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2)(독서노트)

티베트에서의 7년/Heinrich Harrer

햄릿.데미안.조르바 2014. 10. 17. 17:02

티베트에서의 7년/Heinrich Harrer 하인리히 하러

 

사람이 죽은 집에서는 장식한 소나무를 치우고, 다음 날 직업적인 장례사들이 와서 시체를 흰 헝겊에 싸서 장지로 가져갔다...장례사 세사람만이 가고, 가족은 가지않았다...장지는 마을에서 멀지않은 곳에...그 곳은 높았으며 그 위에 독수리와 까마귀 떼가 날고 있었다.

(장례사 한 사람은 도끼로 시체를 난도질 하고..또 한사람은 경을 외웠다..세번쩨 사람은 새들을 쫓으면서, 가끔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돋워주기위해서 술리나 차를 권했다..죽은 소녀의 뼈가 잘게 부수어졌다..새들로 하여금 시체를 완전히 먹게 하여, 시체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 풍습은 아주 야만스러웠지만, 그 기원은 깊은 종교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다...티베트사람들은 죽은 뒤 육체의 흔적을 남기려하지 않는다..왜냐하면, 영혼이 없는 육체는 아무 의미가 없기때문이이다..

귀족과 높은 라마승의 시체는 화장을 하지만..일반인의 시체만은 강물에 던진다..절단하려면 상당한 돈이 들기때문이다...한편 전염병으로 죽은 시체는 정부가 돈을 주어 치우게 한다...사람이 죽은 집에서는 49일 동안 상을 지켰다...49재 때는 다시 기를 단 새 소나무를 지붕에 꽂았다..많은 스님이 와서 독특한 음악에 따랄 불경을 외웠다.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은 티베트에서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그것은 '넓은 대양'을 의미하는 몽고식 표현이다...통상 달라이 라마는 '귀한 왕'을 의미하는 '가이알포 림포체'라고 불린다..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그에 관해 언급할때 또다른 호칭을 사용한다..그들은 단순히 '훌륭한 인물'을 뜻하는 '쿤뒨'이리고 부른다.

 

가끔 인생에서 진정 가치있는 일이 과연무엇인가 하는 ㅅ ㅐㅇ각에 빠져들곤 하였다. 이곳 티베트는 수천년 동안 야크의 발걸음처럼 느린 속도로 발전해 왓다..티베트인들이 현대화하면..더욱 행복해질 것인가는 의문이었다...

인도와 직통도로가 개설되면 티베트주민들의 생활수준은 올라가겠지만..생활의 템포를 촉진시킴으로써 현재 그들이 누리는 평화롭고 한가한 생활은 박탈당하게 될 것이다...후진 사회에 급진적인 발전과 변화를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히도 승려사회에서는 동성 연애가 보편화되어 있었다...동성 연애가 여성을 가까이 하지않는 증거로 옹호되는 실정이었다..승려들이 여성과 사랑하게 되는 경우에는 환속하여 결혼을 허가받을 수 있엇다..이러한 환속은 쉽게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달라이 라마들은 자신을 교육시킨 고위 성직자들이 조종하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며 국가의 운명은 섭정들이 좌우했다.

그렇지만...소년 달라이 라마는 달랐다...14살된...비판적인 청중 앞에서 처음으로 그의ㅣ 지식을 시험받고 있었다...평민의 가정에서 태어난 이 소년의 영특하고 의젓한 모습에 감동하여 그가 진짜로 살아있는 부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생활은 금욕과 고독, 탄식과 침묵의 연속이었으며..그는 부잣집 아이들처럼 버릇없이 구는 소년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1935.6.6 쿠쿠노르 호수 부근에서 태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달라이 라마는 인류의 해탈을 돕기 위해 열반을 한 1000 명의 부처 가운데 하나인 '은혜의 부처' 첸레지의 현신이라고 티베트인들은 믿고 있었다...첸레지는 티베트의ㅣ수호신이기도 하며 그의 현신이 바로 달라이 라마인 것이다..달라이 라마란 칭호를 티베트 지배자에게 부여한 사람은 몽고황제 알탄 칸으로 그는 불교에 귀의한 인물이었다...2014.10.11.토/10.17 요약노트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