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푸르고 푸른 5월의 북한산(1)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1. 20:54
2004.5.22. 토.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 뒷쪽, 분수대가 그나마 삭막한 도시의 지하철 주변 분위기를 달래고 있었다.
오후 2시 10분전.
수남은 벌써 와서 자연공부를 시작하고 있었다.
모이기로 한 2시 30분 보다 무려 최소 40여분 먼저 와서 자연공부를 시작하고 있으니, 과히 모범생답지 않은가. 명불허전은 이럴 때도 쓰는 말 아닌가.
신발도 새것, 모자고 새것, 배낭도 새것. 수남이 변신 또 변신하고 있구나. 여자의 변신이 무죄이듯이, 수남의 변신은 더 무죄.
5월, 넷째주의 오후 2시는 알맞게 따가웠다.
시원한 분수의 소리를 들으며,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날라오기로 한 기러기들을 불러보았다.
영희는 안국역, 찬규는 경복궁역, 영신은 연신내역에서 지금 숨가쁘게 날아온다 하였다.
돌부처 정환이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굴러왔나 불렀더니 벌써 다 왔다 하는데, 털보 상숙이 싱긋거리며 털털거리며 나타났다. 창원의 돌부처 정환은 오랜만에 상경하여 산행에 참여한 것도 고마울 뿐인데, 망외의 털보까지 업어오니 부처님의 은덕 아닌가.
동원'원님'도 덩달아 나팔을 불며 행차하셨다.
Copper House(구리집)의 봉고도 벌써 도착, 기러기떼들을 북한산으로 실어나르기 만반준비 끝. 기사아자씨는 턱밑수염으로 내 눈을 더 크게 뜨게 하였다.(나중에 보니 구리제품 작가이며 특퇘지구이 사장님-영신은 커피하우스로 지금도 헷갈려함)
이윽고 영희영신찬규가 합류, 여덟 기러기들은 봉고를 몰고 북한산으로, 5월의 소풍, 자연공부 시작. 오후 2시 40분.
예정에 있었던 암키러기 둘, 정선과 봄순이 빠져, 암외기러기가 된 영희는 주가가 하늘로 솟구쳤으며,여섯 숫키러기들의 눈길은 5월의 푸르른 햇살과 더불어 더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푸른 5월 하고도 토요일 오후,
푸르디 푸른 북한산은 여덟 기러기들을 그 품 속으로 덜썩 안아버렸다.
시원스런 계곡물이 떨어지고 쳐녀맨살같은 바윗덩어리가 나오니, 산행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원님은 털썩 주저앉아 배낭 무게를 줄여야 한다고 설쳐대는 게 아닌가.
어디서 준비했는지, 떡이며 과일이며 쏘주며..........여기서 놀다가 내려가면 안될까 싶었다.
그래도 체면들이 있지, 첫장만 넘기고 자연공부를 다 했다고 할 수야 없잖은가.
북한산 대피소쪽으로 가는 길은 매우 호젓하여 5월의 싱그러움과 푸르름을 만나기는 그만이었는데 상당히 가파른 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몇 기러기들의 숨소리가 여전하지 않기 시작하였다.
이른 새벽부터 서둘러 굴러온 돌부처님은 말씀없이 힘들어 보였고, 술담배와 늦은 시각까지 손님과 함께 해야하는 털보상숙도 웃기만 할 뿐이었고, 어젯밤 과음하였는지 영신논객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
탈맹장하신 영희를 핑계대어 잠깐 스도푸.
눈치를 보아가며 이쯤해서 회군하자고 선동을 해보았지만 돌쇠등산대장 찬규는 들은척만 하고 쪼금만 가면 고지가 저기라고 하였더라.못이긴 척 영희 핑계대고 내려가면 어디가 덧나남? 어찌나 얄미운지 원.
모두들 순진하기는 여전, 그말을 믿고 속없이들 따라가더라. 이윽고 북한산 대피소.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는데, 동장대-대동문-보국문-산성매표소 코스로, 찬규는 헉헉대는 기러기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행 또 강행군.(다음 산행에 정환상숙영신이 빠지면 그것은 순전히 강행군한 찬규책임이닷)
오후 5시경.
동장대는 전망이 뚜렷, 서울 시내와 북한산의 대강이 눈안에 들어왔다.
대동문을 거쳐 보국문 지나, 6시 30분까지 북한산 입구, 산성매표소까지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1시간 30분은 무리였다.
그래도 어서 가자, 달려가자, 날아가자,기럭기럭하면서.
푸르른 5월, 그 토요일 늦은 오후시간, 푸르기만한 북한산은 더 없이 원시의 자연같았다.
이제 어서 빨리 내려가서 천사와 명닥을 만나서 '구리집'의 통돼지구이를 와작와작 뜯어야지. 천방지축 되는소리 쉰소리로 시끌와끌거리면서.(속편 릴레이)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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