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하사 차출, 평발과 군의관...군대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단기하사 차출, 평발과 군의관...군대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기본훈련이 거의 끝날 즈음 이제 논산훈련소와도 작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기본훈련이 끝나면 대부분 전방사단에 배치되어 배출되었고 일부 2차후반기 교육을 받을 특과병차출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우리연대에서는 학력과 체력이 좋은 훈련병중에서 단기하사차출 지시가 내려왔고 나도 그중에 해당되었다.
특과병교육이야 전문병과이니 후반기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그다지 기피대상은 아니었지만 단기하사교육은 그렇지않았다. 훈련기산도 3개월인가? 짧지않은데다 훈련강도 또한 만만치않아서 훈련병들은 굳이 단기하사가 되고자하지않았다.
그런데 이미 차출명령이 떨어지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군대의 상부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지 않은가?
최종 신체검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다.
체력이 남보다 월등한 나는 체력검사에 불합격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생각지않은 곳에서 나왓다. 일반신체검사하던 중 나의 평발이 지적받았다. 전혀 예상못한 사건이었다.
군의관; 평발인데??? 병적기록부를 보더니, 병적기록부에도 평발으로 돼있고, 어, 73년 보충역편입으로 돼있는데 왜 군대 왔지? 데모했나?
나;데모를 직접한 것은 아니고, 이념써클에서 중심적 활동하였는데 학적변동으로 미리 선제관리한 것 같아요..평발이면 단기하사교육 받지 못하나요?
(평발인 사람은 발바닥에 일찍 부담을 갖게돼서 조금만 걸어도 곧 피로감을 느낀다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걷는다. 평발에 대한 일반상식의 오류?)
군의관; 훈련 못받는 것은 아닌데....
나;......
군의관;단기하사교육 받고싶어?
나;.....
군의관;뭐 신체검사 불합격 처리해주지...
나;......
지금도 의아한 것이 그 군의관은 왜 나를 신체검사불합격처리 했을까?
나의 신상명세서를 봤을까? 일고.서울대 선배였을까?
아니면 그냥 내가 너무 인간적으로 착해 보여서????
모를일 모를 일이었다.
나의 운명?
그때 군의관의 지적한 것처럼 이미 나는 73년 보충역편입병력자원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군대에 오게 되었을까?
(남들은 군대에 가지않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써가면서 군대면제를 받으려고 하는데 나는 이미 평발로 보충역편입이 되어있는데도 군대를 왔으니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르고 잇었다.
누구처럼 법을 어기면서까지, 편법을 써서라도 군대를 가지않으려한 것이 아니라, 제도가 허락하는 한 굳이 가지않아도 될 군대를 갔으니, 순진해도 정말 순진한 것.
내가 만일 보충역으로 편입되어 방위로 군대의무를 끝냈다면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미 나의 운명은 보충역이 아닌 현역으로 군대3년을 가게 돼 있었고, 단기하사가 아닌 일반사병으로 군대생활 하게 되어있었단 말인가?)
이미 나의 길은 단기하사가 될 운명이 아니었단 말일까?
훈련병 신분을 끝내고 자대배치되어 군대생활을 하면서 단기하사교육을 받지않은 것을 참 잘했다싶었지만...훈련소에서 신체검사불합격처리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수수께기.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나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않은 그 군의관의 결심? 아니면 보이지않는 손의 조화?
내가 만일 단기하사교육을 받고 전방부대에 배치되어 단기하사로 군대생활을 하였다면 나의 앞날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단기하사로 부대배치되어 그 부대의 고참병들과의 갈등을 내 성격상 무난히 해결해나갓을까? 자존심 강한 내가 그들을 제압하려하고 그들과 갈등을 부렸다면 잘 헤쳐나갔을까?
모를 일. 누구도 알 수 없는 일.
나는 그렇게 단기하사차출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되고 바로 3군사령부 103보충대로 배출되었다.
논산훈련소 연병장에는 전방후방으로 배치될 아니 팔려갈 신병들이 우글우글 모여있었다.
각자의 이름이 호명되기 전까지는 모두들 후방으로 배치되었으면, 또 권력부대로 차출되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대부분 희망과는 관계없이 전방부대로 배치되었다.
나와 같이 입대했던 광주의 김제0은 31사단으로 배치되었으니 아마도 부잣집아들이라 광주집에서 힘을 좀썼구나 짐작만 했다. 또 일부는 육군본부나 카튜사, 정보사니 무슨부대니 하며 힘좋은부대에 배치되었는데 소문으로는 어느 특정사병의 청탁을 호도하기 위하여 그 주변의 군번들이 삽으로 떠지듯 함께 배치된다는 것.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라 하지않던가?
나는 아무것도 모른체 신병 2등병신분으로 논산훈련소를 떠났다. 훈련을 갓마친 신병들을 가득 채워 용산역에 도착한 야간군용열차를 지금도 기억한다. 어디로 팔려가 3년의 청춘을 보내야 할지, 3년후 별 사고없이 말 그대로 사고없이 제대할 때까지 견뎌야할 세월이 적막강산처럼 흐르고 있었다.
얼마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공중전화로 안부를 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가족 누구에게 나의 불편한 처지를 전하고 싶지 않았을까 대신 서울에 있는 식품공학과 동기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깐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을까해서였는데 그 친구의 대답은 무미건조했다.
내가 무미건조하니 그 친구도 무미건조했을 것 아닐까? 서울대출신 모범생에게서 인간미를 찾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
그때 나는 왜 그 친구에게 전화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