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며느리손주들에게

2002.9.26....제대를 앞둔 내아들 형민에게

햄릿.데미안.조르바 2013. 1. 31. 15:53

 

5.제대를 앞둔 내아들 형민에게

2002년 9월 26일

그래, 세월은 참 빠르다. 아빠가 40대 초반때만 하여도 '아직도 나는 대학생'이었는데, 나이를 더 들어가면서 특히 오십을 넘어서서는 세월의 흐름이 갑자기 더 빨라지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껴왔다. 자연의 흐름이, 한 인간 아빠에게 이제 인생의 후반 내리막길을 밟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네 편지를 받고 더욱 빨라진 세월의 흐름을 새삼 느끼며, 오늘.문득.꼭, 네 앞에 던져놓고 싶은 주제들이 있다. '시간과의 다툼과 대화' '거대한 사회조직과의 싸움과 어울림' '돈의 허상과 실상' '여자를 얻어야 세상을 얻는다' 등에 대하여 그동안 아빠가 고민하면서 정리해 두었던 일단을 제대를 앞둔 네게 펼쳐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시간이란 무엇인가로 부터 시작해 보자.

서울역에서 진주로 너를 보내면서 착찹하게 만감이 교차하던 날이 네말대로 엊그제 같구나. 그런데 이제 제대날짜를 손꼽게 되었으니 세월 엄청 빠르고 한편으로는 세상 얼마나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냐.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 '일각이 여삼추같다' 인간들은 똑같은 크기의 시간을 두고 서로 배반되고 모순되는 계산을 한다. 시간의 절대적 가치에 자신의 상대적 평가기준을 들이대고는 다시 자신의 절대적 판단으로 시간을 가지고 일희일비한다. 인간은 모순덩어리이며 왕변덕쟁이 아니냐.

'부산까지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모범생의 답; 비행기로 간다. 안모범생의 또다른 생각; 제일 좋아하는 여자친구와 간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간다. 일반상식을 뛰어 넘는 답이라고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는 시간이란 주체에 따라서 평가방법이 다를 수 있고, 때로는 절대적이고 때로는 상대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너도 한번 어떻게 이 문제를 정리할지 생각해 보아라. 전혀 다른 네나름의 생각도 나쁠 것이 없겠다만.....

결국 시간은 누군가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인간의 의지가 굳게 실리면 인간은 시간의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며, 반대로 절대적인 시간의 힘에 인간이 휘둘려지기 시작하면 인간은 시간의 노예가 되어 종속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각이 여삼추인 것도, 도끼자루 썩는 것을 모르는 것도, 모두다 그 인간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은 이해하기에 너무나 쉽지 않느냐. 문제는 인간이다. 인간의 실행의지. 네속에 시간이 있느냐 시간속에 네가 있느냐 이다.

이번에는 거대한 '조직'을 이야기 해보자. 네가 사회에 나오면 필연적으로 만나게되는 또하나의 괴물, 조직이 있다. 지금 네가 겪고있는 조직 '군대'는 아주 초보적이고 너무나 단순해서 어쩌면 본격적인 사회생활 시작전의 맛보기로는 더할나위 없이 좋을 지 모른다.

네가 불평했듯이 다 큰 어른에게 효도편지를 쓰게하는 단순폭력이 아마츄어적이고 애교스럽기도 하지 않느냐. 전쟁 하나를 위해 기약없이 인간 소모품들에 비용을 소비하는 비경제적 집단이기도 하고, 인간의 자유를 속박하고 자율성을 강제하면서, 일어나지도 않는 전쟁을 위해 명령하나로 움직이는 기계적 인간을 생산해내는 곳이 군대라는 조직인데.......

네가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어린애 취급받으며 효도편지를 쓰게 했던 조직이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았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되새겨 보자.

자율성을 제한하고 강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게으르거나 미처 깨닫지 못한 인간들에게는 비정한 조직이 인간의 인간성을 계발시켜주는 동기를 제공해 주기도 하지않았느냐.

논리가 자꾸 뭉쳐져서 날씬하지 않다만, 사회에서 네가 만나게 될 조직은 군대보다 훨씬 거대하고 복잡해서 여간 정신을 차리고 집중하지 않으면 끝내는 어린애 취급 보다 더한, 비인간적 대접을 감내해야 하는 경우를 너는 수없이 만나고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조직의 속성을 이해하기 시작하면 쉽게 조직에 함몰되는 것을 방어할 수 있으며 또 거대한 조직의 힘 앞에 주눅들지 않고 의연해질 수 있는 방법을 너는 강구하게 될 것이며, 조금 익숙해지면 조직과 호흡을 같이 하는 자리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할 수 있다. 불가능하게 보이지만 분명히 길이 있다. 보려고 하는 자에게는 그 길이 보이고 열려 있다.

'한번 해보자는 거야'의 용감한 돌격형도 좋지만 ,상대를 담담하게 응시하며 상대방의 실체가 무엇인지 상당기간 탐색의 시간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다.'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나는 무엇에 더 재미를 느끼는지' 등 '나'를 먼저 정리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무조건 덤비는 것보다는. 그러는 동안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경험을 들으면서 드디어 '너'를 만나게 될 것이다.

미리 예단하고 타협해 버리면 조직에 종속되게 되어 네 주체를 상실하게 되기 쉽고, 또는 실체를 인식하기전 구체적 준비없이 맞부딪쳐 싸우기만 하다가는 패배주의에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을 이야기하며 풀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네가 주인이 되어 주체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느냐 아니면 반대로 조직이 완력과 폭력으로 너를 지배하느냐는 전적으로 네게 달려 있다는 것이다. 네가 조직 또는 사회의 부분이 되어 함몰되어버리는 게으름과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하고 대신 네가 조직을 이해하면서 조직의 힘에 네 지혜를 실을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한동안 지쳐서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은가?'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때 원점에서 다시 뒤돌아 보면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돈 이야기를 조금 해두자. 돈은 인간이 만든 제도중 가장 이롭기도 하고 가장 해롭기도 한 것이다. 돈을 부릴 수 있으면 좋은 것이고 돈에 휘둘림을 당하면 좋지 않은 것이다. 돈의 주인이 되고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돈을 다룰 줄 아느냐 모르느냐이다. 부자가 되고 못되는 것은 네 마음에 달려있어 어느 기준에 눈높이를 두느냐는 것이다. 가난한 것은 돈이 많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많은 돈을 가진 자를 좇기때문이다. 반대로 아무리 돈이 없어도 돈의 씀씀이를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에만 한정하여 부족함이 없다면 그것은 부자인 것이다.

항용 하는 말로 남에게 구차하게 돈을 빌리지 않을 정도가 되면 돈에서 자유롭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정도 수준의 돈은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상생활을 하면 세상 어느 누구도 영위할 수 있고, 소위 큰 재산은 개인의 노력과는 관계없이 하늘이 큰 돈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많은 돈은 인간의 능력하고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니 돈 욕심은 부질없다고 경계하라는 것이다. 조금 싱겁고 웃으운 이야기로 돈은 여자와 같아서, 잡으려고 좇아가면 달아나고 덤덤하게 대하면 어느새 네 곁에 와 앉는다는 것이다. 또다른 표현도 있다. 돈은 불과 같아서 너무 가까이 하면 타져서 죽게 되고 너무 멀리하면 추워서 얼어 죽는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욕심내지 말고 담담하게 대하라는 것 아니냐.

또, 네가 사회생활하는 동안 곳곳에서 때때로 돈으로 유혹하며 너를사려는 시도와 공격이 있을 것이다. 두말 할 것없이 무참하게 거절하고 무찔러야 한다. 돈을 받으면 받는 순간부터 너는 정신적 지조를 버린 것이 되고 그때부터 너는 그 사람의 정신적 노예가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으며 워낙 오늘날 한국사회가 물질 우선으로 치우쳐 있어 돈의 위력이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오해하고들 있지만, 하늘이 만든 세상은 결코 단순하고 만만치 않아 돈에게 그렇게 절대적인 힘을 주지 않았다고 아빠는 확신한다. 나중 어느 날 몇 가지 돈을 다루고 잘 쓰는 노하우를 들려줄 기회를 꼭 갖고싶다만 네가 경청해 주기를 기대한다. 요물이면서 도우미이며 수호신인 모순 덩어리 돈, 돈, 돈. 행복을 살 수 있다는 멍청이도 있고 돈이면 귀신도 불러낼 수 있다는 다른 멍청이도 있지만, 하여튼 너도 시험받고 씨름해야 하는 것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아빠가 제대를 앞둔 네게 '시간' '조직' 그리고 '돈'('여자'는 다음에 하자)을 네 앞에 던지는 것은 앞으로 만나게 될 사회생활 속에서 이들 셋이 차지하는 무게와 크기가 거의 절대적으로 너를 영향할 것이며, 이들이 공교롭게도 야누스의 두 얼굴 한쪽은 괴물 다른 한쪽은 수호신의 얼굴을 하고 있음을 새삼 새겨주고 싶은 조바심 때문이다. 이들 셋의 양면성.이중성을 잘 간파하고 네가 주체적으로 이들을 다루고 만난다면 네 삶은 이미 편안할 수 밖에 없다. 천천히 곰곰히 생각해 보아라. 아주 재미있다. 이 세상이.

엄마아빠를 대접할 줄도 아는 어른스러움을 네가 알고 있다니 군대생활 2년여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증명하고 남는구나.(형보에게도 네 군대경험을 통하여 도움되는 편지를 한번 보내주면 어떻겠느냐. 형보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만...) 틈만 나면 아빠식으로 너를 몰아세웠는데도 의연하게 네 앞길을 네 스스로 만들어 나가니 아빠는 불만이 없다. 조금 늦으면 어떻고 남보다 더 일찍 용감하지 않으면 또 어때? 누가 아무리 무슨 말을 해도 네 스스로 무엇이 정리되지 않으면 움직일 필요 없다. 남이야 무슨 일을 하든지 신경써서는 안된다. 네 자신과의 약속대로, 네 자신이 시키는대로 움직이면 된다. 남의 삶을 네가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남이 네 삶을 살아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크게 걱정할 것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 남지 않은 3 개월여, 한 번 시간을 다루어 보아라. 짧게 가는지 길게 지루하게 가는지. 아마츄어 조직 '군대'의 마지막 끝마무리를 네가 주인이 되어 이끌어 보아라. 맞싸우지 말고 과거 2년여 생활을 거울 삼아 남은 시간을 거대한 흉물스런 괴물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 보아라. 종속되지 않고 주인이 되어 즐거워져 가는지 한번 시험.확인해 보아라. 괴물이 도우미가 되고 네 수호신이 될지 모른다. 시간이 매우 아깝고 빨리 갈지 모른다. 트라이또트라이!!!

지금처럼 자유롭고 황금같은 시간들이 네게 언제 다시 오게 될까. 정말 좋은 시간들을 너는 지금 갖고 있다. 잘 마무리 지으면서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란다---욕심이 많고 사는 것이 너무 재미있는 아빠가 사회생활의 첫단계를 거의 마친, 제대를 3개월여 앞둔 다 큰 아들에게.

추신;

지난 9월 5일, 아빠는 사업상 미국산 식용옥수수 주산지인 미국 대평원(The Great Prairie) 3 개주(Nebraska, Missouri, Illinois)를 10일간 다녀왔다. 아, 얼마나 복받은 땅인가. 얼마나 대단한가. 미국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고 얼마나 강한지를 느꼈다. 왜 나는 이제야 이곳을 와서 이렇게 초라해야 하는지 서글펐다. 나의 아들들은 가능한 빨리 이 경험을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넓고 큰 것을 보려면 바다에 가라. 힘있고 강한 것을 배우려면 바다에 가라 하였다.

인간의 위대함을 보려면 만리장성을 올라보라. 만리장성을 올라가보지 않은자, 현명하다고 말하지 마라 하였다.

이제 넓고 큰 것을 만나려면 미국을 가서 대평원을 달려보라. 힘이 있음을 알게 되고, 강한 것이 무엇인지 느낄려면 미국을 가서 배워라.

넓고 크고 강하고 힘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후회없는 삶을 누릴 수 있는지, 자극을 받고싶은 젊은이는 어서 빨리 미국을 가라고 아빠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그렇다고 아빠가 무조건적 무비판적 친미 또는 미친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없기를 바란다.).

한국의 젊은이들이여, 아들이여, 미국을 경험해봐야 한다. 미국을 가라. 그리고 네 눈으로 직접 보고 느끼고 오너라. 너의 미래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