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더 느리게 다시 시작하자-----오늘아침 `깜짝` 뉴스를 들으면서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9. 15:54
2003.8.4.월.

찌는 듯한 더위, 어제밤부터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비가 온 뒤끝이라 한결 시원할 줄 알았는데 더 더우니
자연흐름의 저 깊은 속을 어찌 인간이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아침 7시경
신문을 보면서 아침식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현대 정몽헌 회장의 투신자살 보도가 긴급한 뉴스로 짤막하게 들어왔다.

아나운서의 짤막하고 급한 목소리가 예사롭지 않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자세한 소식은 들어오는대로 알려주겠다며
다시 메인뉴스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였고,
첫 마디는 '정몽헌이가 투신했대'
잠시 우리집 아침 부엌은 침묵하였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부와 지위란 무엇인가
사회적 명예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란 어디인가


아침식탁 앞에서 신문을 뒤적이면서
식탁 위에 갑작스런 침묵이 흐르는 동안
나의 머릿속에서는 꼬리표를 달고
들이닥치는 질문들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끼니만은 거르지 않는다.
아무나 갖지 못하는 좋은 습관.
특히 아침식사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오늘 아침도,
갑작스런 소식에 잠시 멈칫했지만, 공기밥 하나를 말끔히 비웠다.
'더 느리게' 식사를 하면서..... 요즈음 나의 화두 아닌가.
나의 밥에 대한 애착, 밥탐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사무실에 오는 동안 내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것은
정회장이 왜 죽었을까 보다는,,,,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과 죽음의 경계는 있는가, 있다면 어디인가'

였다.

인생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어제 비오는 날의 산행은
지난 6월의 그 날처럼 어느 특별함을 만나지 못하였다.

혼자하는 산행과 친구들과 하는 산행이 같을 수 없는 것.
아무래도 주변사물을 읽어내는 감각이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집중력이 산만해질 수 밖에.

대신, 친구들과의 잡담산행은
뭉쳐있던 신경줄을 여지저기 만지작거리며 풀어내는 영험함이 있다.

아무런 부담없이 치고받는 자유로움,
뒷끝을 남겨두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내가 미쳐 못보았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감상법을 알게되는 즐거움.

이들은 혼자 오르내리며 맛보는 산행의 즐거움을 너끈히 견주고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전날 새벽까지 술과의 우정을 나누었다는 오래된 나의 친구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매봉까지 왕복 2시간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다고 그는 큰소리쳤고,
점심을 하기가 어중간하다고 걱정하는 나를 무참히 무찔렀었다.

11시 11분에 시작하였으니,
3시간이면 오후 2시가 넘고,
2시간이면 오후 1시경이니
밥을 탐하는 나에게는 점심시간이 우선 걱정되었던 것.

나 혼자서야 어디서 언제 점심을 먹은들 나의 자유.
오늘처럼 동행이 있으면 미리 예정해보는 것이 나의 상궤.
그는 그런 나에게 큰소리로 나를 면박해버린 터였다.


점심 이야기로 도입부가 길어졌는데,
실은 다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것.


내가 애용하는 첫좌회전길이 아닌,
두 번째 좌회전길을 그가 소개하였고,
그 길 또한 호젓하여 좋았다.

첫길보다 조금 더 가파른 것이 흠이면 흠,
좋다면 더 좋다고 할 수 있으리.


30여분 지났을까.
그는 알아보기 쉽게 쳐지고 있었다.
숨소리가 헉헉 이미 거칠어져 있었다.

지가 무슨 통뼈라고,
새벽까지 술과 놀고서,
2시간에 매봉을 다녀와?

산이 어디 100미터 달리기 시합인줄 아느냐,
나하고 내기를 하자,
나는 곧 죽어도 '더 느리게' 나의 페이스를 지킬 거다.

네가 단거리 선수면 나는 장거리
그것도 마라톤하는 속도로 매봉을 간다

산을 오르기 시작할 때부터
우리는 기를 세우고 날을 세우며 다퉜었다.


동행한 다른 친구를 꼬득였다.
우리 위화도 회군을 해야겠다.
그가 매봉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알기 때문에
그의 자존심을 건들이지 않고 도중 하산하는 것.
일방적으로 회군을 하고 그에게 사후 통보 하는 것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따라올 것이다는 것.

아니나다를까,
따라오면서 그는 중얼중얼 온갖 부당함을 뱉어냈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은 의사표시였다.

회군의 불가피함을 여기저기서 끌어내어
결단을 해야하는 다른 친구에게 풀어냈다.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수명이 선진국 수준보다 5년여 짧다.
우리의 여자평균수명보다도 무려 7년여 빨리 간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정답; 바로 대한민국 남자들은 제 자신의 힘을 알면서도 그 놈의 체면 때문에 무리를 하기 때문임.

밤일을 할 때,
애국가를 4절까지 불러야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체면이 선다, 우라질.

남의 집이 무엇을 하면 얼마 후 꼭 '미투',
필요한 돈은 누가 만드나,
도덕적 불감 그리고 심리적 불안누적,

사나이는 통이 커야 큰 소리쳐대나 그러나 속은 탄다.
죄책감에 불안감에 소위 왕'스트레스'

술을 먹을 때는 끝까지 폭탄주,
제 가슴속 폭탄을 하나하나 쌓아야 사나이,
신이 우리를 각각 다르게,
유식하게 '케파시티'가 다르게 만들어 주셨다고 어디에 말할 수 있나, 그건 왕촌넘 '왕따'

골치 아픈 모든 것,
모두 함께, 한꺼번에 잊어버리자,
폭탄을 때려도, 어디 세상이 한잔술에 말끔히 과거가 지워지는가.
'스트레스'는 왕창 속으로 쌓이고
'나의 자연수명'은 좀먹듯 까먹힌다.

대한민국의 남성들은
특이하게도 남과 다르면 크게 잘못되는 걸로 착각하고,
개성을 무시하고, 남들이 하는대로 쏠려서 달려들 갔었다.

자신의 천부적 용량을 넘으면,
자연적 탈이 나는 것은 너무나 '자연'
그래서, 대한민국 남성들의 평균수명은 더 짧을 수밖에,
이것도 너무나 자연스런 '자연현상'


어제 나와 함께 산에 갔던 친구는 오늘 어떻게 보냈을까.
매봉을 끝까지 가지 않은 것을 자존심 구겼다고 할 것인가

그래도 친구 덕분에
중간 회군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새롭게 정신차렸을까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우리 나이가 이팔 청춘은 아니며
오십이 넘어가 한번쯤 무리를 해도 괜찮을 사십 중반도 아니라는 걸
그 친구가 알았으면 싶다.

무리하게 매봉을 고집하여 꼭 가야할 '필연'이 없다면
어디서 쉬었다간들,
중간에서 돌아온들 크게 탓할 것 없지 않을까.

오히려 잘 했다고 칭찬하기로 해야 하지 않은가.
'더 천천히, 더 느리게' 가는 사람에게
특별상을 주어 칭찬하고 장려하자.

자연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해오던대로 빨리 하지 않는다고,
똑같이 같은 것을 왜 하지 않느냐고 욱박지르며
'왕따' 시키는 분위기를 보내지 말자.

개성이 있다고,
용기가 대단하다고 평가해주고
더 현명한 삶을 즐긴다고 부러워 해주자.



고 정몽헌 회장의 명복을 빈다.

같은 시대에 태어나 같은 세상을 숨쉬며,
같은 고민을 해왔을
어쩜,
우리의 가까운 친구중의 하나가 아닐까.

태어난 자리가 우리하고 많이 달랐을 뿐,
같은 시대, 같은 제도 속에서, 똑같은 잣대로
한 시대를 살아갔음은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살아있고,
그는 그 잣대를 이기지 못하고
우리가 함께 놀던 놀이터에서 먼저 뛰어내렸다.

통일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정상회담과 얼마나 관계되는지
나는 지금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비슷한 동년배로서 평균수명보다 훨씬 이른 나이로,
자연을 떠나버린 그에게서 우리가 배워야할 게 없느냐는 것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돈이란 무엇인가
지위와 명예가 뭐란 말인가
죽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삶과 죽음은 어떻게 다른가
삶과 죽음의 경계는 있는가 어디인가


자칫 철학적 물음을 되뇌이면서,
물론 쉽사리 현실적 대답이 없을 걸 알면서도
질문은 오늘 내내 내 머릿속을 맴돈다.

맴도는 동안
나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현재를 가다듬으면서,
앞으로의 삶을,
'나만의 삶'을 정말 올바르게 자리매김해야 하는 시작점이
오늘이어야 하지 않을까.

못해도 평균수명은 살아야지,
자연이 준, 천부적 '삶의 길이'는 정량대로 소화하고 가야지.

애국가를 꼭 4절까지 부르지 말 것.
자연을 본채 만채 외면하지 말고,
얼렁뚱땅 타협하지 말것.
숨이 차면 쉬기도 하고 되돌아와도 부끄러워 말 것.
폭탄주가 싫으면 '싫다'고 말 할 것.

자연이 시키는 대로 자연과 함께 숨쉬며,
태어난 대로, 생긴 대로 살아가자.
만나기 싫으면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 할 것.
반대로, 꼭 보고 싶으면 꼭 보고 싶다고 말 할 것.

68 게시판에 꼭 글을 올려야 하는가.
꼭 '무엇'을 이야기 할 게 없으면 그냥 '눈팅' 하면 되잖은가.

그리고,
웃기면 낄낄대고 아니면 '덤'으로 치고,
남으면 '덤'으로 가져가면 될 것이다.

'덤을 내놓고 덤이 생기면 받고'
'비우다가 채우기도 하고, 채우다가 반드시 비우고'

'더 느리게 또 더 느리게' 다시 시작했으면,

고 정몽헌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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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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