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둘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날에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1. 20:48

2004.5.21.금. 둘이 하나가 된다는 날에

오늘은 5월 21일.
날짜의 숫자를 가지고 사람들이 이야기거리를 만들었다.
숫자, 2와 1을 가지고 둘이 하나가 되는 날이라고 새로운 뜻을 만들었다.
애인끼리 만나는 날, 부부가 더 좋은 하루를 보내는 날, 나아가 '부부의 날'로 만들기까지 되었다.

우리도 오늘 5월 21일, 모처럼 들판으로 나갔다.
애초부터 '하나가 되는 날'을 택하여 한 것은 아니었으나 공교롭게도 가는 날이 장날이 되었다.
어찌되었든, 그동안 둘이 하나되지 못하였으므로 오늘만이라도 둘이 하나가 되어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그냥 좋을 것.

온 세상이 초록빛.
두 발에 밟히는 풀밭의 속삭임.
바람결에 살랑거리며 손짓하는 신록의 나무들.

가녀리면서도 힘차게 솟아가는 연한 초록의 나무들, 사랑스럽고 부러웠다.
진한 초록의 나무들은 또 진하게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하얀 공이 어디로 가든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누가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이름하였는가.
초록빛 세상이 된 5월은 분명 여왕보다 더 힘있고 더 아름다웠다.
단풍의 가을도 아름답다 하였지만, 어디 초록빛 세상의 5월을 앞설 수 있다 하리오.

오랜만의 아시아나는 온통 초록빛이 되어 날 어린아이로 만드는 마술을 부렸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의 꽃잔디는 벌써 시들어버렸고 간신히 옛날은 화려했었노라 말하는 듯, 잔해가 그 흔적을 보여주고 있더라.
마치 퇴기의 화장처럼 서글프게 앉아 있더니,
차마 보여주기 싫어 죽겠다는 듯, 멀찌감치 숨어서 얼굴을 파묻고 있었더라.

내년에는 꼭 잊지 않고 5월초에 와야지.
꽃잔디가 꼿꼿하게 자랑하며 반길 때 찾아가야 할 것이다.
주인이 맞이하고자 할 때 찾아와야 좋은 손님이지 주인이 피하고 싶을 때 불쑥 찾아오면 그것도 실례일 것이니.

꽃잔디가 연못에 물드는 그 장관을 누가 알겠는가.
사랑에 빠진 꽃잔디가 연못 속에 빠졌다면 누가 아니라 하리.
아니다, 꽃잔디가 연못을 사랑하여 연못의 품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해야 할까?
연못이 꽃잔디를 몹시 사랑하여 연못 속으로 빨아들인 것일 것이야.

오늘은 5월 21일.
꽃잔디와 연못이 하나가 되지는 않았지만, 난 풀과 나무와 하나가 되어 초록빛 세상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더라.
초록빛 세상이 나를 끌어안고 꼼짝못하게 하였더라.

아, 시절이여
아, 5월이여.

아, 세월이여
아, 젊음이여.

아, 사랑이여.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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