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사단 대학생아카데미 여름수련회, 공주교대여학생
//흥사단 대학생아카데미 여름수련회, 공주교대여학생
1971년 여름방학, 충북 옥천.
반정부 데모가 서울대학가에 번지고 있었다.
흥사단본부에서는 흥사단대학생아카데미의 임원학생들을 충북 옥천의 어느 초등학교 분교에 모아놓고 간부수련회를 마련하였다.
전국의 흥사단아카데미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모였다.
나는 서울대농대기러기회의 차기회장자격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농대기러기 1년 선배인 여학생 김순0과 남학생 임국0과 셋이서 참가하였다.
초청강사의 강의도 듣고 분반활동을 하면서 시국을 논하고 대학생활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열띤 토론도 하였다.
나와 함께 분반활동을 한 학생들중에는 나중에 민청학련사건에 연루되어 옥살이를 하고나서 장관까지 한 사람도 있고, 지방대학의 학장을 한 사람도 있고...모두들 졸업후 각분야에서 중요한 일들을 했다.
분반팀원중 공주교대의 1년생이 있었다. 조은0.
어찌나 곱고 순수한지 모두들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니면 무슨 텔레파시인지 그녀와 나는 대학신문주고받기를 하면서 서로 팬팔이 되었다.
그녀는 나를 끊임없이 ‘선생님’이라 불렀다. 왜 그리 불렀을까? 불과 1년차이의 선후배인데...
지금 기억나는 것 또하나는, 그녀의 글씨체는 완전모범형. 어찌나 꼬박꼬박 잘 눌러쓰는지 교과서에 나오는 모범글씨. 글내용도 차선을 한틈도 벗어나지않으며 달리는 자동차처럼 줄곧 흐트럼없이 수미일관. 어쩌면 매우 지루하고 질릴 일이엇지만 어찌된 노릇인지 나에겐ㄴ 매우 신선하고 친근하게 들어왔다.
그해 겨울방학때, 수원에서 나는 과외를 하느라 시골에 내려가지않고 있었는데, 불쑥 그녀를 만나보고싶었다.
마침 ‘녹원사’사감준비를 하고있던 1년선배여학생 김순0의 도움을 받아 함께 그녀의 고향인 조치원까지 내려갔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그때 그녀는 고향집에 없었다. 어디에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나는 아무런 소득없이 수원에 돌아왔다.
그때 그여학생이 집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와는 더 가까운 관계가 이루어졌을까?
그후 나는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가고...어찌어찌했는지 그녀와의 더 이상 팬팔은 없었다.
여름날 하룻밤의 팬팔일까?
사람의 운명은 누구와 만났느냐? 어느 사건과 맞이했느냐? 무슨 책과 만났느냐? 등에서 갈라지고 변한다는 데, 나와 그녀의 만남은 거기까지가 모두였다.
나의 운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