를 해야 하는 것.
아침잠이 많은 우리부부는 우리힘으로 자신이 없어 자명종에게 부탁을 한 것.
아무리 좋은 일도 아침 일찍 시작하는 것이면 우린 항상 ‘노땡큐’
한참 골프에 미쳐있을 때도 새벽골프의 초청은 ‘글쎄올씨다’였는데,
이번 울릉도 여행은 선택의 여지가 애당초 없는 외통수였고,
우리집 자명종님께 신신당부를 하였는데,
울지 않았는지, 못 들었는지,
아니면 하늘이 나의 숨은 뜻을 헤아려주셨는지,
하여튼......우리는 자명종 소리를 듣지 않았다.

‘어, 벌써 5시야, 어서 일어나!’
우리집 ‘그냥’의 다급한 목소리가 잠결에 들려왔다.

나도 반사적으로 급해지고 군대갔다온 실력으로 비상출동,
허겁지겁 짐을 챙기고,
아침식사는 꿈도 못꾸고,
뒤뚱뒤뚱 짐을 끌고 집을 나오니,
비는 가랑가랑 내리고,
택시는 오지 않고,
마음은 졸아들고 있는데
그래도 ‘백기사’, 아니 노란 기사 ‘모범’이 모범적으로 왔다.

나는 속으로 여행사 버스가 기다리지 않고 가버리면 어쩌나,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할 만큼 어린애가 아니었다.
비는 추럭추럭 내리지요, 시간은 지났지요, 그럼 당연히 버스는 떠나고 우린 좋은 변명거리가 생기는 것이고, 자의반 타의반 울릉도 여행은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무기연기 되는 것’이려니, 이 얼마나 기막힌 시나리오인가?

가까스로 신사역에 도착하니 5시 29분,
그런데 기다리고 있어야 할 관광여행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가, 불행인가’
‘벌써 출발했단 말인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고, 벌써 출발했다면 더 좋고..........‘
여행사 버스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조금 있으니 도착하였다.
‘오래, .,,기다리셨어요?’
남의 속도 모르고 여행사 직원은 조금 미안해 하였다.

우리집 자명종이 소리없이, ‘울지 않으며’ 우리의 여행을 방해했어도,
내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흘리고 있었어도,
비가 주럭주럭 내려도,
나의 자의반 타의반 울릉도 여행은 이제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리집 ‘그냥’은 소풍가는 마음으로,
난 괜히 학교 가기가 싫은, 엉거주춤한 마음으로.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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