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모금, 너도 한모금'---켄맥주 속의 행복
2004.9.25.토,
전형적인 번개불에 콩뽁아먹기식 여행,
어제는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하여, 교또의 청수사 그리고 금각사라는 곳을 일별하고는 교또 관광끝.
그리고 쉴 틈도 없이 나라의 東大寺, 사슴들의 천국과 부처님 콧구멍 통과하기. 내가 관심있는 법륭사나 광륭사는 보여주지도 않았다. '관광이란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야’라고 보여주는 것처럼, 정말 ‘번개’였다.
‘관광학도적’이 아닌 비교적 ‘역사학도적’인 나에게는 너무 서운하였고 아쉽기만 하였다.
역사의 교또와 나라를 그냥 지나가기하면서 ‘일별’로 떼우다니, 나는 속이 상하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제3일째, 아침 일찍 도요하시역에서 우리는 신깐센을 탔다.
지나가는 철로변 주택들이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것 같은데, 오늘의 나는 머리가 하얗게 변하여 지나간 시간들을 하얗게 뒤돌아 보았다, 신깐센의 속도만큼.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들 사랑도 흘러내리고,,,,,,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세월도 흐르고 젊음도 사랑도 흘러갔는데, 아직도 신간센은 말없이 그저 달리기만 하는구나’
그때는 남쪽끝 후꾸오까에서 북쪽의 우쯔노미야까지 젊음만을 가득 앉고 싣고 그것을 밑천으로 달리고 또 달렸었다.
씩씩거리며 씩씩하게 뛰어 다녔었는데, 오늘은 아들과 마누라와 함께 신깐센을 올라보니 빨리 달리는 것은 상관이 없고 다만 포근할 뿐이었다.
내 아들이 20년후 다시 신깐센을 탄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나처럼 지나간 세월들을 돌이키면서 허허로운 인생살이를 음미하고 있을까.
과연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잘 살아 온 것인가.
1964년 처음 신깐센을 운행하고 지금껏 인명사고 제로라고 자랑해대니 사람이 하는 일도 하기나름으로 완벽할 수 있다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그간의 노력과 고통이 얼마만큼일까?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예전의 그것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은데, 머리 속 나의 생각은 자꾸 옛날의 기억 속으로 달려 들어가고 있었다.
몸도 마음의 생각처럼 그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을까?
아사히(朝日) 캔맥주 260엔,
애비와 달리 아들은 호기심 천국, 덜컹 사서는 한모금 마셔보라고 들이민다.
아들이 한 모금, 에미가 한 모금, 애비가 다시 또 한모금.
일본의 대표맥주의 하나인 아사히 맥주는 오늘 호강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비주류인 나도 오늘 우리집 주류들 속에 끼어서 오랜만에 주당같은 술기운을 내보려 하였다.
아들과 마누라와 나란히 셋이 앉아서 캔맥주 하나를 놓고 한모금씩 마셔보는 맛, 꿀맛이었다.
그래도 신깐센은 우리의 꿀맛같은 행복감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롭게 그 속도만 자랑하고 있었다. 아니 빨리 달리는 것을 보니 시새움하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행복은 속도와는 상관없다는 것, 행복은 돈의 크기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또 확인하였다.
260엔짜리의 캔맥주, 가장 빨리 달린다는 신깐센, 그것은 우리의 행복감을 높여주는 배경과 재료일뿐, 그이상은 아니었다.
아들의 주량을 익히 아는 바, 한 캔 더 하라 하였더니, 이놈 또한 애비의 주량을 아는지,
가벼압게 손을 내젓는다.
‘아사히’(아침의 해라는 뜻)맥주로 시작한 우리들의 아침은 벌써 낮이 되어 있었고 나의 얼굴을 살짝 붉게 물들이고 말았다.
신깐센은 변변치 못한, 아니 매우변변할만하기틀림없을, 우리의 행복을 싣고 그냥 달리기만 하였다.
이대로 계속 달려가면 좋으련만 1시간도 채 못되어 우린 ‘신후지역’에 내려야 했다.
일본인들이 선망해 마지않는 후지산이 거기에 정말 있는지,
왜 그렇게들 호들갑을 떠는지, 내가 곧 확인해 볼 것이었다.