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은 나의 제2고향. 30년만의 추억여행
2018.8.17.토. 귀향,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방콕. 나의 제2고향.
집사람은 30년만의 재회. 1989년에 귀국하여 지금 다시 가보는 것이니 딱 30년.
정말 한 세대가 지났으니 얼마나 변했을까. 나는 해태상사에서 동양글러벌로 자리를 옮긴 후 한 번, 그리고 내 회사 ‘대평원농상 주식회사’를 창업한 이후, 수단.에티오피아 참깨사업이 잘되어, 현지물품검사후 귀국길은 꼭 방콕을 들려서 다녔으므로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대여섯번째?
우리가 치앙마이을 떠나가는 것이 하늘도 슬퍼하는 것일까? 어젯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치앙마이공항까지 내내 비가 내린다.
마두천사부부도 유사장도 하늘이 떠나는 우리를 못내 아쉬워한다 하였다.
치앙마이에서 방콕은 1시간여.
콘도에서 아침일찍 택시를 불러 7시 45분 출발, 토요일이라 시내중심가 지나기가 차가 좀 막혀 50여분만에 공항에 도착.
비행기는 예정시간 10시 5분에 출발, 12시 30분경 방콕에 도착하였다.
수반나푸미폰공항은 매우 분주하였다. 엄청 커져있는 듯 옛날의 그 공항이 아니었다.
짐수레를 끌고 택시를 잡으려는데 내앞으로 사람들이 푹푸 빠져나간다.
다시 살펴보니 무언가 표를 가지고서 택시를 하나하나 타고 떠난다.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순서표를 기계에서 뽑아 나오는 번호가 뜨는 곳으로 가서 택시를 기다렸다가 타면 되는 것.
이윽고 택시 하나가 내번호 47번석으로 들어오고 우리는 Pullman hotel, 아속 스쿰빗21로 달렸다. 시내까지 하이웨이가 직통으로 깔려 싱싱 잘 달렷다.
아속가까이 와서는 교통체증이 좀 있었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아니하였다.
공항에서 호텔까지 1시간여. 요금은 택시미터로 249밧. 톨게이트비 25밧+공항이용료50밧=325밧+팁20밧.=350밧=1만여원 정도. 방콕이 왜 외국인들에게 많은 인기를 끄는지 알 수 있었다.
1003호. 로블카드의 쿠폰을 활용하여 10여만을 추가로 지급하며 2박. 아침식사가 포함된 것이니 착하고 착한 가격.(로블카드는 년회비 30만원=치앙마이 티켓 1회 1인 +1=75만원?+엑스트라 쿠폰=20만원 한도.
풀만호텔 2박비용은 약30만원인데 20만원은 로불쿠폰으로 대체하고 추가로 10여만원만 부담한 것.
로블카드를 활용하면서, 우리집사람의 30년만의 방콕재회할 수 있어서 의미있는 추억여행이 되었다.
풀만호텔의 서비스와 호탤시설은 집사람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었다. 둘째아들의 마음씀에 매우 좋아좋아하였다.
점심식사는 가까운 로빈슨백화점의 지하식당에서 좋아하는 태국음식으로 하였다. 우리들에게 태국전통음식은 한식보다 더 좋아하였다.
점심식사후, 로빈손백화점 건너편의 코리아타운상가에 갔다. 내가 방콕지사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던 때, 1989년에는 없었던 곳. 방콕 번화가가 얼마나 변했는지 볼 겸 코리아타운에 가보았다. 여기저기 한국사람들의 얼굴이 많이 보였다.
내가 지사근무때 악어백등 태국토속선물가게를 크게 하였던 ‘리스토아’도 거기에 옮겨와잇었다. 독일광부일을 끝내고 귀국길에 방콕에 들렸다가 주저앉게 되었고 그때 시작한 선물가게사업이 번창하여 큰 성공을 거둔 가게였다. 마침 이종형사장이 반가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옛날 이야기하면서 시간 가는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 더 이상 이야기를 더 못하고 우리는 우리가 방콕에서 맨처음 숙소인 선사인코트, 스쿰빗소이 38,를 지상철로 가기로 하였다.
서울지하철 초창기때처럼, 한쪽은 자동판매 다른쪽은 직원이 표를 팔았다.
아속역에서 소이38 통로역까지 46밧. 1인당 23밧.=700원정도/인당.
통로역에서 선샤인코트까지는 오토바이을 타고갔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걸어가기는 부담되는 거리. 이 경우 소이골목길 교통수단은 오토바이. 2-3분 걸려 우리는 선사인코트에 도착했다. 오토바이비용은 1인당 10밧=400원? 지하철값에 비하여 비싼 편이지만 우리같은 외국인에게는 윈윈.
외장을 새로이 페인트칠을 했는지 외형상으로는 전혀 낡아보이지않았다. 30년이 지났는데도 옛날의 모습이 그런대로 보였다. 수영장이 커보였는데 오늘은 그다지 커보이지않앗다. 둘째형보가 빠져 큰일을 당할뻔 하였던 그곳. 우리가 살았던 2층 4배드룸은 여전하였다.
세월이 벌써 30년 흘렀고 나의 나이는 70이 다되었지만 땀만큼은 변하지않고 계속 흘러내리고 있었다.
자칭 선샤인마담은 잠을 자고있다면서 잠깐 얼굴만 보고 안부인사를 하고자하였으나 불발.
임대료를 깎아주겠다면서 회사와 가까운 시암코트로 이사가는 것을 극구 만류하였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그녀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선사인코트에서 다시 오토바이로 통로역으로. 나나역에서 이제는 스쿰빗소이4에 있는 시암코트로 가자.
소이4에서 내려, 역이름은 ? 나나역, 시암코트까지 천천히 걸어가기로 하였다. 소이입구가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거의 환락가 수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소이4 막다른 곳에는 태국담배공장이 있는데 왜 입구에 환락거리가 형성되어 있단 말인가?
시암코트는 작은 시암코트 2개가 더 생겨 모두 셋이 되어있었다.
나는 왜 이곳에 이사왔을까? 주변환경이 결코 쾌적하지않은 데, 단지 회사가 가깝다는 이유로 나는 이곳에 왔다니 지금 생각해보니 이해가 되지않았다.
임대료가 저렴하였을까? 그때는 본사에서 일정금액을 주택수당으로 지급하므로 착한 아파트에서 살면 그만큼 차액을 생활비로 전용할 수 있었다. 한푼이라도 아껴야했던 그때의 나로서는 그럴만도 하였다. 아, 세월이여, 아 돈이란 무엇인가?
다시 걸어서 소이4입구까지 갔다가 지상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갈까 하였는데, 갑자기 소나기, 열대소나기스콜이 내리기시작하였다.
뚝뚝이나 택시를 흥정하였는데 모두 비싸게 가격을 불러댔다. 뚝뚝이는 150밧, 택시는 250밧.
나는 흥정의 마술사. 옛날 상사근무시절 때, 나의 가격담판은 언제나 나의 승리였다. 무슨 특별한 기술이나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서 제안을 하면 상대방은 곧잘 따라오곤 하였다.
오늘도...한 뚝뚝이를 100밧에 흥정하여 호텔까지 왔다.
빗속에서 뚝뚝이를 타고 방콕시내를 달리는 맛. 뚝뚝이운전사는 잘 움직였다. 100밧+팁20밧.
저녁식사하러 나가자고 집사람은 아우성이다.
30년만의 재회. 방콕은 첫사랑처럼, 헤어진 연인처럼 살갑게 우리를 반겨주었다.
저녁식사하고 돌아와서....
아들이 추천한 터미널21에 가서 먹고싶은 태국음식을 먹었다. 아무리 다른나라 음식이 좋다해도 그래도 눈길이 가고 마음편하게 먹을 있는 것은 태국음식. 나는 어쩔 수 없는 칸츄리에서 태어난 칸츄리자식.
마님은 카오똠을, 나는 란나칼레+볶음밥, 뭔가 부족한듯하여 찹쌀코코낫밀크에 듀리앙/망고를 후식으로 냠냠.
태국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높은 건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터미널21도 그중의 하나. 입정해있는 업체들이 모두 어디에서 왔는가? 꽤 자본이 필요할터인데 태국만의 자본은 아닐 것이고, 전세계의 투자꾼들이 모여들었을 것.
자본주의는 국경을 어디나 넘나들고 돈을 버는데는 민족이 따로 구별없다는 것.
방콕의 돈은 누구의 것인가?
큰누나의 전화를 받지못했다. 작은형이 의식불명상태라는 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안타깝기만하다. 누구나 아는 대장암말기라니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다른 길이 없다.
어찌되었든 서둘러 귀국해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배웅해야겠다.
얼마나 걸어다녔는지 다리걸음이 힘들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다리피로를 모르는데 오늘은 내다리가 좀 피곤하다고 하신다.
내일은 일찍 전일 시티티어를 가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서 뷔페아침식사를 해야한다.
어서 씻고 자자. 2018.8.17.토.방콕 스쿰빗아속 풀만호탤 1003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