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군대에서,1970-1977

선착순 사역병, 눈오는 날의 반란?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0. 11. 13:12

-선착순 사역병, 눈오는 날의 반란?

 

내가 군대생활했던 포병195대대는 보병5사단 소속으로 양평에 주둔하고 있었다.

양평은 위도상으로는 서울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은 편이지만 추위가 몹시 사나웠다. 지세가 높은 산들로 둘어싸여있는 분지형이기도 하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곳이어서 춥기도 할뿐더러 눈이 많이 내렸다.

겨울철이면 사역병을 모아서 연병장이나 부대주변도로의 눈제거사역이 큰일중의 하나였다.

내가 논산훈련을 끝내고 부대전입한 시점이 12월. 연병장에는 눈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전입하자마자 사역병에 차출되어 하는 일이 눈제거작업이 많았다.

(본부중대의 사역병 차출은 참모부 행정반에서 1명씩 차출하였는데 전입신병인 나는 가짜서울대생이 그냥 싫어서 인사과 행정반에 내려가지않고 스스로 사역병을 지원하였다. 각 참모부 행정반에서 차출된 사역병은 제설작업,부대내청소.도로보수등 막노동일이었고 가끔 모내기등 부대밖 민간지원을 나가는 일도 있었다. 같은 사역이지만 부대밖 사역은 그래도 나쁘지않았다.)

자유분방한 대학생활을 하고온 나에게는 눈사역은 고역이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여기는 군대이니 눈사역을 열심히 해야할 뿐이었다. 나는 눈을 당카(눈을 퍼담아 옮기는 인력거가마같은 들것. 두사람이 당카 하나를 들었다)에 열심히 퍼담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갑자기 주번하사가 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반사적으로 그 주번하사에게 대들었다. 나는 나의 신분을 잊고 내가 군인이며 그것도 부대에 막 전입온 신병임을 순간적으로 잊고 그 주번하사에게 욕설푸념을 하며 부당한 처우에 분개하였다.

이 갑작스런 신병의 반란에 모두들 작업을 멈추고 놀라고 있었다. 그 주변하사는 전입신병에게 의외의 일격을 받고 망연자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고 멍한 채로 있었다.

나는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럿는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물은 엎지러졌고 어찌 수습해야할지 난감하였다.

운좋게도 내무반 고참병장이 사역인솔을 나왔는데 그 주번하사에게 이제 갓 전입온 신병이 잘모르고 저지fms 실수이니 상관인 주번하사가 이해해주길 부탁하였고 어찌된 노릇인지 그 주번하사는 아무런 경고없이 없었던 일로 처리해주었다.

상하질서가 유별한 군대에서 더군다나 전입신병이 대들었는데도 주번하사가 그냥 넘어갔다니 이 무슨 조화일까?

(지금 생각해봐도 그날의 내 행동은 군대내에서 용납되지않는 위험한 반항이었다. 그 주번하사가 무슨 생각으로 나의 반항을 없던 일로 처리해주었는지 정말 의외의 결과였다. 가끔 느끼는 것이지만 내게 뭐 야릇한 기운이 있는 것일까? 군대의 고참병들이나 회사의 상급자들이 유독 나에게는 심하게 하지않고 슬슬 피해버릴때가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