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시간 견학하기
유도시간 견학하기;
시골촌놈에게 유도시간은 설레임반 괴로움반.
유도메트에서 도복을 입고 낙법을 배우는 것은 신기로웠고 흥미만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또 문제가 있었다. 자신의 유도복을 마련해야하는데 나는 그럴 엄두를 내지못하였다. 어머니에게 도복값을 달라고 하면 혹 사주셨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못하였다. 그냥 혼자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었지 유도복을 준비하지못하게 되었다.
유도선생님은 도복이 없는 학생은 운동을 하지못하고 옆에서 견학을 하게하였다.
친구들이 낙법을 배우고 서로 대련하는 것을 보기만하면서 유도시간을 보내야하는 어린 내마음은 또 타들어갔다.
도복이 준비되지않은 광주출신들은 유도시간이 다른 옆반 친구들에게서 도복을 빌려서 유도를 배웠지만, 옆반 친구가 없는 보성촌놈인 나는 유도시간만 되면 견학 하는 것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옆반 친구들에게 도복을 빌려달라 부탁이라도 해보지 싶지만 어찌 생판 모르는 아이들에게 도복을 빌려달라 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내들성이 없고 부끄러움까지 타는 나의 성격으로는 엄두 내지못할 일이었다.
유도를 배우고싶었지만 나의 유도시간은 견학으로 채워지고 말았다.
어린 나에게 보이지않는 상처가 하나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성중을 다녔다면 이런 상처는 생기지않았을 것. 비록 유도를 배울 기회는 없었겠지만 마음의 상처는 생기지 않았을 것인데 얄궂다 할 것인가 차라리 유도를 모른는 게 더 낫지싶기도 하였다.
유도는 서중3년과 일고3년동안 정규 수업시간으로 짜여져있었는데 내가 서중1년이후 도보글 마련해서 견학하지않고 유도를 배웠는지 아니면 중2때부터는 옆반에 아는 친구들이 생겨서 도복을 빌려입고 유도수업을 했는지는 지금 기억에 없다. 유도성적이 ‘우’급에 해당하는 것을 보면 재미있게 배웠고 성적또한 나쁘지않았다는 것을 알수있지만, 중1때 처음 유도를 배울 때 견학을 해야했던 아픈 추억을 돌이켜보게 된다.
미술시간도 똑같은 괴로움이 따라다녔다.
물감을 준비해야하는데 물감 살 돈이 없어서 나는 언제나 멍하니 옆친구들이 그림그리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유도복 빌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옆반 친구들에게 잠깐 빌리면 미술시간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으련만 그리 하지못한 나의 됨됨이는 말로 뭐라 표현하겠는가? 그냥 어찌할 수 없고 왜 그리되었는지 어찌 이러한 환경에 들어왔고 어찌 이를 해결해야할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렇게 중1이 지나가고 있어T다.
이런 환경에도 학업성적이 우등생급이 되고 정서적으로 비뚤어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고 얼마나 대견스러운 것인가?
어린 마음에 그래도 주눅들지않고 꿋꿋이 버텨냈으니 지금 생각하면 대단하기도 하였다.
사실 그때 나는 되는대로 그저 당연히 그러나부다 하면서 아무 생각없이 그 현실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그냥 지나왔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