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기

'우리 어찌 가난하리오?'

햄릿.데미안.조르바 2004. 10. 8. 02:42
2004.9.26.일.

후지산 1합목 1405m, 하꼬네까지 45분.
8.7%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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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활한 만주벌판

우리 어찌 가난 하리오
우리 어찌 주저 하리오

다시 서는 저 들판에서
움켜쥔 뜨거운 흙이여

해뜨는 동해에서 해지는 서해까지
뜨거운 남도에서 광할한 만주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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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가 생퉁맞게 흘러 나온다. 점심 후 나른한 나의 휴식을 흔들어 깨운다.
여행 가이드의 취향인가, 일본여행에서 '안치환'의 부딪치며 달려드는 소리를 만나다니 야릇하다.


산중호수, 억새밭, 먹구름떼, 숲속을 질주하는 우리들, 나비인가 꿈인가, 호접몽,
젊은 날의 꿈이여.
2995m 터널 속으로, 다시 안개속으로, 안개속을 달린다.


하꼬네 입성.
휴양지, 부자들의 별장, 골프, 국립공원
7-80년대의 신혼여행지
짙은 안개가 우리를 맞이한다.

돈이란 무엇인가
부자들의 휴양지였다는 하꼬네를 지나면서 또 물어본다.
큰부자는 하늘이 내고, 작은 부자는 자기하기 나름이다.
열심히 생활하면 세끼 밥먹는 것은 걱정없고, 그 이상은 하늘의 뜻이고, 그 이하는 자신의 책임.

돈은 여자와 같아서 좇아가면 달아나고, 조금 거리를 두면 자신을 좇아오게 된다.
돈에 너무 집념하면 역효과를 내게 된다.

돈은 불과 같아서 너무 가까이 하면 타져죽게 되고, 너무 멀리 하면 얼어죽게 되나니, 욕심을 부리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살아야 한다.
특히 사회의 지도층에 위치한 사람들은 돈과의 거리가 멀면 멀수록 더 좋다.

안정적인 사업기반을 갖고 있는 외국친구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이제 여생을 즐기면서 살 때가 되지 않았는가.
돈을 왜 더 벌려고 하는가.

돈이 없으면 나의 자존심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활을 잘 하기 위하여 적당한 수준까지는 벌어야 한다.
그 이상을 버는 것은 남을 위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기 위하여 버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며 즐거움이다.
돈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그들의 대답은 명쾌하고 단순하고 단호하다.
그들은 아직도 많은 시간들을 해외출장의 비행기 속에서 보내고, 접대골프나 가족여행 대신, 열심히 공부하며 손님들과의 상담을 하는데 소비한다.

나는 어떤가.
우리들은 어떤가.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어떤가.
우리 사회의 기업인들의 사고방식은 어떤가.
일부 몇몇이 ‘돈이란 무엇인가’의 개념정립이 아직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서 가끔 우리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대니 안타깝다.

이곳 일본은 어떤가.
자본주의 생활이 우리보다 훨씬 오래되어서인지 우리만큼 소리가 요란하지 않다.
하루아침의 졸부도 없고, 얼굴 두꺼운 사회지도층도 많지 않다.
그들은 그냥 자기 할 일에 열심 열심이다.
시쳇말로 남이야 전봇대로 귀를 후비던 말던 상관없는 일.
그러나 모르긴 해도 그들도 고속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들을 만났을 것이고, 그동안 쉴새없이 노력하여 지혜롭게 난관을 극복하였을 것이다.

절대적으로 돈이 사람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을,
참고 기다리면서 열심히 하다보면 그 댓가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남의 위치나 남이 하는 일을 존중해 주어야 자신의 것도 존중된다는 것을,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을 것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후지산을 내려오면서,
때로는 안개 속을, 거대한 숲 속을 지나오면서, 2995m의 긴 터널도 지나면서,
나는 꿈을 꾸기도 하고, 꿈 속을 헤매기도 하고, 잠을 자다가도 현실의 차창 밖 숲 속을 보기도 하면서,
비몽사몽.

내가 나비였던가 아니면 꼴통이었던가,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갑자기 장자의 ‘호접몽’이 생각되었다.

도꾜의 휴식공간, 하꼬네.
조용하였지만 여유롭게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